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단체들이 ‘단역배우 자매사건’으로 알려진 보조출연자 집단 성폭력 사건 피해자 사망에 영향을 줬다고 지목되는 경찰관의 해임을 요구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정의당 광명시당 등 40여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이 24일 오전 11시30분 경기 광명경찰서 앞에서 “‘보조출연 관리자 집단 성폭력 사건’ 가해 경찰관 해임 처벌 요구”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피해자 고 양소라씨는 2005~2006년 경찰관들로부터 조사를 받다 2차 가해를 당해, 숨지기 전까지 심적 고통을 호소했다. 이들 중 1명은 퇴직했고, 나머지 1명의 근무지가 광명경찰서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정의당 광명시당 등 40여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이 24일 오전 11시30분 경기 광명경찰서 앞에서 “‘보조출연 관리자 집단 성폭력 사건’ 가해 경찰관 해임 처벌 요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정의당 광명시당 등 40여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이 24일 오전 11시30분 경기 광명경찰서 앞에서 “‘보조출연 관리자 집단 성폭력 사건’ 가해 경찰관 해임 처벌 요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이들은 “피해자 곁에서 조사를 지켜 본 유가족 장연록님은 조사를 맡은 경찰이 처음부터 ‘이런 건 사건이 되지 않는다’는 태도로 일관했고, 경찰은 피해자에게 ‘가해자들 성기 크기, 색깔 등 구체적으로 그려보라’고 하고, 얇은 가림막만 사이에 둔 채 장시간 대질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또 “담당 경찰은 1년 반 동안 고통을 견디며 조사에 임해온 피해자에게 ‘성인에게 이런 건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합의를 종용했고 강제로 합의서에 지장을 찍게 해 수사를 종결시켰다”며 “피해자가 제기한 고소를 담당한 경찰 중 한 명이 조아무개씨”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2004년 보조출연 관리자 등 12명이 한 보조출연자 여성을 집단 성추행·성폭행한 사건이다. 피해자 양소라씨는 이후 이들을 고소했으나 조씨 등 경찰로부터 수사 중 2차 가해를 당했다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다 2006년 고소를 취하했다. 이후 양씨는 2009년 8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양씨에게 보조출연 일자리를 권해 죄책감에 휩싸였던 동생 고 양소정씨도 6일 후 숨졌다.

유족인 어머니 장연록씨는 2004년부터 지금까지 가해자 12명과 연루된 경찰관 조씨를 상대로 1인 시위를 하는 등 가해자들의 사과와 처벌, 현장 업무 배제를 요구하고 있다. 장씨는 지난 4월 조씨가 일하던 경기 광명시 철산지구대에서 1인 시위를 하다 조씨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며 그를 고소했다. 조씨 또한 장씨가 침을 뱉고 몸을 때리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며 쌍방 고소했다. 

회견 참가단체들은 “조씨는 장연록씨에게 ‘진작 니년을 죽였어야 했다’며 폭행하고 질질 끌고 가는 만행을 저질렀다”며 “이 사건은 현재 검찰로 송치됐는데 조씨는 이후 감봉돼 광명경찰서로 발령났다”고 밝혔다.

이들은 경찰에 “이 사건 피해자를 모욕한 가해자이자 유족을 폭행한 조씨의 해임과 처벌을 요구한다”며 “또 성폭력 사건 수사에 있어 2차 가해 예방을 위한 교육과 정책, 2차 가해 발생 시 처벌 절차 등을 명확히 공표하라”고 요구했다.

