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 피해자를 겨냥한 악의적 보도 수위가 선을 넘었다. 피해자가 찍힌 영상을 공개하며 ‘피해자답지 않다’는 2차 가해성 주장을 확산하는가 하면 허위정보나 억측을 사실처럼 전하는 왜곡도 심각하다.

지난 18일과 21일 방송된 유튜브채널 ‘고발뉴스TV’ 보도가 대표적이다. 출연진 이상호 기자는 이 사건 피해자 대리인 김재련 변호사와 성폭력·가정폭력 등 피해자를 통합 지원하는 서울해바라기센터의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서울해바라기센터로 사건이 넘어가면 결국 김재련 변호사에게 사건이 가는 구조”라며 김 변호사가 “성(性)의 국정원장”이라고까지 말했다.

근거를 종합하면 억측에 가깝다. 핵심 근거는 김 변호사의 서울해바라기센터 운영위원 이력이다. 여기에 해석과 추측이 더해졌다. 이 센터가 ‘2015년’ 만들어졌다며 한나라당, 박근혜 정부 사람들이 센터를 이끌었고, 당시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 화해치유재단 이사를 역임했던 김 변호사를 ‘박근혜 키즈’로 분류했다. 그런 김 변호사가 국장에서 물러나고 2015년 센터 운영위원으로 왔다며 이 사건의 정치적 배경도 의심한 것.

▲유튜브 채널 고발뉴스TV 썸네일 갈무리.
▲유튜브 채널 고발뉴스TV 썸네일 갈무리.
▲22일 고발뉴스TV 보도 영상 갈무리
▲22일 고발뉴스TV 보도 영상 갈무리

 

운영위원인 김 변호사가 “센터 정보를 관장했다”거나 “장악했다”는 표현까지 썼다. 이 사건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호소한 당시 서울시 젠더특보로부터 정신과 의사를 추천받았고, 이 의사로부터 김 변호사를 소개받았다. 이 기자는 이를 “젠더특보가 해바라기센터에 피해자를 보낸 것”이라며 “센터 정신과 전문의에게 상담받으면 모조리 법률 지원은 김재련한테 간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해바라기센터 시스템을 “박근혜 정부 때 만든 대표적 국가 시스템”이라고 했지만 사실과 다르다. 해바라기센터로 상징되는 ‘성폭력 피해자 통합 지원 체계’는 2004년부터 시작됐다. 피해자가 상담, 심리치료, 수사, 법률 및 의료지원 등을 한 기관에서 통합적으로 지원받는 시스템이다.

‘해바라기아동센터’가 2004년 최초 문을 열었고, 성인 여성까지 지원하는 ‘해바라기여성·아동센터’는 2010년부터 설립됐다. ‘여성·학교폭력피해자원스톱지원센터’는 2005년 개설돼 2013년 17개까지 늘었다. 이들 기관의 통합은 ‘2009년’부터 본격 논의됐다. 2014년에 3개 센터 명칭이 ‘해바라기센터’로 통합 완료됐을 뿐이다.

서울해바라기센터가 설립된 해도 2010년 12월이다. 김 변호사는 이때부터 운영위원을 맡았고 여성가족부 인권증진국장을 역임한 2013~2015년엔 운영위원을 그만뒀다. 공직을 그만둔 후 센터 측 요청을 받고 다시 운영위원으로 자리했다. 김 변호사는 성폭력 피해 지원 현장 등 여성계 내에서 성폭력 사건 대응에 높은 전문성을 가진 법조인으로 알려져있다.

센터는 운영위원이 개별 사건을 속속들이 아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센터가 제공하는 민・형사 절차상 피해자 지원 제도는 △국선변호사 배정(법무부 지원) △무료법률구조사업(여성가족부 지원) △전문가 의견 조회 △진술조력인·신뢰관계인 지원 등이다. 박혜영 서울해바라기센터 부소장은 22일 “운영위원은 사업 운영과 관련해 피드백과 자문을 준다. 예로 친족피해자 사업을 특화시키고 싶을 때 센터가 자문을 구하고, ‘국제교류사업이 활성화됐는데 왜 홍보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운영위원들이 센터에 권고한다”며 “의사, 협력기관 관계자 등 다양한 운영위원이 있고 통상 연말에 한 차례 모여 회의한다. 고발뉴스 보도는 사실 무근의 너무나 황당한 억측”이라고 반박했다.

▲피해자가 찍힌 영상을 공개한 유튜브 채널 열린공감TV 영상 갈무리.
▲피해자가 찍힌 영상을 공개한 유튜브 채널 열린공감TV 영상 갈무리.
▲피해자가 찍힌 영상을 공개한 유튜브 채널 열린공감TV 영상 갈무리.
▲피해자가 찍힌 영상을 공개한 유튜브 채널 열린공감TV 영상 갈무리.
▲위 열린공감TV 영상은 고발뉴스TV 등 다른 채널에서 재가공돼 방영됐다.
▲위 열린공감TV 영상은 고발뉴스TV 등 다른 채널에서 재가공돼 방영됐다.

 

케이크 칼 같이 잡았다고 “피해자 맞냐”

피해자다움을 강조하는 2차 가해성 보도도 확산됐다. 지난 14일 유튜브채널 ‘열린공감tv’가 “최초공개! 박원순 시장 고소인과 함께 찍은 사진 공개!”란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지난해 박 시장의 생일에 피해자와 박 시장이 함께 케이크를 자르는 장면이었다.

