트랜스미디어는 ‘트랜스(trance)’라는 접두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다양한 미디어를 횡단하면서 원작의 스토리와 캐릭터, 세계관을 확장하는 융합형 장르다. 트랜스미디어 콘텐츠는 충성도 높은 팬덤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활성화되는 특징을 갖는다. 팬들은 오리지널 콘텐츠 속 주인공과 동일한 세계 안에 머물면서 캐릭터의 성장과 운명을 지켜본다. 단, 오리지널 스토리가 지향하는 감성과 가치를 의미있게 확장했는지에 따라 콘텐츠 성패가 좌우된다.

최근 방송가에서 트랜스미디어로 인기를 얻고 있는 캐릭터로 MBC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이 있다.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의 새로운 변신과 도전을 주요 서사로 하는 리얼리티 예능으로 김태호 PD의 전작 ‘무한도전’의 확장된 세계다. ‘무한도전’의 핵심 멤버였던 유재석은 2006년부터 2018년까지 온갖 고난과 시련 속에서 도전을 거듭하며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다. 덕분에 ‘무도인’이라는 강력한 팬덤 구축에 성공했다. ‘놀면 뭐하니?’는 ‘무한도전’의 유재석 캐릭터를 활용한 트랜스미디어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유재석은 ‘무한도전’보다 한층 더 강력해진 미션 수행을 통해 드러머, 트롯트 가수, 라면 가게 사장, 하프 연주자, 댄스 가수 , 기획사 대표 등 새로운 부캐(‘부캐릭터’의 줄임말)에 도전하고 있다.

‘놀면 뭐하니?’의 트랜스미디어 전략은 단순히 원작 서사의 변형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상파와 OTT를 넘나들며 미디어와 플랫폼, 장르의 융합을 시도한다. MBC 예능이라는 고정된 정체성을 탈피해서 EBS ‘최고의 요리비결’, 코미디TV ‘맛있는 녀석들’, KBS ‘아침마당’ 등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과 다양한 콜라보를 시도한다. 또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방송과 차별화된 숏폼 콘텐츠를 선보이면서 OTT 이용자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고 있다. 방송외전 영상 ‘유튜브온리’를 통해 방송에서 공개하지 않은 다양한 스핀오프(spin-off)를 제공하면서 충성도 높은 팬덤 확보에 나서고 있다.

라디오의 트랜스미디어와 공감적 소통의 확장

라디오에서도 트랜스미디어 활용 사례가 있다. ‘김현정의 뉴스쇼’의 ‘댓꿀쇼’다.

우선 ‘김현정의 뉴스쇼’(이하 ‘뉴스쇼’)는 매일 아침 방송되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으로, 아침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은 바쁜 출근 시간을 이용해서 방송을 듣는 직장인들에게 유용한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이슈와 현안, 트랜드에 관한 핵심 내용을 짚어주는 전문가들의 활동 무대들이다. 진행자와 전문가 패널들은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에 맞춰 정보를 요약해주고, 밤새 일어난 사건사고의 맥락과 배후를 흥미롭게 풀어주기도 한다. 아침 시사 방송의 치열한 격전 시간대인 오전 7시부터 9시 사이에 방송되는 시사 프로그램들은 전문가 인터뷰와 팩트체크, 주요 사건사고 리뷰로 진행된다. 방송사들의 단골 인터뷰이가 정치인, 공무원, 학자들이라면 ‘뉴스쇼’는 사건사고의 당사자, 유가족, 피해자 등이 직접 출연해서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당사자 보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당사자의 목소리만이 전할 수 있는 울림과 떨림, 진정성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뉴스쇼’의 제작팀은 사건이 발생하면 일단 당사자를 찾기 위해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동안 공을 들인다. 이러한 노력으로 ‘뉴스쇼’의 인터뷰에는 ‘최초보도’ ‘단독보도’ 등의 수사가 붙는 유명인의 출연도 많았지만, ‘익명’의 출연자들도 유독 많다. 차마 이름을 밝힐 순 없지만 자신 또는 지인의 억울함이나 분노, 슬픔을 나눌 단 하나의 마이크가 절실한 약자와 피해자, 유가족들이다. 코로나19 확진자 가족, 故최숙현 선수 동료, 햄버거병 피해 아동 부모, 불꽃취재단, 이천 화재 사건 생존자, n번방 중학생 피해자, 고유정 범행 펜션 운영자 가족 등 단신 뉴스에서는 좀처럼 보거나 들을 수 없는 당사자들이 ‘뉴스쇼’를 선택한다.