▲유족 장연록씨는 이날 고 양소라·소정씨 영정사진을 경찰서 입구에 세우고 검은 상복을 입은 채 1인 시위를 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유족 장연록씨는 이날 고 양소라·소정씨 영정사진을 경찰서 입구에 세우고 검은 상복을 입은 채 1인 시위를 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회견 참가자들은 이밖에 방송사에도 책임을 물었다. 박희정 한빛센터 활동가는 “가해자들은 보조출연 현장에서 여전히 일한다. 최근 논란이 되자 MBC플러스, 넷플릭스 등은 가해자들을 제작에서 배제하겠다고 밝혔지만 공식 발표가 아닌 기자 취재에 답한 것일 뿐”이라며 “방송사들은 가해자 배제에 대한 입장은 물론 같은 사건이 발생할 경우 대처 방안이나 가이드라인도 명확히 제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활동가는 “직장 내 성폭력이 있었다고 해서 그 자체로 정신질환이 발생하지 않는다. 초기에 주변에서 대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면 경미하게 지나갈 수 있다”며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고, 방송사가 책임지지 않고, 조사한 경찰관도 도와주지 않을 때 비극으로 이어진다.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렇게 이어지는 게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도 직장 내 성폭력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적응 장애, 우울증 등을 겪고 목숨을 끊는 노동자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용관 한빛센터 이사장은 방송사들에 “자기 치부도 보도하라”고 비판했다. 이 이사장은 “이 사건은 방송사가 연관된 문제지만 자신이 관련된 문제에 대해선 보도하지 않고 있다”며 “엉뚱한 정치적 사건에는 떼거지로 몰려가고,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는 (방송 노동) 현장에는 모습을 비치지 않는 언론사와 방송사는 철저히 반성하고 각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회견 참가 단체들은 방송사와 제작사에 △성폭력 예방 교육을 사전에 반드시 실시하고 △사건이 발생하면 공정한 절차에 따라 사건을 조사해 피해자 회복을 돕고 △실질적 피해구제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했다.

조씨는 이와 관련 “고 양소라씨에게 2차 가해성 발언을 한 적이 없다. 한 차례 조사했고 당시에도 20여분 본 게 전부다. 그 중 10여분은 변호인과 어머니가 동석했었다”고 반박했다. 또 “기자회견에 나온 발언 중 '가해자들 성기 크기, 색깔 등 구체적으로 그려보라'고 하고, 얇은 가림막만 사이에 둔 채 장시간 대질조사를 진행했다거나 지장을 찍어 고소 취하를 종용한 경찰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밝혔다.

지난 4월 철산지구대 앞 어머니 장연록씨 폭행 혐의 및 폭언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다. 당시 밖에서 1인 시위를 지속하는 장씨가 나를 보곤 침을 뱉는 등 행위를 했고 이 과정에서 팔을 잡고 얘기 좀 하자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고 양소라씨는 2004년 12월 영등포경찰서에 성폭력 사건을 처음 고소했다. 2005년 1월까지 당시 경위 최아무개씨에게 배당됐다가 2005년 1월26일 조씨에게 재배당돼 4월30일까지 수사했다. 이어 수사관 이아무개가 2006년 7월까지 조사했다. 장씨는 2018년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중 이씨가 피해자에게 가해자 성기를 그리게 했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함께 대질신문시켜 가해자에게 성행위를 묘사케 했다고 밝혔다. 

사건기록 상 조씨가 사건을 담당한 시기 장씨는 최소 3차례 경찰서를 방문했다. 2월3일, 3월3일, 3월23일에 진술조서 등이 남아있다. 양소라씨는 정신질환 등의 이유로 입원해있다 3월23일 영등포경찰서에 나가 고소인 진술을 했다. 그런데 4월4일 장씨는 검찰청과 영등포경찰서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담당 경찰관이 경찰에서 사건을 종결한다고 말해 경찰에서 종결짓지 말아달라’는 요지의 진정서다. 4월8일엔 담당 조사관 교체 탄원서를 제출했다. 

장씨는 이와 관련 “딸이 충격으로 3월28일 가출했었다. 신고 후 발견된 딸이 당시 조사관이 ‘질 게 뻔하다. 너만 취하하면 된다’고 말했었다”며 조씨가 고소 취하를 종용했다고 주장한다. 조씨는 이에 “고소 취하한 적도 없고, 문제 발언을 한 적도 없다”며 “조사관 교체 탄원서도 왜 제출했는지 이유를 모른다. 기자회견을 열어서라도 억울함을 풀고 싶다”고 반박했다. 

(2020년 9월26일 오후 8시30분 조씨 반론 추가 및 기사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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