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장남의 입사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남 최인근(25)씨가 SK E&S 전략기획팀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회사에서 보도자료도 내지 않았는데, 한 언론이 보도하면서 100여 개 넘는 언론사가 다퉈가며 이 사실을 보도했다. 최인근씨가 미국 유수의 대학을 나와 글로벌 컨설팅 회사 인턴을 거쳐 입사했다며 SK그룹이 본격적인 3세 승계작업에 돌입해 계열사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능력을 평가받을 것이라 전했다.

▲ 네이버 뉴스 최인근씨 관련 기사 갈무리
▲ 네이버 뉴스 최인근씨 관련 기사 갈무리

최태원 회장의 세 자녀는 모두 20대에 SK그룹에 취업했다. 장녀인 최윤정씨는 SK바이오팜 책임 매니저로 일하다 지난해 휴직하고 미국 유학을 갔다. 차녀 최민정씨는 2019년 SK하이닉스에 대리급으로 입사했다. SK그룹뿐 아니라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 현대차그룹의 정의선 수석부회장 등 2세와 3세에 이어 족벌경영체제를 하는 대부분의 재벌가 자녀들은 어린 나이에 낙방 한번 없이 재벌그룹 회사에 이력서(?) 한번 쓰고는 모두 취업했다. 그리고 신입이든, 경력직이든 일반 사원들은 결코 할 수 없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불과 몇 년 만에 대기업 임원이 되었다.

세습경영, 족벌경영 문제는 제쳐둔다고 하더라도, 재벌가 자식들의 재벌회사 취업에 대해 스펙을 어디서 쌓았고 경영수업을 어떻게 받는가를 살펴보기 전에 과연 이 채용이 공정한지 또는 합법적인지 먼저 따져봐야 한다. 그러나 인국공 논란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고용세습이며, 노조의 우선·특별 채용이 청년들의 공정한 취업 기회를 빼앗는다며 연일 입에 거품 물때와는 달리, 재벌이 대주주나 광고주로 있는 보수 언론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비공개 수시모집이 공정?

최인근씨는 SK E&S에 ‘신입사원 수시모집’으로 선발돼 9월21일부터 출근했다고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재벌가 자녀의 재벌회사 취업은 부모찬스, 회장찬스 등 채용의 구조적 문제를 갖고 있지만 이번 경우는 더 살펴봐야 하는 문제가 있다. 바로 ‘수시모집’이다. 최근 대부분의 대기업이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신규채용을 줄이고 채용을 하더라도 공채보다는 수시채용 형태로 바꾸고 있다. 지난 8월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530곳의 상장사를 대상으로 ‘2020년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 채용방식’을 조사한 결과 수시채용을 하겠다는 기업이 41.4%로 작년(30.7%)보다 10.7%포인트 늘었다고 밝혔다. 반면 공개채용을 통해 신입을 뽑겠다는 기업은 39.6%로 작년(49.6%)보다 10.0%포인트 줄었다.

공채는 말 그대로 구직 내용과 절차 등을 공개해서 채용하는 방식이지만, 수시모집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이른바 ‘그림자 채용’으로 온라인 취업사이트의 구직자 이력서를 검토해서 뽑거나, 내부 추천, 헤드헌팅 등을 통해 인력을 구하는 비공개 채용 방식으로도 진행한다. 이를 ‘몰래 뽑기’라고 하는데, 최근 코로나 확산 이후 이 같은 비공개·수시 채용, 몰래 뽑기 채용이 급증하고 있다. 비공개·수시모집은 채용조건과 일정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어떤 기준과 절차로 뽑는지 불분명해 채용의 공정성이 훼손될 우려가 매우 크다.

최인근씨의 채용 방식도 비공개·수시모집 즉 ‘몰래 뽑기’ 방식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의 모든 채용을 총괄하는 ‘skcareers’(skcareers.com)에 따르면, 상반기에 SK E&S는 신입사원 공채를 하지 않았고, 2020년 들어 신입사원 수시모집 공고도 없었다. (SK E&S는 최인근씨 입사 이후인 9월25일부터 올해 최초로 신입 공채를 시작했다) 올해 수시모집으로 뽑았다면 비공개 채용이 이뤄졌다는 얘기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 딸인 최민정 해군 중위가 청해부대 19진(충무공이순신함)으로 소말리아 아덴만 파병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2015년 12월23일 해군작전사령부 부산기지에서 열린 입항 환영식에 참석, 어머니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과 최인근씨(오른쪽 맨 끝)를 만나 배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최태원 SK그룹 회장 딸인 최민정 해군 중위가 청해부대 19진(충무공이순신함)으로 소말리아 아덴만 파병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2015년 12월23일 해군작전사령부 부산기지에서 열린 입항 환영식에 참석, 어머니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과 최인근씨(오른쪽 맨 끝)를 만나 배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용세습은 누가하나?