▲김현정의 뉴스쇼의 트랜스 미디어 '댓꿀쇼' 화면.
▲김현정의 뉴스쇼의 트랜스 미디어 '댓꿀쇼' 화면.

김현정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역할을 ‘판소리의 고수’에 비유한다. 출연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할 수 있도록 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쉬운 언어로 묻고, 그들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책 ‘당신이 옳다’의 저자 정혜신 박사는 진정한 공감이란 대답을 들어주는 태도라고 말한다. 상대방의 대답에 집중하고 궁금해하는 태도가 어떤 질문보다 더 공감적이고 치유적이라는 뜻이다.

김현정은 라디오 진행자가 청취자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안부, 용기와 희망들이 누군가를 살리는 ‘숨’이라고 말한다. 외롭고 소외된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눈을 마주치며,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 정혜신 박사의 표현을 인용하면, ‘뉴스쇼’의 인터뷰는 누군가를 살리는 ‘심리적 CPR’이다. 한 사람이 제대로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스펙은 ‘감정’이다. 누군가의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그 사람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물어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먹먹하게 기다려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 김현정이라는 캐릭터의 공감적 소통은 청취자들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2020년 6월 17일부터 21일까지 실시한 라디오 매체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뉴스쇼’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등을 제치고 ‘유익한’, ‘신뢰가 가는’, ‘중립적인’, ‘흥미로운’ 등 4개 항목에서 1위를 차지했다. 유일하게 2위를 차지한 ‘정보의 시의성’에서도 1위인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점수 차가 1점 차이로 근소했다.

▲지난 8월18일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라디오 매체 이용 행태를 조사한 결과.
▲지난 8월18일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라디오 매체 이용 행태를 조사한 결과.

2018년 11월 12일 유튜브에서 첫 방송 된 ‘김현정의 댓꿀쇼’(이하 ‘댓꿀쇼’)는 ‘뉴스쇼’에서 소개하지 못한 청취자들의 댓글이나 문자를 읽어주고 청취자와 소통하는 10분 내외의 라이브 코너로 기획되었다. 그러나 첫 방송부터 동시 접속자가 2천여 명에 이르는 등 예상 밖의 호응을 얻으면서 방송 시간이 점점 늘어나 최근에는 70분 내외로 진행되고 있다. ‘댓꿀쇼’는 ‘뉴스쇼’의 세계관과 캐릭터를 활용한 트랜스미디어 콘텐츠다.

‘뉴스쇼’를 통해 구축된 김현정 앵커의 공감형 캐릭터와 전문가 패널들의 성실하고, 진정성 있는 탐사보도, 본방송에 이어지는 당사자들과의 심층 인터뷰, 뉴스의 비하인드 스토리, 사건사고에 대한 법률적 해석 등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관점 생산과 실시간 소통은 ‘뉴스쇼’의 가치를 높이고, 팬덤의 연대감을 강화시킨다.

이와 함께 본방송에서는 만날 수 없는 패널들의 다양한 개성과 일상이 ‘댓꿀쇼’의 또 다른 볼거리와 재미로 제공된다.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입지를 굳힌 김현정 앵커는 동접자 수 2000 명 공략을 통해 평소 즐겨 부르는 ‘물안개’를 열창하는가 하면, 새벽부터 밤까지 집을 비우는 엄마의 미안함과 방송인으로서의 사명과 책임감을 담아 자녀들에게 영상편지를 띄운다. ‘뉴스쇼’를 제작하는 유창수 PD는 첫 방송에서 왼쪽 뺨에 커다란 하트 모양의 점이 매력적이라는 평을 들으며 ‘하트피디’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김현정 앵커와 동갑내기 입사동기로 방송 초반에는 다소 수줍어 보이고, 말수가 적은 듯 했지만 차분하면서도 꼼꼼하고, 엉뚱한 멘트로 반전 웃음을 선사한다. 제작비 지원사업이나 커피 쿠폰 협찬 마케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프로그램 예산과 팬들을 위한 서비스 개선에 가장 앞장서는 성실한 캐릭터다.

