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MBC 아나운서 직군에 남성은 정규직, 여성은 비정규직 채용이 이뤄진 것은 관련 법제가 없어서 일어난 일일까. 남녀고용평등법은 모집·채용에서의 성차별을 명확하게 금지한다. 그럼에도 노동시장에서 채용 성차별과 분리채용이 지속되는 이유는 뭘까.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8일 채용 성차별이 지속되는 데엔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 성차별 시정 대책 △기업이 성별 채용 불이익을 경시하는 실태 △노동조합의 관심부족 등 3박자가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과 정의당 여성본부, 대전MBC아나운서 채용성차별 문제해결을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성차별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와 의미’를 주제로 웹세미나를 진행했다. 

정부 차원 대책이 추상적이고 단편에 머무르는 것도 주요 원인이다. 고용노동부의 남녀고용평등기본계획(2018~2022년)을 보면 경력단절여성과 성희롱, AA제도(사회적 소수자에게 고용기회를 제공하는 ‘적극적 개선조치’를 의미)만을 주로 다루고 있는 한편,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른 고용 성차별 시정 제도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 

남녀고용평등기본계획은 3대 분야, 7개 중점과제, 64개 세부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차별없는 일자리 환경 구축, 경력단절 예방, 경력단절 후 재취업 지원의 3대 분야가 있다. 사실상 여성 성차별의 문제를, 차별시정 정책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다 보니 ‘성희롱이 여성노동권을 이야기하는 유일한 언어가 돼버린 상황’이라고 했다.

▲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과 정의당 여성본부, 대전MBC아나운서 채용성차별 문제해결을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28일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성차별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와 의미’를 주제로 웹세미나를 진행했다. 공대위 제공
▲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과 정의당 여성본부, 대전MBC아나운서 채용성차별 문제해결을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28일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성차별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와 의미’를 주제로 웹세미나를 진행했다. 공대위 제공

구 연구위원은 “1988년 남녀고용평등법 시행 이래 2012년까지 성차별 소송 숫자는 32건, 이후 추가 판결은 10건 미만이다. 2010~2017년 고용노동청 성차별 사건 접수는 매년 18~46건에 불과하다”며 “차별시정 정책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다 보니 사실상 성희롱이 여성노동권을 이야기하는 유일한 언어가 돼버린 상황”이라고 했다.

있는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건 고용차별의 판단 기준이 없거나 현실에서 적용되지 않는 탓이 크다. 구 연구위원은 KEC 생산직 승진·임금 성차별과 금융권 채용 성차별 관련 노동부의 판단 사례를 들었다. 최근 KEC 생산직 여성노동자들은 인권위에 승진과 임금차별 진정을 해 인용 결정을 받았다. 기아차 생산직 정규직 전환 과정의 성차별도 진정이 제기됐다. 그러나 해당 지역 노동청은 ‘간접증거만으로는 성차별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답변하는 등 근로감독 기준은 명시·직접적 단계에 머무른다. 노동부는 2017년 금융권 채용 성차별 사건을 계기로 18개의 의심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에 들어갔지만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

구미영 연구위원은 이어 “대전MBC 성별 분리채용 사건과 관련해 사용자가 이를 20년여간 성차별로 인식하지 못한 점이 가장 눈에 띈다”며 “기업들이 아직도 고객 요구와 수요에 맞추기 위해 채용에서의 성별 불이익이 허용될 수 있다고 믿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구 연구위원은 국내 법령 해석이나 해외 법령, 판결례를 보면 고용차별금지 법리가 명확한데도 고용 성차별을 허용하는 관행이 지속된다고 했다. MBC 16개 계열사 아나운서의 성별, 고용형태별 현황을 보면 남성은 정규직·무기계약직의 비율이 87.8%이고 여성은 38.9%이다.

▲대전MBC 로고.
▲대전MBC 로고.

구 연구위원은 “대기업이나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방송사조차 고객의 선호, 수요를 차별의 이유로 주장하거나 믿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하다”며 “고객 선호만으로는 차별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정책 홍보를 기업과 인사노무담당자 대상으로 적극 실시해야 한다”고 했다.

노조의 무관심도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다. 구 연구위원은 “방송국은 노조의 조직화 규모와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큰 분야인데도 대전MBC 사건에서 노조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찾기 어려웠다”며 “지역MBC 성별 분리채용이 이제야 문제로 떠오른 데는 사업장 내 중요 행위 주체인 노조가 성평등 관련 역할과 관심이 부족한 데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고용 성평등 관련 노조의 관심과 의지 부족은 국내 노조 전반의 문제”라고 했다.

구 연구위원은 개선 방안으로 고용성차별 전담 행정을 강화하는 한편 국내 AA제도가 실질 기능을 하도록 손보고 방송통신위원회가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구 연구위원은 노동청에서 성희롱과 성차별 사건을 전담하는 부서를 두는 등 성차별 관련 근로감독행정을 강화하고, 노동위원회 차별시정전문위에서 고용 성차별 사건을 판단하도록 하거나 인권위가 차별금지법을 바탕으로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리도록 판단 전문기구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기업 내 성별 격차 관련 데이터 공개와 활용도 쉽게 만들어야 한다. 현재 한국의 AA제도는 노동부가 모니터링 결과를 보고받고 미달 기업을 심사해 이행하도록 하는 과정이 모두 정부에게 맡겨져 있는데 정부가 2000개 넘는 기업을 모두 검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구 연구위원은 미국이나 캐나다, 호수, 영국과 같이 고용노동부에 강제 조사권을 부여하거나 기업이 노조나 여성 노동자 등 이해당사자에게 격차 현황 정보를 공개하고 개선에 참여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가 28일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성차별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와 의미’ 웹세미나에서 온라인으로 당사자 발언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가 28일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성차별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와 의미’ 웹세미나에서 온라인으로 당사자 발언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이를 위해선 방송통신위원회 지침 등 방송산업 내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 MBC와 KBS, SBS는 AA제도 적용 대상기업이라 정부에 성별 고용과 임금 현황을 보고하지만 공개하진 않는다. 구 위원은 “미국 연방통신위 사례 등을 참고하여 방송국의 고용 평등 준수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구체적인 개선계획까지 공개하도록 하며 위반 시 제재할 권한까지 신설하는 규정이나 지침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유지은 아나운서는 이날 온라인 발언을 통해 “여성 아나운서에 대한 성차별 시각 인식 관행은 꽤 오랜 기간 이어졌다. 문제는 저조차 그걸 너무 당연히 받아들였다는 것”이라고 했다. 유 아나운서는 “아나운서 준비할 때 어느 지역사에서 정규직 채용공고가 뜨면 ‘당연히 남자 자리겠구나’ 생각했다. 알아보면 어김없었다”며 “아나운서로 일을 시작하고 1년 지나고서도 생각한다. ‘너무 오래 일하지 않았나?’ 눈치가 보였다”고 했다.

유 아나운서는 “대전MBC가 인권위 권고에 대해 보낸 입장문을 보면 실망스러운 게 사실이다. 성차별을 했다고 인식하고 반성하는 게 없고, ‘다 아닌데 일단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유 아나운서는 대전MBC가 수용을 거부한 ‘진정 불이익에 대한 위로금 지급’ 권고에 “내가 진정을 넣은 내용이 아니다. 인권위가 회사 대응에 추가로 적용한 권고다. 사회적 강자가 약자를 어떻게 대해왔는가의 문제로 봐도 중요한 의미이기 때문에 모두 이행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