영상은 피해자가 박 시장과 함께 케이크 칼을 쥔 모습과 피해자가 박 시장 어깨 부근에 손을 올린 모습을 두고 ‘어떻게 피해자가 저렇게 행동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누가 누구를 성추행하느냐”며 박 시장이 피해자가 아니냐는 취지의 자막도 나왔다.

고발뉴스TV와 인터넷매체 뉴스프리존 등은 이를 여과없이 전달했다. 영상엔 피해자 얼굴 부분만 편집된 채 신체가 그대로 노출됐다. 고발뉴스TV 진행자들은 “손이 포개졌다” “어깨에 손 올린 것을 보라”며 “피해자가 ‘6층의 안방마님’이라 불린 건 성적인 함의가 아니라 (저렇게) 주체적으로 비서 일을 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근거가 부실해도 의혹제기는 계속됐다. 고발뉴스TV는 김 변호사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피해자 김지은씨의 이혼 소송을 맡은 이력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씨가 과거 준강간 사건을 고소한 적이 있다며 이 자체를 “김 변호사가 서울해바라기센터를 장악한다”는 의혹 근거로 삼았다. 김지은씨와 박원순 시장 사건 피해자 모두 “서울해바라기센터를 통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이유다.

▲만화가 박재동, 캐리커처 '아트만두' 등 예술가 13인이 오는 10월 준비한 전시회 '말하고 싶다' 홍보 포스터.
▲만화가 박재동, 캐리커처 '아트만두' 등 예술가 13인이 오는 10월 준비한 전시회 '말하고 싶다' 홍보 포스터.

 

“누군가의 피해를 시청률에 이용한다”

피해자를 향한 무차별적 의심은 김 변호사 공격으로도 나타났다. 김 변호사의 외모나 과거 공직 이력을 둘러싼 무분별한 비난은 SNS 댓글과 이를 인용한 보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김 변호사는 지난 17일엔 법원 앞의 한 행인으로부터 직접 욕설을 들었다. 만화가 박재동씨 등 예술인 13명이 오는 10월 준비한 ‘말하고 싶다’ 전시회 홍보 포스터엔 김 변호사가 풍자 대상으로 실렸다. 입 부분이 뚫린 마스크를 쓴 캐리커처로 그려졌다. 

박 시장 사건은 고소 사실을 비밀로 부치려 한 피해자 의사와 다르게 언론 보도로 공개됐고 박 시장이 사망하면서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했다. 박원순 시장 선거캠프 유세본부장 출신 하석태씨는 피해자를 대리한 김 변호사에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교사죄 범죄 혐의자가 아니냐”고도 물었고 김 변호사는 지지자들의 비난에 시달렸다. 

경향신문, 서울신문, 한겨레 등은 언론의 2차 가해가 도를 넘었다고 경고했다. “'가짜뉴스'에 전시회까지 동원된 2차 가해…그들의 ‘추락’은 어디까지”(20일 경향신문), “박원순 피해자 변호사가 성(性)국정원장?… ‘황당한 음모론’”(20일 서울신문) 등이다. 한겨레 22일 사설은 고발뉴스TV 보도에 “‘성의 국정원장’이라니 황당해서 말문이 막힐 지경”이라며 “실체적 진실의 규명과는 무관한 공격이 이어지면서 피해자의 안전마저 우려되는 실정이다. 누리꾼들의 가해 행위를 자제시켜야 할 언론인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행태도 개탄스럽기 이를 데 없다”고 비판했다.

▲22일 한겨레 사설
▲22일 한겨레 사설

 

이와 관련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22일 “2차 피해는 선출직 공무원의 성폭력 사건에서 특히 더 심각하다”며 “가해 혐의를 벗기 위해 피해자를 공격하는 건 가해자 대부분이 하는 행동이다. 정치적 인물, 특히 선출직 공무원들은 책임윤리가 더 높음에도 정치적 지지세력이 있으니 피해자가 정치적 반대편에 있다는 프레임 만들고 그를 공격하는데 엄청난 인력과 에너지가 집중된다. 다른 사건에 비해 2차 피해 수준이 훨씬 크다“고 지적했다.

김 부소장은 또 ”성폭력보도지침은 2차 피해를 낳지 않도록 피해자 신상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사건 본질과 무관한 사항을 보도해 피해자에게 범죄 유발 책임이 있는 것처럼 보도하지 않으며, 정확한 팩트에 기반해 최소한으로 사안을 분석하고 사회구조적 문제와 대안을 탐구하도록 정한다”며 “이에 비춰 고발뉴스TV 경우 성폭력에 대한 이해과 관심이 조금도 없는 것 같다. 흥미와 시청률을 위해 본질을 왜곡하고, 조회 수를 높이는데 누군가의 폭력 피해 사건을 이용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상호 기자는 비판에 대해 “(비판 보도한 매체는) 문제 제기를 하는 김재련 변호사에 대해선 질문하지 않고, 그 문제제기를 팩트를 기반으로 취재하는 기자만 공격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 김 변호사에게도 질문을 해야 한다”며 “고발뉴스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한 언론사들이 되레 디테일을 취재하지 않고 틀린 사실관계를 보도했다. 한 예로 서울해바라기센터 홈페이지만 봐도 ‘운영위원이 법률상담을 한다’고 공개적으로 적혀 있다”고 반박했다.

이상호 기자는 또 “기본적으로 김 변호사가 보이는 일련의 행태가 정상적인 고소인과 사건 변호사 관계라기보다 일부분 국민을 상대로 정치적 행위를 한다고 판단한다”며 “그렇다면 ‘왜 그럴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등의 의문으로 해바라기센터 운영 시스템 전반을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그런 질문(의혹)들은 던질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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