▲김현정의 댓꿀쇼에서 부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
▲김현정의 댓꿀쇼에서 부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

자칭 ‘여의도 조진웅’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는 대학 때부터 교회에서 드럼을 연주했던 실력파 뮤지션으로 ‘댓꿀쇼’에서 여론조사 비하인드 스토리 외에 기타연주와 노래를 들려주는 ‘교회 오빠’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다. ‘댓꿀쇼’의 막내로 ‘좋아요’와 ‘구독’을 광고했던 민경남 PD는 야구선수 이대호를 닮았다고 해서 ‘이대호피디’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해졌다. 본방송의 ‘탐정 손수호’ 코너를 통해 ‘손탐정’이라는 냉철한 캐릭터를 구축한 손수호 변호사는 ‘댓꿀쇼’에서는 감정에 솔직하고, 축구를 사랑하며, 알콜 분해효소가 희박하여 술을 즐기지 않는 인간적 모습으로 출연한다. 퀸의 팬덤으로 유명한 CBS 문화체육부 정재훈 기자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2018) 개봉 당시 프레디 머큐리 코스프레 복장으로 스튜디오에 출연해서 해박한 지식과 즉석 공연으로 ‘퀸박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前CBS 대기자 출신으로 송건호언론상, 한국방송대상 등을 수상한 변상욱 YTN 앵커는 날카롭고 딱딱한 기자 이미지 대신 아재개그와 홈트의 신으로 건강한 웃음을 선사하는 인생멘토 캐릭터로 고정 출연 중이다.

‘댓꿀쇼’는 ‘뉴스쇼’의 제작팀과 팬덤의 상호작용을 통해 창조된 파생콘텐츠이자 새로운 서사의 공간이다.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나누기 어색했던 소박한 일상과 감정들이 ‘댓꿀쇼’에서는 적극적인 이야기의 소재가 되고, 날 것 그대로의 웃음과 울음, 실수와 빈틈이 허용되면서 진행자와 출연자, 팬들은 서로 간의 거리감을 좁히고, 친밀감과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김현정 앵커는 ‘댓꿀쇼’의 청취자들을 ‘꿀단지’라고 호명하면서 방송 중간중간 실시간 채팅창에 올라오는 팬들의 반응과 사연을 읽어준다. 2020년 9월 20일 기준 ‘뉴스쇼’ 채널의 구독자 수는 33.9만 명, 평균 동접자 수는 2만여 명에 달한다. 가장 조회 수가 높은 영상의 경우 8만 6000회에 달한다.

정혜신 박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김현정앵커는 ‘다정한 전사’ 캐릭터다. ‘다정한 전사’란 공감이 필요한 순간에는 온 체중을 다 싣는 다정한 공감자가 되어주고, 공감을 방해하는 사람이나 상황을 마주했을 때는 전사처럼 싸우는 사람을 뜻한다. 약자에게 눈을 맞추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동시에 범죄를 저지르고, 약자를 괴롭히며, 갈등을 부추기는 적을 상대로 끝까지 궁금한 것을 묻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문제의 원인과 해결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환기를 실천하는 전사. 그러나 공감이란 상호적이고, 동시적인 것이다. 나와 너, 우리의 공감이 진정한 소통이다. ‘댓꿀쇼’의 꿀단지들은 세상을 향해 날마다 ‘다정한 전사’로 나서는 김현정이라는 캐릭터의 충성도 높은 팬덤으로 그의 말과 눈빛, 웃음과 눈물에 공감하고, 소통하면서 연대하는 또 다른 전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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