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조작에 가장 노골적으로 가담한 이들이다. 국정원 직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법원이 보호하는 건 부당하다.”(장경욱 변호사)

1·2회 비공개로 열렸던 ‘국정원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가해자들의 재판이 3회째 처음 공개로 진행됐다. 사건이 국가 안보·기밀과 무관함에도 가해자의 비공개 요구를 법원이 들어주는 건 부당하다고 피해자들이 주장하고 나선 후다.

23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송승훈 재판장) 심리로 열린 3회 공판은 시작부터 재판 공개 여부를 두고 40여분 설전이 오갔다.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협박·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비공개 부당성을 항변했고 국정원 직원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비공개를 주장했다.

피고인은 국정원 직원 유아무개씨와 박아무개씨다. 피해자는 2012년 국정원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와 그의 동생 유가려씨다. 당시 국정원은 우성씨 간첩 혐의를 조작하는데 가려씨 진술을 동원했다. 가려씨는 2012년 11월부터 6개월간 합동신문센터에 감금돼 우성씨에게 불리하게 진술했지만 이는 거짓이었다. 피고인 유씨와 박씨 등은 이 과정에서 가려씨에게 폭언, 폭행, 협박, 감금 등을 자행했다. 가려씨가 “국정원 직원 고문으로 거짓진술을 했다”고 말하는 이유다.

(관련 기사 : '대머리 수사관' 국정원 직원 재판은 왜 비공개인가)

▲국정원 직원 가혹행위 및 허위진술 강요·협박 피해자인 유가려씨가 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 시작 전 기자들을 만났다. 사진=손가영 기자.
▲국정원 직원 가혹행위 및 허위진술 강요·협박 피해자인 유가려씨가 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 시작 전 기자들을 만났다. 사진=손가영 기자.

 

그런데 지난 5월과 7월 1·2회 공판은 비공개됐다. 피고인 요구를 법원이 수용했다. 재판부는 검사, 피해자 우성씨와 피해자 대리인 변호사들, 피고인 국정원 직원들과 그의 변호인들을 제외한 방청객들에게 재판 시작 직후 퇴정을 명령했다. 피고인석 앞엔 국정원 직원을 가리는 차폐막도 설치했다.

향후 재판도 비공개 진행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3회 공판엔 피해자 우성씨, 가려씨가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었다. 이에 피해자 대리인은 재판 이틀 전 의견서를 내 “피고인 유씨와 박씨는 유가려를 처음부터 담당해 조사했고, 조사 과정에서 각종 가혹행위를 자행하면서 허위진술을 만들어갔기 때문에 간첩 조작의 가장 핵심적이고 직접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또 “이 재판은 이들이 유가려를 불법 구금했는지, 유가려에게 가혹행위를 하고 허위진술을 강요했는지 여부와 유우성의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와 위증을 했는지 여부를 다루게 된다. (재판을 공개한다고) 국가 안전보장과 안녕질서, 선량한 풍속을 해친다고 보기 힘들다”며 “오히려 재판 공개는 국민 알 권리를 증진하고, 향후 이런 심각한 반인권적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대 범죄자들, 비공개 사유 없다” 40분 설전 

피해자 대리인들은 23일 공판에서도 직접 의견을 밝혔다. 장경욱 변호사는 “이 사건이 국가 안보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를 따져서 재판부가) 피고인 신청을 기각하고, 검찰은 이의신청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재판부가 이 사건을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한국 사회의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진상규명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 1·2차처럼 비공개로 진행한다면 이유를 정확히 고지해달라”고 말했다. 

검사는 “(피고인 측이) 국가 안보 위해 사유가 뭔지 말하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피고인 측은 이에 “재판 중 국정원 조직 내 담당자 이름, 역할, 피고인들 역할, 조직체계, 보고체계 등 국가 안보 관련 정보가 다뤄질 것”이라며 “또 법상 국정원 직원 신분 보호가 보장돼 있다. 지금도 신분이 이미 노출돼 법원에서 대기할 때 사진이 찍히고 위협을 당한다”고 이유를 댔다. 

재판부는 의견을 다 들은 후 “피고인들을 주로 심리하는 과정에서 국정원 조직·인원 등이 다뤄지면 재판 비공개를 검토하겠다. 그게 아니라 주로 피해 내용을 심리할 땐 공개재판 원칙에 따라 진행하겠다”고 결론냈다. 차폐막 설치에 대해선 “아직 국정원 직원 신분이니 현행법상 인원·조직 등 보호를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설치한다”고 밝혔다.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유우성씨의 동생 유가려씨. 사진=뉴스타파 '자백이야기' 영상 갈무리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유우성씨의 동생 유가려씨. 사진=뉴스타파 '자백이야기' 영상 갈무리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의 수사기관 증거 은닉, 날조 혐의 등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에 피해자 유우성씨가 참여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의 수사기관 증거 은닉, 날조 혐의 등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에 피해자 유우성씨가 참여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비밀 재판 전가의 보도 ‘국정원 직원’

논란은 여전히 남았다. ‘국정원 직원’이란 사실만으로 신분을 보장해야 한다는 법 해석 부분이다. 재판 비공개나 국정원 직원 신분 보장을 다룬 법은 크게 헌법, 법원조직법, 국정원법 및 국정원직원법 등이다. 헌법 109조와 법원조직법은 재판 비공개 사유로 ‘국가 안전보장’, ‘안녕질서’, ‘선량한 풍속을 해할 염려’ 등을 명시했다. 

국정원법 6조는 “국정원 조직·소재지 및 정원은 국가 안보를 위해 필요한 경우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정한다. 국정원직원법 17조는 직원이 법원 등에서 '직무상 비밀'에 관해 진술할 때 “법원은 공무상 비밀 보호 등을 위한 비공개 증언 등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정한다. 

피해자 대리인 양승봉 변호사는 ‘국정원 직원 개인 신변이 국정원법 6조의 조직, 정원 개념에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재판부가 그렇게 해석한 것이지 포함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어떤 범죄를 저지르든 상관없이 국정원 직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변을 비공개하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유씨와 박씨의 간첩 조작 관여는 이미 상당한 증거로 확인됐지만 국정원에 재직 중이다. 내부 징계도 받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간첩으로 몰렸던 피해자 우성씨는 2013~2015년 1·2·3심에서 모두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은 탈북민 등을 돈으로 포섭해 법원에서 허위 증언을 하게 했다. 간첩 혐의의 주요 증거였던 ‘허룽시 공안국의 출입경기록 조회결과’ 등 중국 공문서 3종은 위조된 문건이었다. 가려씨는 2012년 6개월 구금에서 풀려난 직후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국정원의 가혹행위가 두려워 허위 진술을 했다고 일관되게 밝혔다. 

가려씨는 이 사건으로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지금까지 겪고 있다. 가려씨는 이날도 “몸이 떨린다”며 증인석에 서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우성씨는 “가려가 상담과 치료를 받으면서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트라우마가 남아있다”며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잘못한 게 없다며 무죄를 주장하며 법원, 국정원의 보호까지 받고 있다. 간첩조작은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고 말했다. 

유씨와 박씨는 지난 3월 국정원법상 직권남용 금지 위반과 위증 혐의로 기소됐다. 가려씨는 이들을 국가보안법상 무고·날조 혐의 등으로 고소했으나 검찰은 이보다 형량이 낮은 국정원법 위반을 적용했다. 23일 3회 공판에선 우성씨와 가려씨 증인 신문이 진행됐다. 가려씨 경우 증인 신문이 일부만 진행돼 오는 12월 9일 열리는 4회 공판에서 재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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