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이용 가능한 입구에서 기다릴게요.” 지난 25일 유튜브 채널 함박TV 운영자 함정균씨를 만나기 위해 서울 미아동에 위치한 카페 근처에 다다랐을 때 문자를 받았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함정균씨는 계단이 있는 카페 정문으로는 입장할 수 없었다. 계단이 없는 옆문이 있긴 했지만 카페는 이 문을 잠가 출입로로 쓰지 않고 있었다.

함정균씨를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유튜버 함정균’이 아니라 ‘마술사 함정균’이 뜬다. 2003년 일본 세계마술대회 우수연기상 등 수상 실적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원래는 마술사였는데, 더 이상 마술을 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2013년 오토바이 사고로 척수장애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재활치료로 상반신은 움직일 수 있게 됐지만 움직임이 완벽하지는 않다.

▲ 서울 미아동 소재 카페에서 만난 함정균씨. 사진=금준경 기자.
▲ 서울 미아동 소재 카페에서 만난 함정균씨. 사진=금준경 기자.

그가 유튜브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계기는 ‘불편함’ 때문이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을 처음 탔던 순간을 그는 잊지 못한다고 했다. 

“장애가 없는 분들은 못 느낄 거다. 튼튼한 두  다리가 있으면 계단이 보이면 계단 따라 올라가고, 에스컬레이터가 보이면 에스컬레이터 타면 된다. 모르는 길도 환승 안내를 따라가면 된다. 그런데 장애인들은 이동하기도 힘들고, 환승 동선 표시도 없다. 환승하는 데 30~40분씩 걸린 적이 몇 번 있다. 그래서 열 받아서 나중에 올 때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영상을 찍어 올렸다. 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영상을 찍다 보니 영상이 필요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른 장애인들은 물론이고 유모차를 끄는 어머니들이 감사를 표했다. 한 번은 지하철에서 저를 알아보고 유모차를 끌고 환승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감사 인사를 하신 분도 계셨다. 장애인 뿐 아니라 비장애인을 위해서도 뭔가 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구독자가 많은 채널은 아니지만 사회에 꼭 필요한 채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창기엔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찍었는데 손이 떨려 카메라가 심하게 흔들렸다. 대책이 필요했다. 전동휠체어 한쪽 기둥에 360도 카메라를 부착했다. 각도가 아쉽지만 안정적인 촬영이 가능해졌다. 보조 카메라가 필요하면 DSLR 카메라를 목에 달고 현장에 간다. 유튜버로서 촬영과 편집 등 기술을 배우기 위해 방송콘텐츠진흥재단 1인미디어 제작스쿨 2기를 수료하는 등 교육에도 참여했다. 그는 수료생 가운데 유일한 장애인이었다.

▲ 함박TV 고속터미널역 환승 구간 촬영 영상
▲ 함박TV 고속터미널역 환승 구간 촬영 영상
▲ 함박TV 건대입구역 환승 구간 촬영 영상
▲ 함박TV 건대입구역 환승 구간 촬영 영상

그는 수도권 환승역 100곳 중 93곳에서 휠체어 환승 영상을 찍어 올렸다. 사실상 수도권 지하철 전 노선에 해당한다. 촬영하지 않은 7곳은 환승역이긴 하지만 지하철에서 내리면 반대편에서 바로 탈 수 있는 역이다. 언론이 조명하지 않은 장애인 보행을 위해, 스스로 대안 미디어가 된 것이다.

지하철 환승은 길 찾기 외에도 난관이 있다. 엘리베이터가 점검 중이면 이동할 방법이 없다. 한 번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환승하려 했으나 엘리베이터가 점검 중이라 동대문역으로 이동했는데, 이번에도 점검 중이었다. 결국 그는 또 다시 지하철을 타고 혜화역으로 이동해야 했다. 함정균씨는 “보통 약속이 있으면 1시간 정도는 변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출발한다”고 했다. 

함정균씨는 지하철 환승 구간에 이어 ‘버스 이동 영상’에 도전했다. “휠체어 장애인 버스 탑승 상황! 서울의 저상버스 여행 korea bus” 영상은 조회수 92만회에 달했다. 서울 버스를 타는 영상인데 버스 정차와 동시에 장애인 휠체어용 발판이 자동으로 나왔다. 함정균씨가 버스에 탑승하자 기사가 다른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의자를 접어서 휠체어 자리를 확보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 함박TV 서울버스 탑승 영상.
▲ 함박TV 서울버스 탑승 영상.

 

▲ 함박TV 서울버스 탑승 영상.
▲ 함박TV 서울버스 탑승 영상.

“영상 댓글을 보면 두 군데서 놀라더라. 장애인이 버스를 탄다는 점에서 놀라고, 버스 기사들이 친절해서 놀란다. 카메라가 있으니 친절한 거 아니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 기사님들은 카메라가 없어도 그렇게 일하신다. 서울 버스 기사님들은 인식 개선이 잘 돼 있다.”

그는 “장애인들에게 버스 탑승이 어렵지 않다”면서도 “서울에서는 그렇다”고 부연했다. “경기도만 돼도 버스 타기 힘들다. 경기도는 장애인이 정기적으로 이용하는 노선이 아닌 경우 엉망이다. 한 지역 마을버스는 전 노선이 저상버스인데 정작 발판이 고장 난 경우가 많다. 그러면 버스가 그냥 가버리더라. 그렇게 몇 번 기다렸는데 이후 도착한 버스는 발판이 자동으로 안 나와서 기사가 수동으로 겨우 뺐다. 결국 버스 타기를 포기하고 지하철을 탄 적도 있다. 출발 전에 발판 확인만 해도 이렇지는 않을 거다.”

장애인의 보행권을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그의 시선에 기존 미디어는 어떻게 보였을까. 그는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주인공 동생이 장애인으로 나온다. 그는 자신의 지적 재산을 나누는 역할을 한다. 이런 점은 의미 있는데 그가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면서 동료들과 대화하는 장면을 내보냈다면 좀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함정균씨는 “미디어는 ‘불편’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긴 한다. 그러면 바뀌는 점도 있다. 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게 일상을 노출하는 일”이라며 “드라마에서 휠체어에 탄 장애인이 버스에서 친구와 재잘거리는 모습이 노출되면, 장애인이 버스를 타는 일이 더는 낯설지 않을 거다. 그러면 기사님들도 저상버스 발판이 안 나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점검을 한 번이라도 더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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