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생각하는 건 여성이다. 여성들이 재밌었으면 좋겠다. 여러 가지 것들을 고려해야 하지만, 여성이라는 중심이 있으니까 흔들릴 게 없다.” (허휘수 소그노 채널 대표)
“소그노 채널 왜 보냐고요? 재밌으니까요!”(소그노 채널 구독자 A씨)

2020년 2월9일.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 일반인 여성들의 예능 프로그램 ‘뉴토피아’가 최초공개됐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는 게임을 비슷하게 하는데 출연진만 다르다. 댄스 신고식, 야외 취침 복불복, 다리 찢기, 축구게임 등을 8명(우나, 휘수, 혜지, 민서, 하지, 민지, 서솔, 지컨)의 일반인 여성이 주인공이 돼서 프로그램을 이끌어 간다. 총 14편으로 제작된 이 프로그램은 소그노 채널이 9만명 넘는 구독자를 확보할 수 있게 만들었다.

▲(위쪽부터)뉴토피아 프로그램에서 댄스신고식을 하고 있는 모습. 팀원들이 처음 미션을 받는 모습.  사진=유튜브 채널 소그노화면 갈무리.
▲(위쪽부터)뉴토피아 프로그램에서 댄스신고식을 하고 있는 모습. 팀원들이 처음 미션을 받는 모습. 사진=유튜브 채널 소그노화면 갈무리.

이들은 왜 뉴토피아 제작에 참여했을까. “(기성 미디어에서) 여자는 약간 게스트처럼 출연하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여겨졌다.”(민서) “TV에서 김숙, 송은이 같은 사람들이 ‘무한걸스’ 같은 걸 다시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민지) “다른 것보다는 당연히 여성 예능이라는 점. 정말 역사상 없었고 그 역사에 내가 참여할 수 있다는 게 영광이다.”(혜지)

소그노가 처음부터 주목받았던 건 아니다. 여성들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를 가졌던 것도 아니다. 지난해 5월 전까지만 해도 구독자가 1만명이 채 안 됐다. 성장 비결은 뭘까. 지난 5일 미디어오늘은 지방 출장 중인 허휘수 소그노 채널 대표와 전화로 만났다.

▲(위쪽부터) 2명씩 팀을 짜서 주어진 돈으로 음식을 사온 후 홈쇼핑처럼 판매하는 미션을 수행한는 모습. 팀원들이 노래 전주를 듣고 퀴즈를 맞추는 모습. 사진=유튜브 채널 소그노화면 갈무리.
▲(위쪽부터) 2명씩 팀을 짜서 주어진 돈으로 음식을 사온 후 홈쇼핑처럼 판매하는 미션을 수행한는 모습. 팀원들이 노래 전주를 듣고 퀴즈를 맞추는 모습. 사진=유튜브 채널 소그노화면 갈무리.

‘소그노’ 채널은 지난 2017년 11월30일 처음 생겨났다. 김은하(우나)씨는 사비를 들여 웹시트콤을 제작했다. 배우가 허휘수. 스태프는 영화학회 사람들이었다. 총 7명의 여성이 참여했다. 영상을 올릴 유튜브 채널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게 소그노 채널이다. 이후 채널을 그냥 두기 아까워 다른 영상을 제작해 올렸는데, 반응이 없었다.

방향성을 잡아보려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으나, 7명의 의견이 매번 다 달랐다. 공통점이 딱 하나 있었다. ‘페미니스트’. 방향성을 잡고 콘텐츠를 만들자고 이야기한 후 유튜브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다양한 포맷의 콘텐츠 제작을 시도했고,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팀원들이 서로에 대해 아는 정보를 2분 동안 스피치하는 장면. 사진=유튜브 채널 소그노화면 갈무리.
▲팀원들이 서로에 대해 아는 정보를 2분 동안 스피치하는 장면. 사진=유튜브 채널 소그노화면 갈무리.

허휘수 대표는 뉴토피아가 잘 될 줄 알았다고 밝혔다. 허 대표는 “잘 될 줄 알았다. 많은 사람이 깜짝 놀랄 줄 알았다. 지난해 5월 구독자가 겨우 1만명이었다. 뉴토피아를 선보이기 전 반년 동안 정말 많은 영상을 만들었는데, 아무도 봐주지 않았다. 수많은 실패를 겪으면서 어떤 콘텐츠를 독자들이 좋아할지 많이 생각했다. 뉴토피아는 자신 있었다”고 말했다.

