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민들이 지역 현안을 스스로 알고 논의하는 소통권을 보장하기 위해 서울미디어재단 TBS의 공적 책무 정립이 필수라는 지적이 나왔다. 지역을 사건 현장으로만 다루는 타성을 깨고 기득권이 아닌 다양한 계층 입장에서 사안을 전하며 주민들 소통의 활성화 창구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언론정보학회는 28일 오후 3시 TBS스튜디오에서 ‘지역 공영 미디어의 위상과 저널리즘’ 특별토론회를 열었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가 사회를 맡고 같은 과 김동원 박사가 ‘지역공영미디어의 역할과 법적 위상’을 주제로 발제했다.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지역 공동체의 커뮤니케이션 권리 회복을 위한 시민의 미디어’ 주제로 두 번째 발제를 맡았다. 

▲한국언론정보학회는 28일 오후 3시 TBS스튜디오에서 ‘지역 공영 미디어의 위상과 저널리즘’ 특별토론회를 열었다. 아래는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사진=TBS 유튜브 갈무리.
▲한국언론정보학회는 28일 오후 3시 TBS스튜디오에서 ‘지역 공영 미디어의 위상과 저널리즘’ 특별토론회를 열었다. 아래는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사진=TBS 유튜브 갈무리.

 

김 박사는 “공영방송은 공적 소유 구조냐, 재원이 수신료냐 기금이냐 등에서가 아니라 ‘방송을 통해 시민들에게 어떤 공적 기능을 하겠다는 선언’에서 나온다. 이게 공적 책무”라며 TBS에 “서울에 대한 공적 책무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한 예로 서울시 경제뉴스 실태를 짚었다. 그는 “서울만큼 경제뉴스가 빈곤한 곳이 없다. 부동산 이슈, 택지 개발 등 말은 많지만 다 누굴 위한 개발이고 정책 목표가 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 아파트값이 얼마 오르는지만 보도된다”며 “(공적 책무는) 특정 경제적 이익에 치우치지 않고 지역민이 이해할 수 있고 필요로 하는, 중립적으로 도움되는 정보를 생산하는 책무”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또 “서울시 도시재생이나 재개발 사업에서, 조합원인 건물주, 집주인에겐 충분한 정보가 있지만 인구의 40%인 세입자들은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한다. 때가 돼서야 통지서 보고, 배상금이 너무 적다고 문제제기할 따름”이라며 “이런 정보 부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주거 자산화라는 서울시의 특수한 지역 문제 때문에 떠다니는 인구들을 위한 정보공급 책무가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이어 “정보 없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하고 정보 없는 참여도 의미가 없다”며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역 언론의 관계를 강조했다. 그는 “TBS는 서울시 이슈가 중앙 정부 차원의 이슈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도 설명해야 한다”며 “공적책무 목표가 잘 설정됐는지 등을 점검하기 위해 TBS 이사회를 구성할 때 반드시 시민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채영길 교수는 “시청자는 하나의 거대한 집단이 아니다”라고 먼저 말했다. 전체 국민을 한 집단으로 아우르는 ‘시청자’ 개념이 실제와 모순된다는 지적이다. “개별 시청자들은 개인, 가족 단위로 지역 공동체에 거주하지 국민이라는 큰 집단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서울시민 열에 일곱, 지역 이슈 무관심

