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세상 무식한 X” “니 XX(어머니) 그렇게 살해되라” 지난 5월 초 ㄱ기자는 ‘욕 메일’ 폭탄을 맞았다. 이틀 간 30통이 넘었다. 모든 메일 제목에 여성을 속되게 이르는 ‘년’이 적혔다. 발신자 이름도 ㄱ기자 어머니가 “3년 안에 살해되길 기원한다”는 문구였다. 

#2. 지난해 초 ㄴ기자는 자신을 향한 성희롱과 모욕을 쏟아내는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1년 가량 지켜보다 결국 고소했다. 묵과할 수 없는 수준의 명예훼손이 난무하면서다. 그는 당시 임신 5개월째였다. 고소를 위해 증거를 일일이 갈무리하면서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결국 조산기가 와 예정보다 일찍 휴직까지 했다. ㄴ기자는 서지현 검사로부터 이어진 일련의 미투(#Metoo) 운동을 꾸준히 다뤄온 기자다. 

여성 기자들이 일부 독자·시청자로부터 정신적 외상을 입을 만큼 심각한 수준의 성희롱과 여성 비하 공격을 당하고 있다. 신체 부위를 거론한 성희롱은 기본이고 강간을 언급한 협박부터 ‘취재원 무릎 위에서 일한다’는 능력 비하까지 시달린다. 실태 조사를 시작으로 언론계가 관련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 인터넷신문의 ㄷ기자는 2년 전 음란물 사진을 메일로 받았다. 2019년 1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김용균법’ 시행을 앞두고 조선일보 등 보수 성향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는 비판 기사를 쓴 직후다. 이 매체 여성 기자 5명 역시 모두 같은 독자로부터 성기나 성관계를 외설적으로 기록한 모욕 메일을 십수 통 받았다. 

▲ㄱ기자가 지난 5월 받았던 욕설 메일들.
▲ㄱ기자가 지난 5월 받았던 욕설 메일들.

 

수신 차단으로 막을 수 없는 메일도 많다. 제목은 “제보합니다”지만 성희롱 문구만 잔뜩 적힌 메일이 예다. ㄴ기자는 “‘팬입니다’해서 열어 보면 ‘미친X아’라며 밑도 끝도 없이 욕만 달린 메일도 있고 ‘이것도 확인해보세요’라며 남긴 웹사이트 주소 링크에 들어가면 나를 희롱하기 위해 만든 사진과 모욕 댓글이 가득한 커뮤니티 글일 때도 있었다”며 “이런 식의 메일은 수도 없이 왔다”고 말했다. 

ㄴ기자는 젠더 이슈를 꾸준히 다룬다며 ‘좌표’가 찍혀 더 괴롭힘에 시달렸다. 남성 이용자가 많은 커뮤니티에 ㄴ기자 비난이 게시되는 날은 ‘욕 메일 폭탄’을 받는 날이었다. 피해자 진술을 허위로 치부해 온 오랜 가부장적 편견을 지적하자 발언 영상을 악의적으로 편집한 사진이 만들어져 1년 넘게 온라인에서 조롱당했다. 성폭력 문제를 조명한 기자가 다시 ‘언어적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공격 댓글·메일 대부분은 보도 내용에 반대한다는 항의 표시다. 이 가운데서도 피해 사례는 젠더 이슈와 정치부 기사에 집중됐다. 정치부의 경우 현 정부의 극성 지지자나 극성 반대파들이 주로 기자들을 성희롱했다. “걸레X, 강간 당할래”, “○○○(기자 실명), 길 가다가 맞고 싶냐” 등 협박·위협도 흔하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일가 사태를 다뤘던 SBS의 한 여성 기자는 지난 5월 길거리에서 한 행인으로부터 실제 폭행 위협을 당했다.

