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이 지난 21일 서해 최북단인 인천 옹진군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남측 공무원을 북측 해상에서 사살한 뒤 기름을 부어 불태운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 지역에서 남측 민간인이 총격을 받고 사망한 것은 2008년 7월 금강산관광을 갔던 박왕자씨 사건 이후 12년 만이다. 국방부는 전체회의에서 A씨 시신을 찾기 위해 경비작전세력에 임무를 부여했다고 밝혔다.

25일 언론은 21일 A씨가 실종되고 군이 늦장 대응을 했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군은 이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23일 오전 8시30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문 대통령이 대면보고를 받은 것은 이미 전날밤 A씨의 시신이 불태워지고 첩보가 보고된 후 10시간이 흐른 뒤라서 늦장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23일은 오전 1시20여분쯤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 화상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통한 비핵화를 강조한 날이기도 하다. A씨의 사망과 관련해 군이 늦은 대응을 해 정부 대응도 지연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23일 오후 이 사건을 다룬 언론기사가 먼저 나온 후 정부의 공식 입장이 나온 것도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언론은 대북여론이 최악으로 치닫을 것이라고 전했다.

▲25일 경향신문 1면.
▲25일 경향신문 1면.

 

다음은 25일 주요 종합 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총격·시신 훼손…북한의 반인륜적 만행”
국민일보 “우리국민 사살하고 불태운 北… 軍은 알고도 못 지켰다”
동아일보 “우리 국민 총살해 불태운 北, 지켜보기만 한 軍”
서울신문 “北, 해수부 공무원 총살 후 불태워… 軍은 지켜만 봤다”
세계일보 “우리 국민 총격 후 불태운 北… 軍 지켜만 봤다”
조선일보 “北이 우리 국민 총살하고 불태워도… 대통령 ‘33시간 침묵’”
중앙일보 “국민이 불탔는데 국민은 언론보고 알았다…논란의 ‘文 10시간’”
한겨레 “‘어업지도원 사살, 북 해군사령관이 지시했다’”
한국일보 “문 대통령, 첫 보고 32시간 뒤에야 ‘충격, 유감’”

언론의 비판은 북한의 만행과 함께, 군의 늦은 대응에 모아졌다.

경향신문은 “군은 A씨가 북측 선박에 발견된 정황을 확인했음에도 이후 피격까지 5~6시간 동안 북측에 대해 어떤 구명 조치도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군 당국은 지난 23일 오후 4시35분쯤 유엔사를 통해 대북 전통문을 보내 실종 사실을 통보하고 답변을 요구했으나 북측은 반응이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1면에서 “북한 정권의 잔학성과 함께 문재인 정부가 주요 성과로 내세웠던 대북정책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며 문 대통령이 관련 보고를 받은 시간 등을 다뤘다.

동아일보는 “문 대통령은 22일 오후 6시 36분 실종자 관련 서면 첩보를 받았으나 피격 사실은 청와대에 보고된 22일 오후 10시 반에서 10시간이 지난 23일 오전 8시 반 처음으로 대면 보고를 받았다고 청와대는 밝혔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청와대는 피격 보고 후 23일 오전 1시경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관계장관 회의까지 가졌으나 피격 사실은 문 대통령에게 당시 즉각 보고하지 않은 것이어서 청와대 위기관리 시스템에 적지 않은 문제점이 노출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고 썼다.

▲25일 동아일보 1면.
▲25일 동아일보 1면.

한국일보도 1면에서 “문 대통령이 첫 대면 보고를 받은 것은 23일 오전 8시30분쯤으로 북한이 A씨에게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웠다는 첩보가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 최초 보고되고 10시간이나 흐른 뒤”라며 “청와대의 상황 분석과 대응이 안이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썼다.

청와대의 공식 입장보다 언론에서 해당사실이 먼저 밝혀진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일보는 24일 오전 9시 노영민 실장 등으로부터 ‘첩보의 신빙성이 높다’는 보고를 받았고 문 대통령은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를 소직해 정부 입장을 정리하고, 국민에게 발표하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그러나 연합뉴스에서 해당 사실을 담은 기사가 23일 오후 11시 보도됐다”며 “관련 첩보를 접수하고 이틀이 지나서야 청와대와 정부가 이를 공개하고 입장을 표명한 것이 적절했는지 논란”이라고 썼다.