뉴토피아는 김은하씨가 기획했다. 어떤 콘텐츠로 채워나갈지는 멤버들 모두가 참여했다. 모두 본업이 있는 상태에서 따로 시간을 내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허 대표는 “모두 투잡, 쓰리잡을 하고 있다. 쉬는 날이 별로 없다. 모두가 희생하면서 콘텐츠를 제작했다. 누군가 잠을 못 자고 촬영하러 왔으면 다음번엔 다른 사람이 잠 못 자고 촬영하러 온다. 하기로 했으니까 희생을 감내했다”며 “하기 싫은 날도 있었다. 다들 너무 힘들지만, 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책임감을 갖고 임한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의 비혼 다이어리 1화에서 우나가 팀원들에게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모습. 사진=유튜브 채널 소그노화면 갈무리.
▲우리의 비혼 다이어리 1화에서 우나가 팀원들에게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모습. 사진=유튜브 채널 소그노화면 갈무리.

허 대표는 독자들이 소그노 채널에 큰 프로젝트를 기대하는 것 같다고 했다. 소그노는 지난 8월부터 독자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뉴토피아’의 시즌2 격인 ‘우리의 비혼 다이어리(우비다)’ 프로그램으로 돌아왔다. 우비다는 7명(우나, 휘수, 혜지, 채림, 지혜, 현지, 현주)의 비혼여성이 한집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다. 허 대표는 “독자들은 소그노의 기획력과 판을 벌일 줄 아는 실행력을 좋아한다”며 “이제 소그노를 어느 정도 알만한 사람들은 알게 됐다. 한발 더 나아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소그노가 뉴토피아 다음 시리즈를 개시했다? 이제 소그노 20만 30만 갑시다!” “우리의 비혼 다이어리라니 저도 끼고 싶네요.” “우비다 진짜 너무 재밌다고요. 1화부터 재밌는데 앞으론 더 재밌겠죠?” “이 콘텐츠 대박인 것 같아요. 진짜 재밌어요. 비혼인 친구들이랑 같이 살면 어떨까 항상 생각해봤는데 대리만족도 되고” “소그노 기획력 진짜 최고다.” 실제로 우비다에 보이는 독자들 반응이다.

주 독자층 98%가 여성이다. 18~34세가 보는데, 주 시청 연령대는 18~24세다. 허 대표는 “주 시청 층이 원하는 콘텐츠를 소그노가 만들고 있어 관심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희가 하고 싶었던 콘텐츠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독자들도 보고 싶었던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재밌고 뭉클한 콘텐츠라는 평이 많다”고 전했다.

▲퇴근 후 우비다 팀원들이 모여 케이크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유튜브 채널 소그노화면 갈무리.
▲퇴근 후 우비다 팀원들이 모여 케이크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유튜브 채널 소그노화면 갈무리.

여성들을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허 대표의 시선에 기성 미디어가 ‘여성’을 다루는 방식은 어때 보였을까. 허 대표는 기성 미디어가 눈치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허 대표는 “저는 요즘엔 느끼는 건 기성 미디어가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눈치 보고 있는 것 같다. 근데 눈치 보는 게 보여서 짜증 난다. 예를 들어 최근 여자들만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인 여은파, 밥블레스유, 환불원정대 등이 생겼다. 눈치는 보지만 보는 만큼 노력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허 대표는 “센 언니, 사이다인 캐릭터를 주로 내세우면서 여성에 대한 프레임을 다시 짜고 있다. 쎄고, 과감하고, 쿨하고, 섹슈얼한 캐릭터만 있다. 캐릭터에 대해 별로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다양하지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다. 이게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막 나쁜 거라고 볼 순 없지만 아쉽다”고 지적했다.

▲아직 퇴근 못한 휘수를  같이 사는 우나, 현지, 채림이 데리러 가고 있다. 사진=유튜브 채널 소그노 화면 갈무리.
▲아직 퇴근 못한 휘수를 같이 사는 우나, 현지, 채림이 데리러 가고 있다. 사진=유튜브 채널 소그노 화면 갈무리.

안티팬들도 있지만, 신경 쓸 시간이 없다. 허 대표는 “우리가 콘텐츠를 올리면 불특정 다수가 늘 뭐라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도 뭐라 하고 저렇게 만들어도 뭐라 한다. 성별을 불문하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하지만 우리는 여성들이 재밌으면 된다. 재미 혹은 위안을 얻어갔으면 좋겠다. 가끔 짜증 날 때도 있지만, 저희는 악플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시간이 없다. 너무 바쁘다. (웃음)”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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