불공정 채용에 대해 재벌과 보수언론은 회사와 노동조합이 맺은 단체협약 중 조합원 자녀 우선채용과 산재 노동자 가족 특별채용을 들었다. 우선·특별채용 규정 때문에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이 고용을 세습하고 청년들은 공정한 취업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정에서 각종 비리로 친인척 간에 정규직 전환이 이뤄졌다며 정규직 전환이 고용세습의 도구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정책기본법은 7조에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채용할 때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신앙, 연령, 신체조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학력, 출신학교 등을 이유로 차별하면 안 되고 균등한 취업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전경련은 우선·특별채용 규정이 평등권 및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어, 고용정책기본법과 직업안정법 등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보수언론은 이런 전경련의 주장을 비판 없이 받아들여 노동조합이 청년들의 취업 기회를 빼앗은 것처럼 묘사하고 고용세습을 추구한 이기적인 집단으로 노동조합을 매도했다.

장기근속 또는 정년퇴직자 자녀의 우선채용 조항에 대해 노동조합은 이 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며, ‘노력한다’, ‘할 수 있다’는 식의 가능성을 제시한 조항일 뿐이라고 반발했다. 실제 적용에서도 89곳 중 3년 이내에 이런 채용사례가 있었던 사업장은 한 곳만 확인된 바 있다. 또한 현대자동차 단체협약(부속서)과 같이 '정년 퇴직자 또는 25년 장기근속 조합원 자녀와 일반 입사 지원자 조건이 같으면 조합원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선발 커트라인 ‘동점자 처리’에서 조합원 자녀 우선 선발 기준이다. 물론 동점자 처리 기준이라 하더라도 부모가 장기근속자라는 이유로 선발하는 것은 문제이기 때문에 이후 노동조합은 이 규정을 철회했다.

단체협상 조항에 있건 없건, 조합원 자녀라는 이유로 우선 채용되면 당연히 채용 비리다. 서울교통공사, 인천공항 공사를 비롯해 공공부문 전반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정에서 채용 비리 등 고용세습이 이루어졌다며 정치권과 보수언론에서 주장했고, 자유한국당(현 국민의당) 등 야당은 ‘서울교통공사 등 공공기관의 고용세습·채용 특혜'라며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했다. 이후 정부가 이 요구를 받아 공공기관 채용실태 전수조사를 진행했고 모두 182건의 비리를 적발했다. 하지만 이 중에 노동조합과 관련된 사항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결국 노조의 고용세습 뉴스는 ’고용세습 노조‘ 프레임을 씌우기 위한 가짜뉴스로 판명 났다. 서울교통공사의 정규직 전환도 온갖 논란이 벌어졌고 감사원이 9개월 동안 감사를 진행했지만, 정규직 전환자 가운데 15%가량이 재직자와 친인척 관계로 드러났다고 밝힌 것 외엔 다른 비리나 부정이 적발되지 않았다.

▲ 네이버 뉴스 ‘고용세습’ 관련 기사 갈무리
▲ 네이버 뉴스 ‘고용세습’ 관련 기사 갈무리

한편, 특별채용은 조합원이 업무상 사망하거나 6급 이상 장해로 퇴직할 때 직계가족 중 1인을 특별채용하는 내용이다. 결론을 먼저 얘기하면 이런 특별채용은 불공정한 채용이 아니라 희생된 노동자에 대한 보상과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측면에서 공정한 것으로 간주한다.

현대차에서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자녀가 이 조항에 따라 채용을 요구했지만, 현대차는 이를 거부했다. 현대차 사측은 이 단체협상 조항이 선량한 풍속이나 기타 사회상규를 위반했다(민법 103조)며 무효라고 주장해 소송으로 가게 됐다.

하지만 2020년 8월 대법원은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소중한 목숨을 잃어버린 근로자의 특별한 희생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고, 가족 생계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약자를 보호 또는 배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규정으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 실질적 공정을 달성하는 데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며 산재 유족 특별채용은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애초에 이런 특별채용도 위법이라던 전경련 소속 재벌 기업의 회장 또는 대주주 자녀들은 채용과정이 어떻게 되는지조차 모르게 입사해 초고속으로 임원에 올랐다. 이 소송에서 현대차의 경우 정몽구 회장의 아들 정의선씨는 1994년 현대모비스 과장으로 입사했다. 당시 나이 25세로 이듬해 퇴사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5년 뒤 1999년 현대차 상무로 재입사했다. 25세에 입사와 동시에 과장이 됐고 30세에는 국내 두 번째로 큰 대기업의 상무가 됐다. 현대차의 논리대로면 부모가 회장이나 대주주인 자녀의 채용과 초고속 승진은 ‘선량한 풍속’에 해당하고,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의 가족이 특별채용 되는 것은 불공정하고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것이다.