결국 24일 오후 5시 강민석 대변인 명의 서면 브리핑으로 “충격적인 사건으로 매우 유감스럽다.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북한 당국은 책임 있는 답변과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공개됐다.

▲25일 한국일보 1면.
▲25일 한국일보 1면.

이에 언론은 “문 대통령이 최초 보고를 받은 지 32시간이 지난 뒤”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1면 제목을 “北이 우리 국민 총살하고 불태워도… 대통령 ‘33시간 침묵’”이라고 뽑았고 중앙일보도 “국민이 불탔는데 국민은 언론보고 알았다…논란의 ‘文 10시간’”이라고 썼다.

조선일보는 사설 “北이 사람을 바이러스처럼 소각해도 하루를 숨긴 文… 대통령이 있고, 정부가 있고, 軍이 있고, 나라가 있는가”에서 “민간인 살해와 시체 유기를 북한 지휘부가 직접 지시했다는 것.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김정은 집단의 야만적 본성”이라며 북을 크게 비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의 유엔 연설을 두고 “우리 국민이 엽기적인 방식으로 살해됐는데 그 녹화 내용이 그대로 방영되게 해야 했나”라며 “유엔에 연락해 연설을 취소하거나 순서를 바꿀 수는 없었나”라고 문 대통령을 비판했다.

▲25일 조선일보 1면.
▲25일 조선일보 1면.

중앙일보는 1면에서 “ 민감하고 중요한 메가톤급 안보 사안에 관한 내용을 군 통수권자인 문 대통령만 23일 아침까지 몰랐고, 관계장관 회의가 열렸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는 이야기”라며 “정작 국민들은 북한의 도발 사실을 23일 밤 이후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접했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1면에서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을 제안한 지 하루 만에 알려지면서 야당 일각에선 은폐 의혹도 제기된다”며 “청와대는 ‘유엔 연설이 진행되던 23일 오전은 정보의 신빙성이 확인되지 않았던 상태’라고 해명했다”고 썼다.

▲25일 한겨레 4면.
▲25일 한겨레 4면.

한겨레는 “어업지도원 사살, 북 해군사령관이 지시했다”이라는 단독 기사를 배치했다. 이 기사에서 한겨레는 “이번 사건은 북한 해군의 최고 책임자 지시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현장의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북한 군당국의 의도성이 짙은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군에 의한 민간인 총격 사망과 주검 훼손이라는 초유의 일이 일어남에 따라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최대 위기를 맞았다”고 전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도 “민간인 사살하고 불태운 북한의 충격적인 ‘범죄’”라며 “북한의 비인도적 만행을 강하게 규탄하며, 정확한 진상 공개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한다”고 전했다. 한겨레 사설은 “북한이 코로나19 감염 차단을 위해 주검을 불태웠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할 수 없는 ‘범죄’”라며 “대북 여론은 최악의 상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은 북한 당국이 져야 한다며 북한이 유족과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전했다.

군과 정부는 월북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다만 월북 관련 사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월북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표류했든 월북했든 사람을 바이러스처럼 죽이고 소각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이 상황에서도 어떻게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을 속이고 ‘종전 선언’ 운운할 수 있으며, 군인들은 그에 영합하나. 기가 막힌 일”이라고 썼다.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대상 포함에 찬반 논의

법무부가 허위조작 정보, 이른바 ‘가짜뉴스’를 악의적으로 보도해 손해를 끼친 언론도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한겨레는 5면에서 “학계·언론단체 등에선 국민적 불신이 높은 언론의 책임을 강화하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점에선 일부 공감하면서도 부작용과 과잉 규제를 막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보도했다.

법무부는 23일 개정안에서 언론의 오보에 대한 고의·중과실이 인정될 경우, 손해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동의하는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의혹 제기와 오보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는 언론의 행태가 반복되는 상황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여론을 근거로 삼았다. 반면 공인에 대한 검증 등 언론 본연의 역할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반대 의견도 나오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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