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EBS ‘머니톡’을 시청하고 ‘재무설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에서는 ‘1:1맞춤형 보험 리모델링’코너를 통해 전문가들이 의뢰인의 보험료 지출 가운데 불필요한 상품을 해지하고, 더 나은 상품을 안내했다. ‘1:1맞춤형 미래설계’ 코너에서는 투자 방법에 대한 조언이 이어졌다. 방송 말미에 진행자는 “투자를 하고 싶은데 도저히 방법을 모르는 분들은 머니톡 콜센터로 연락주시면 모두 해결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때 “생활 속 새는 돈 재무 고민을 해결해드립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홈페이지 주소와 전화번호가 안내됐다. A씨는 공영방송, 그것도 교육방송의 내용이니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A씨는 홈페이지에 접속해 자신의 이름과 성별, 생년월일, 연락처, 거주지역, 월 소득, 월보험료 등 개인정보를 입력했다. 그런데 EBS가 아닌 키움에셋플래너라는 보험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상담을 했으나 보험설계사가 보험상품을 강매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보험설계사는 집까지 찾아와 영업을 했고, 2차 상담 후에도 계약을 하지 않으면 20만원이 넘는 상담 비용이 발생한다고 했다. 

▲ EBS 머니톡 게시판 화면.
▲ EBS 머니톡 게시판 화면.

EBS ‘머니톡’ 게시판 등에 올라온 항의 사례를 재구성한 것이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경제채널 등에서 ‘재무설계’ 프로그램이 잇따라 방영되고 있으며 적지 않은 방송이 보험 판매에 필요한 개인정보 데이터 확보를 위한 판촉 상품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표적인 업체는 키움에셋플래너다. 키움에셋플래너는 보험과 재무설계를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로 여러 회사의 보험상품을 비교해 판매하고 있다. 키움에셋플래너 홈페이지에는 EBS ‘머니톡’ 뿐만 아니라 지역민영 지상파방송, 경제전문채널, 종합편성채널 등 8개 방송사에 프로그램 제휴를 맺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제휴라는 표현이 모호한데 EBS와 키움에셋플레너는 협찬 계약을 맺고 있다. 방송에는 전문가 패널이 등장하는데 키움에셋플래너측 보험설계사들이 다수였다. 방송사에서 섭외를 요청하면 키움에셋플래너가 자사 보험설계사들을 방송에 내보내는 방식이다. 방송사 재무설계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실상 특정 보험설계 업체의 ‘뒷광고’인 셈이다. 

▲ EBS '머니톡' 화면 갈무리.
▲ EBS '머니톡' 화면 갈무리.

이 방송은 여느 음성적인 협찬과 달리 단순히 키움에셋플래너 회사를 알리기 위한 홍보 수단에 그치지 않았다. 키움에셋플래너 협찬으로 제작된 방송 프로그램들은 전화, 홈페이지 접수 방식으로 무료 보험설계 및 재무상담을 해준다고 홍보하고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를 입력하게 했다.

EBS ‘머니톡’의 경우 홈페이지에 접속해 무료 상담 버튼을 누르면 개인정보를 입력하는 페이지로 이어지는데 키움에셋플래너에 개인정보가 전달돼 보험 영업에 활용된다. ‘약관 보기’ 버튼을 누르면 키움에셋플래너가 개인정보를 가져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만 EBS홈페이지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기만당하기 쉬운 구조다. 시청자 민원 역시 특정 업체의 보험 판매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데 집중되고 있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키움에셋플래너측 내부 자료에 따르면 방송 프로그램 목적은 ‘회사 홍보’가 아니라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DB)’라는 점이 분명히 나와 있다. 해당 자료에는 “지상파 방송이 늘어나면서 DB(데이터베이스) 확보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지상파 채널 확대는 콘텐츠 신뢰도 측면에서 우수하며 새로운 시장 확보에 도움이 되고 있다”, “우리의 주력인 방송DB 생산을 위해 EBS, IHQ, TBC, KFM 신규 채널을 런칭하였다” 등의 표현이 있었다. 