공격은 진보·보수매체를 가리지 않는다. 조선일보 ㄹ기자는 “이런 문제를 겪었다고 직접 얘기해본 사내 동료 기자만 여섯인데 실제론 훨씬 많을 거다. 단순 악성 메일이라고 여기지만, ‘밤길 조심해라’ 같은 내용의 메일을 받고선 괜히 무섭더라. 무심코 집 앞에서 벨을 눌렀는데 순간 두려웠을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 종합일간지의 여성 기자가 받았던 성적 모욕 메일 내용 갈무리.
▲한 종합일간지의 여성 기자가 받았던 성적 모욕 메일 내용 갈무리.
▲한 온라인신문의 여성 기자가 받았던 성희롱 메일.
▲한 온라인신문의 여성 기자가 받았던 성희롱 메일.

 

“기레기도 아닌 ‘기레년’이라니…”

기자들은 성별 구분 없이 비난 메일을 받지만 여성 기자들은 이에 더해 여성 비하에도 시달린다. 업무 능력 비하가 대표적이다. B 방송사 ㅁ기자는 평소 검찰 등 수사기관 취재에서 단독 정보를 자주 발굴해 높은 평가를 받아왔지만 지난해 구독자 99만명에 달하던 친여권 성향의 유튜브 채널에서 “(그를) 좋아하는 검사들이 많아서 술술 흘렸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해당 채널 측은 즉각 사과했으나 ㅁ기자는 성차별 및 성희롱 댓글·메일 폭탄에 추가로 시달렸다. 

C 종합일간지의 ㅂ기자는 “2018년 어느 날 불법촬영 문제를 규탄한 ‘혜화역 시위’를 기자 3명이 취재해 기사를 쓰고, 같이 작성자로 이름을 올렸다. 1명은 남성, 2명은 여성이었다. 이날 여성기자 2명은 욕 메일을 무더기로 받았는데, 남성 기자는 1통도 받지 않아 놀란 적이 있다”고 밝혔다. 또 ㄱ기자는 “여성 기자들은 기레기(기자를 비하하는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를 넘어 ‘기레년’이란 말을 듣는데 여성 혐오가 어떻게 더해지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폭언 수위가 심각해지면서 고소 사례도 생기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달 한 페이스북 페이지에 심각한 수준의 폭언 댓글을 단 이용자들을 모욕,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당을 기사로 비판한 한 여성 기자 사진을 게시해 입에 담기 힘든 수준의 희롱 댓글을 달았다. 한겨레 ㅅ기자는 “이런 문제는 계속 있었지만 회사가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해 법적 대응에 나섰다”고 전했다.

KBS의 적극적 대응은 사내외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KBS는 지난해 자사 기자에게 유튜브와 메일 등으로 불법 여지를 다툴 만큼 성적 모욕을 한 이들을 대거 경찰에 고소했다. 10여명이 입건돼 일부는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됐다. 이 과정에서 KBS 측은 처벌 의지를 명확히 드러낸 의견서를 수사기관에 추가로 제출하는 등 적극 지원했다. 특히 피해 기자의 건강을 고려해 보도기획부 등의 직원이 대신 증거를 갈무리해 법무실에 제출했다. 신상을 특정한 온라인 게시글도 회사가 직접 대응해 업체가 삭제토록 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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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희롱 반복, 정신적 외상 남아

법적 대응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 모욕·명예훼손죄 성립요건을 충족하는 사례가 드문 데다가 기자로서 보도에 대한 반응은 설령 욕설일지라도 수용할 수밖에 없는 면도 있어서다. 메일은 댓글보다 내용이 악의적이지만 ‘불특정 다수가 그 행위를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공연성을 충족하지 않아 죄를 적용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명예훼손의 구성요건인 ‘사실 적시’는 피해자가 특정돼야 하고, 그의 명예를 침해할 만큼 구체적 사실을 충분히 명시해야 한다. 

ㄱ기자는 “독자는 인격체인 내가 아니라 기사에 대해 충분히 욕할 수 있다. 또 기자가 여러 상황에서 일반인보다 갑의 위치로 인식되고 실제로 그런 상황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비판과 욕설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법적 대응을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신공격’ 경향성, 합법의 선을 넘는 모욕이 나타나는 것도 분명하다”고 말했다.