▲ 1월2일 오전 서울 서초구 현대차 본사에서 열린 2020년 시무식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신년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1월2일 오전 서울 서초구 현대차 본사에서 열린 2020년 시무식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신년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법원은 판결에 앞서 이 사건의 공개 변론을 열었다. 특별채용이 비조합원 자녀와 사이에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측의 반론에 대해 한 대법관은 “대기업 회장 자녀로 태어났다는 사정으로 부와 경영권을 세습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적 신분에 의한 특혜 아니냐”고 참고인에게 물었다. 사건 참고인으로 출석한 법학 교수는 “처음에 (대기업 회장) 자녀를 직원으로 채용하는 것이야말로 이 사건 원심이 말한 청년들의 꿈을 저버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재벌가 자녀의 채용은 고용세습만이 아니라 경영권까지 세습하기 때문에 더 큰 불공정과 불의를 일으키는 문제로 볼 수 있다. 이 거대한 불공정의 시작이 바로 이들의 채용에서부터 시작된다.

공정한 채용이란?

채용의 공정성 문제는 채용 과정의 공정성과 채용 구조의 공정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기업의 노동 유연화 때문에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나뉘어 있는 ‘이중 노동시장’에서 채용 과정이 아무리 공정하더라도 채용 자체가 구조적으로 불공정하고 차별적일 수 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더라도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임금 격차와 각종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이 공정하지 않은데 채용 과정만 공정한 것은 의미가 없다. 과정의 공정성만 추구하면 정규직 고용의 바늘구멍을 누가 먼저 통과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돼 노동자들끼리 경쟁하게 된다. 이른바 인국공 사태와 같이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서조차 논란을 만든다.

또한, 사회의 계층 이동성이 낮고 ‘부모찬스’로 학력, 부, 직업의 대물림이 커진 현재 상황에서 ‘부모찬스’를 해소하지 않는 한 채용의 공정성은 보장될 수 없다.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녀는 부모찬스가 없어 비정규직으로 취업하고, 돈 많고 학력 수준이 높은 고임금의 정규직인 부모의 자녀들은 또 정규직으로 취업한다. 앞서 대법원 공개토론에서 나왔듯이, 사회적 신분이 부와 경영권 세습이라는 특혜를 낳고 대기업 채용이 불공정의 시작이며 청년들의 꿈을 저버리는 행위가 된다. 따라서 채용 과정의 공정성과 나란히 채용의 구조적 문제 해결이 추구돼야 하며,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시장 유연화 중단 등 노동시장 불평등 개선과 사회 구조적 불평등 해결이 약속돼야 한다.

채용 과정의 문제로만 좁혀서 보면, 채용은 인사 문제이기 때문에 채용 비리는 인사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인, 세력, 집단에 의해서 발생한다. 일반 노동자나 노동조합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기업 임원이나 경영진, 권력기관 사이에서 벌어진다. 또 공기업이나 공공기관보다 채용과정이 투명하지 못한 민간 기업에서 더 많이 자행되고 있다.

공공부문 채용 비리는 매년 줄고는 있다지만 끊이지 않고 있고 정부의 감사나 조사로 밝혀내지 못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제대로 감사조차 받지 않고 기업 활동에 비밀이 많은 민간 기업에는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을지 가늠조차 안 된다. 민간기업의 채용 비리는 기업 내부에서 공익제보 없이는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영업비밀, 기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채용과정과 기준 등을 공개하지도 않고 사후 감사를 받지도 않기 때문이다.

민간기업의 채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리를 막고 채용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이 2014년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이 법은 청탁 기준 등이 명확하지 않아 실효성이 없고 특히 공개채용 원칙을 밝히지 않아 ‘몰래 뽑기’가 가능해 문제가 될 수 있는 채용과정에 면죄부만 준다는 비판이 존재했다.

그러므로 채용절차법이 실효성이 있도록 개정하고 민간기업의 비공개·수시 모집을 근절시켜야 한다. 또한 외부 회계감사를 의무화하듯 외부감사 대상 기업이나 상시고용 3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 채용, 승진 등 ‘인사에 대한 감사’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주주와 함께 인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임원 자녀의 채용은 특별감사 대상으로 다루고, 지난 10년간 총수 있는 대기업 집단에서 총수 일가와 기업 임원의 자녀가 공정하게 채용됐는지 전수조사해야 한다. 그래야 권력기관 사이의 부정 청탁이나 개인적인 청탁이 사후에라도 발각될까 두려워하고 민간 기업에서도 공정한 채용을 위한 노력을 좀 더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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