지역 현안에 대한 소통 단절과 저조한 참여 문제는 심각하다. 서울지역공동체 공동연구팀(한국외대 채영길·연세대 김영찬·광운대 김예란 교수)이 지난해 10월 7일부터 11월26일까지 서울시 25개 자치구민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42.5%가 ‘지역 주민을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그저 그렇다’고 답했다. 16%는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동네 관련 이슈를 이웃과 얘기한 적 있느냐’는 질문엔 36.8%가 ‘그저 그렇다’라고, 26.2%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6.5%가 ‘전혀 얘기한 적 없다’고 응답했다. ‘지역 발전 관련한 논의나 협의에 참여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비율은 5.5%다. “지역 단체나 활동가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시민들이 어떤 형태로든 지역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 지역 현안을 알기 위해 TV나 라디오를 찾는다고 답한 시민 비율은 적었다. ‘서울 소식을 TV를 통해 접하느냐’는 물음에 19.2%는 ‘전혀 본 적 없다’, 25.5%는 ‘거의 본 적 없다’고 답했다. ‘가끔 본다’는 비율은 20.9%였다. 라디오 청취율은 더 저조했다. 33.4%가 ‘한 번도 청취한 적 없다’고, 41.4%가 ‘거의 청취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채 교수는 조사결과에 “1000만명 서울시민은 지역 이슈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이와 관련해 지역민과 얘기를 나누지 않으며, 이슈와 관련된 어떤 협의나 모임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존 매체를 통해서도 어떤 정보나 이슈를 적극적으로 찾아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채 교수는 이 공백을 지역 공영 언론이 회복시킬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지역 공동체 소외 문제에 있어서 공동체를 위한 저널리즘이 아닌, 저널리즘을 위한 공동체가 형성돼 있다고 보인다. 그런 미디어에 위임된 시민들은 소통권(커뮤니케이션권리)가 매우 축소된다”며 “신뢰할 수 있는, 지역 공공성을 회복시키는 매체가 필요하다. 저널리즘을 위해 지역이 조직되는 게 아니라 지역이 미디어를 조직해야 한다. 나와 이웃의 커뮤니케이션권을 회복하는 첫 걸음”이라고 밝혔다. 

▲‘지역 공영 미디어의 위상과 저널리즘’ 토론회에서 상영된 영상 중 시민 인터뷰 일부 갈무리. 사진=TBS 유튜브 갈무리.
▲‘지역 공영 미디어의 위상과 저널리즘’ 토론회에서 상영된 영상 중 시민 인터뷰 일부 갈무리. 사진=TBS 유튜브 갈무리.

 

정미정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은 토론에서 “치열한 경쟁이 이뤄지는 방송산업에서 지역 공영 방송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물었다. 이와 관련 법 제도 정비와 수익 구조 개선을 강조했다. 

현행 방송법은 ‘공영방송’ 개념을 정의하지 않았고, TBS는 법적으로 ‘지역 방송’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TBS는 또 연 300억원 가량을 서울시로부터 지원받는데 FM라디오가 주력매체이지만 상업광고가 금지돼 있다. 

정 정책위원은 “한국 사회에 공영방송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우선 과제”라며 “이 시스템 구축 속에 수도권 공영방송이자 수도권 지역방송으로서 TBS의 법적 지위가 확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재정이 지자체에 과도히 의존적인 구조는 문제가 있다”며 공적 재원을 넘어 상업 재원을 일부분 허용하는 등 다양한 재원 구성 필요성을 강조했다.

제도 정비에 앞서 지역 언론 스스로가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는 쓴소리도 나왔다. 양병운 언론노조 특임부위원장은 “(교육방송) EBS를 없애야 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만한 평가를 받기 때문이 아니냐”며 ”방송이 존재하려면 시청자에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중앙방송과 차별화 전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 특임부위원장은 “거창한 말 필요 없이 지역민은 지역 방송에 ‘관심 자체가 없다.’ 역사적으로 중앙정부 중심으로 정보가 줄곧 생산·전달됐고 특히 인력 한계도 크다. 전국 방송사는 1시간 뉴스에 수백 명이 투입되고, 지역은 25분을 맡는데 많아야 기자가 20명”이라며 구조적 여건도 지적했다. 

유경한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시민자산화’ 개념을 들었다. 유 교수는 “부동산에서 공동 투자해 조합을 만들어 구매하면 공동 건물주가 되듯, 소유부터 경영까지 자치 개념을 포괄하는 개념”이라며 “지역 특징과 맥락에 맞게 다양한 유형을 시도해볼 수 있지만, 많은 재원이 필요해 현실적인 어려움은 있다. 공적 영역이 어떻게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