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은 ‘세계 기후 행동의 날(Global day of climate action)’이었다. 기후위기대응지수(CCPI)에서 한국은 조사대상 61개국 중 58위로 최하위권이다. 언론은 어떨까. 지난해 전국종합일간지 중 기후위기 기획시리즈를 낸 유일한 곳이 세계일보였다. 주제도 ‘기후변화에 대한 한국 사회 무관심’이었는데, 시리즈 첫 번째 기사 제목이 ‘부동산 기사 2209건 쏟아질 때 기후변화 161건…언론의 홀대’였다. 

지난 25일 저널리즘학연구소가 주최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후원한 ‘한국 기후변화와 지속가능의 저널리즘’ 세미나에선 기후위기 보도에 대한 제언이 쏟아졌다. 박기용 한겨레 기후변화팀장은 “국내에 기후위기 관심이 높아진 건 지난해부터였고 국내 언론의 조직적 관심은 올해부터 본격화됐지만 관련 보도는 일회적 수준에 그치는 느낌”이라고 전한 뒤 “오히려 탈원전 반대를 위한 재생에너지 깎아내리기 기사가 최근의 주된 반동적 흐름”이라고 했다. 

일례가 ‘12건뿐이라더니…태양광 올여름 하루 한 번꼴로 사고’란 제목의 지난 8일자 조선일보 기사다. 산사태 사진과 함께 “집중호우 기간 등 총 52건 피해”란 부제가 달린 이 기사만 보면 마치 매일 태양광으로 산사태가 난 것처럼 비추어진다. 하지만 사고 건수는 전체 태양광 설비 수(34만4000개소)에 비춰 0.015% 수준이었고, 산지 태양광 기준(1만2721개소)으로 보더라도 사고 비율은 0.4% 수준에 불과했다. 반면 집중호우 기간 멈췄던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성에 대한 보도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조선일보 9월8일자.
▲조선일보 9월8일자.

조선일보는 ‘태양광 벌목 5년간 300만 그루 80%는 文정부 출범후 잘렸다’란 제목의 지난 15일 기사에서 “친환경 태양광 에너지라며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2015~2019년 설치된 산지 태양광 1만491개소 중 51%가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 발전허가를 내줬고, 태양광은 발전소 준공까지 1~2년이 소요되기 때문에 2018년까지는 朴정부 허가로 봐야하는데 이런 맥락은 빠졌다. 현 정부에서 산림 보호 대책을 강화해 2019년 벌목 건수가 감소한 대목도 빠졌다. 

박기용 기후변화팀장은 “기후위기 문제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보수·경제언론은 외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재생에너지 확대를 공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몇몇 언론사는 제1야당처럼 올여름 집중호우 국면에서 태양광 산사태 문제를 강조하며 원전만이 유일한 친환경 에너지라고 강조하고 있다. 안 그래도 에너지 전환이 늦은 한국 사회에서 ‘친원전’ 언론사들이 ‘출발지점’부터 발목을 잡는 격이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한국은 언론도 서울 집중이어서 지역에서 일어나는 기후위기 문제를 다룰 줄 모른다. 바닷속 깊은 곳과 산꼭대기에서 이미 기후위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도시에 집중하는 언론은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유진 연구원은 “특히 바닷속 문제가 심각하지만 해양수산부 홈페이지에 가면 기후변화 대응 관련 자료가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역시 이를 지적하는 언론도 없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이유진 연구원은 “올해 여름 54일간 비가 내릴 때, 장마와 60기의 석탄발전소, 전기 요금체계와 전력생산시스템을 함께 연결해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까”라고 되물으며 “기후위기라고 했을 때 북극곰이 위험하다는 것에 그쳐선 안 된다. 언론사 내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철학과 방향을 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유진 연구원은 “3년 전 한 언론사와 협업해 전기중독사회 문제를 시리즈로 다뤘다. 그런데 같은 언론사에서 ‘전기요금 누진제 폭탄’이란 기사를 썼다. 허탈했다”며 언론계 내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기후위기 대응 설문 조사 필요성도 언급했다.

유용민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북극곰은 내가 사는 일상과 아무 관련이 없다. 기후위기 문제를 내가 사는 도시의 일상과 분리시키는 방식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기후위기 보도는 늘 먼 거리의 문제로 묘사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유용민 교수는 이어 “미디어가 기후위기를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종말론으로 다루는 경우도 있다.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메시지를 받게 되면 위험을 줄이기 위한 대응보다는 공포를 잊기 위해 놀러간다”고 지적하며 “종말론적인 문제의식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기후위기 커뮤니케이션 메시지 설계에서 언론이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지난 25일 세계 기후행동의 날을 맞아 그린피스가 국회앞에 붙인 포스터.
▲지난 25일 세계 기후행동의 날을 맞아 그린피스가 국회앞에 붙인 포스터.

이유진 연구원은 “기후위기를 해결하려면 장기적으로 탈탄소 기반의 경제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값싼 화석에너지에 중독된 일상을 바꿀 정도로 큰 그림을 그리면서 접근해야 하는데 우리는 장기적 문제에 대응할 시스템이 없다. 지자체별 탄소 배출량 데이터도 찾기 어렵다. 기후위기가 정치 의제로 등장한 적도 없다”고 비판한 뒤 “결국 세계가 우리를 바꿀 것이고, 지금 같은 식이면 (준비가 부족한) 한국은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며 언론이 나서서 기후위기에 대한 접근방식과 방향성을 정확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선 에너지사용을 줄이고, 에너지 발전단가에 맞는 요금 납부가 논의의 전제여야 한다. 때문에 한국 언론은 ‘전기요금 폭탄’이 아닌 ‘전기요금 정상화’를 제시해야 하며, 원전의 안전성만 강변할 게 아니라 원자력이든 태양광이든 내가 원하는 전기 에너지원을 고를 수 있는 독일의 전기상품 사례를 소개하는 식의 ‘솔루션 저널리즘’에 주목해야 한다. 산림피해를 최소화하며 태양광을 늘리는 방안, 에너지 전환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게 되는 석탄발전업계를 위한 대책부터 시작해 정부가 아닌 시민사회 주도의 ‘그린뉴딜’ 논의를 언론이 이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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