이용자들이 상담을 통해 언급한 정보들은 키움에셋플래너 내부 데이터베이스에 방송사별로 분류돼 기록된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키움에셋플래너 업무 과정을 취재한 결과 이용자 상담을 통해 수집한 개인정보를 일선 보험설계사들에게 판매하고 있었다. 개인정보는 유형에 따라 건당 7만원, 8만원 수준이다. 이용자는 자신의 상담 정보를 키움에셋플래너가 판매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 수 없다.

▲ EBS 머니톡 홈페이지 상담 화면. '약관 보기'를 누르지 않으면 EBS에 상담하는 것처럼 이해할 수 있지만 실상은 키움에셋플래너에 개인정보가 제공된다.
▲ EBS 머니톡 홈페이지 상담 화면. '약관 보기'를 누르지 않으면 EBS에 상담하는 것처럼 이해할 수 있지만 실상은 키움에셋플래너에 개인정보가 제공된다.

 

▲ EBS '머니톡' 홈페이지를 통해 상담 문의를 하자 곧바로 문자가 왔다. EBS라고 언급돼 있으나 키움에셋플래너 직원의 문자였다.
▲ EBS '머니톡' 홈페이지를 통해 상담 문의를 하자 곧바로 문자가 왔다. EBS라고 언급돼 있으나 키움에셋플래너 직원의 문자였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설계사들은 회사의 정식 직원이 아니라 계약을 맺은 특수고용노동자다. 설계사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영업사원”이라며 “보험영업의 특성상 보험은 지인 영업을 중심으로 해 신규고객 창출이 어렵다. 보험사가 방송을 통하면 신뢰를 얻을 수 있고, 광범위한 고객 정보도 취득할 수 있어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즉 키움에셋플래너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상담을 유도하고, 상담을 통해 수집된 개인정보를 다시 보험설계사들에게 판매하며 돈을 버는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키움에셋플래너가 이 시장을 개척한 사업자인데 최근에는 다른 보험사 및 광고대행사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경우가 많아 경쟁이 심화됐다”며 “방송사, 보험판매사, 영업사원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 개인정보가 남용되고 있다. 방송이라는 가면을 쓰고 하는 호객행위로 본질은 기만과 호도라고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주무부처인 방통위는 최근까지 홈쇼핑 연계편성 실태조사 등 기만적 협찬 문제에 대해 다루면서도 보험사가 프로그램을 협찬하고 상담 명목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해 판매하는 사례는 알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 EBS '머니톡' 화면 갈무리.
▲ EBS '머니톡' 화면 갈무리.

기만적 방송협찬도 문제지만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도 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기만’과 ‘제3자 무단 제공’ 두 측면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봤다.

오 활동가는 “(홈페이지에서) 재무상담 메뉴를 클릭하면 아무런 설명 없이 키움에셋플래너 홈페이지로 이동하는 것은 소비자 기만적이다. 마치 EBS에 자신의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상담을 받는 것으로 오해할 수 밖에 없다”며 “과거 홈플러스에서 고객의 동의를 받는 형식은 갖췄지만, 고객들을 경품행사 참여로 오인하게 하여 보험회사에 개인정보를 판매한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개인정보 판매와 관련 오병일 활동가는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동의 과정에서 수집목적이 ‘상담신청’으로 돼 있는데 만약 보험설계사가 보험 판촉을 했다면 수집 목적을 벗어난 제3자 제공으로 불 수 있을 것 같다”며 “법적으로 업무를 대신하는 ‘위탁’은 가능한데, 보험설계사가 보험회사의 업무를 대신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주체”라며 ‘위탁’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EBS는 “동의한 신청자에 한하여 키움에셋플래너로 정보가 제공되는 구조”라며 “특정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게 아니라 전 국민 경제교육의 일환으로 재무설계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BS는 계약 과정에서 개인정보 판매에 대한 조항은 없다고 밝혔다.  

미디어오늘은 구체적인 협찬 방식과 개인정보 수집과 판매의 위법성에 대해 키움에셋플래너측에 문의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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