피해 기자들은 업무 과정에서의 위축, 정신적 외상 등을 호소한다. ㅁ기자는 “개인에게 정신적으로 엄청 스트레스고, 트라우마로 남는다. 그런 소리(비하) 안 들으려고 취재현장에서 더 노력해서 일한다”며 “(피해가 반복되면) 기자로서 사람을 만날 때조차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옷을 하나 입을 때도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회사 차원의 대응과 지원을 고민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다. 조선일보의 한 여성 기자는 지난 달 나온 조선노보(노동조합 소식지)에 “지속적 악플이나 성희롱 발언 등으로 정신적 고통이 클 때 회사 차원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했으면 한다”며 “회사 메일에 특정 욕설이나 성적 단어를 거르는 기능을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한국일보는 사내 모든 기자를 대상으로 지난 3월부터 ‘취재 트라우마 심리지원 제도’를 시행 중이다. 보도에 대한 공격적 반응으로 심리적 고통을 겪는 기자들에게 치료비를 지원해주는 게 골자다. 한국일보 관계자는 “최근 디지털화한 미디어 환경에서 보도에 대한 즉각적이고 직접적 반응이 기자 개인에게 댓글과 메일 등으로 전달된다”며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는 상황, 재난·재해 및 강력범죄 현장을 취재하는 구성원들의 심리적 어려움을 고려해 지원책을 검토하게 됐다”고 밝혔다.

법적 대응을 했던 ㄴ·ㅁ기자는 “피해자가 댓글을 보지 않도록 증거 수집을 회사 측이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ㄴ기자는 초기 증거 수집을 스스로 했고, ㅁ기자는 회사 도움을 받았다. ㅁ기자는 의지를 가진 회사 관계자들이 피해자 시각으로 문제 댓글을 최대한 많이 색출해주기도 했다. 두 기자가 고소 과정에서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 차이는 컸다. ㅁ기자는 “대응 과정에서 더 상처받을 가능성이 큰데, 회사 조치가 모범적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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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관계자는 회사가 관련 사건을 적극 지원한 배경에 “경찰 조사 초기부터 사내 변호사를 배정해 대응토록 했다. 피해자가 자세한 진술을 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 조사 과정과 조사 결론이 날 때까지 힘들지 않도록 변호사가 돕도록 했다”며 “기자 개인 활동이 아니라 회사 업무와 관련해 받은 피해였기에 회사가 대응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당사자가 피해를 호소했고, 회사가 적극 대응하지 않으면 기자 건강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언어수집’부터 해보자는 요구도 나왔다. ㄱ기자는 “한국여기자협회 같은 단체에서 기자들이 어떤 식으로 성적 모욕 등을 당하고 있는지 실태 조사를 해야 한다. 외모 평가류, 업무 능력 평가 절하류 등으로 나뉠 것”이라며 “전반적 풍토와 경향성을 파악해 실태를 드러내면 사회에 경고성 신호를 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전국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는 실제 실태 연구를 추진했다. 최진주 언론노조 성평등위원장은 “기자들이 쏟아지는 인신공격 반응에 휴직하는 사례도 있다. 여성 기자는 정도가 더해 위원회도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며 “관련 연구를 계획 중인 연구자가 있다는 걸 알고 지난 9월 위원회에서 연구 용역을 발주해보자고 논의했다. 상급 논의에서 예산 전용 절차 등 문제가 지적돼 일단 보류됐다”고 말했다. 

ㄴ기자는 “많은 언론사들이 자사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고, 이 콘텐츠가 재가공돼 이런 (혐오) 공격에 쓰이지만 제대로 대비하지 않고 있다. 유튜브는 문제적 콘텐츠를 삭제하기 매우 어렵다”며 “뉴미디어 업계에 있는 친구들도 걱정된다. 앞으로 이런 사례가 훨씬 많고 심할 텐데 심각성을 알고 이들을 보호하는 토양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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