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국토교통위원 재직 5년 동안, 박 의원과 가족들이 대주주로 있는 건설사들이 국토부 산하기관으로부터 공사 수주 및 신기술 사용료 명목으로 1000억원을 수수해 이해충돌과 뇌물성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제기됐다. 사실로 드러날 경우 사적 이익을 위해 자신의 공적 지위를 활용한 것이고 범법 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다.

해당 의혹은 공정 가치에 반한 것은 물론 앞으로도 그의 정치 활동은 크게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사퇴 여론으로도 확산될 수 있다. 파급력을 따지면 언론 주목도는 높을 수밖에 없다.

지난 15일부터 21일(박덕흠 의원 기자회견 이전)까지 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등 주요 일간지에서 ‘박덕흠’ 의원을 키워드로 검색한 기사는 모두 29건으로 나왔다.

보도량은 매체별로 확연히 갈렸다. 최초 의혹을 제기했던 한겨레는 모두 11건의 보도를 내놨다. 의혹을 정리한 보도부터 박 의원 해명을 반박하는 보도, 건설협회 고발 내용, 박 의원의 상임위 활동 행적 분석 보도, 그리고 국민의힘이 박 의원을 제명시켜야 한다는 사설 등이다. 이어 경향신문 4건, 동아일보 3건, 한국일보·서울신문·세계일보·국민일보 등이 2건, 문화일보·중앙일보·조선일보 등이 1건이었다.

문화일보 보도는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이해충돌 논란을 빚은 추미애 장관과 박덕흠 의원”에 대해 조사 필요성을 언급하는 선에서 그쳤고, 중앙일보는 “민주당 ‘박덕흠 사퇴해야’ 국민의힘 ‘사실 확인 먼저’” 제목처럼 정치 공방으로 처리했다. 조선일보는 의혹이 불거진 지난 주말 동안 한 건도 보도하지 않다가 21일자에서 박 의원이 기자회견을 통해 해명할 예정이라며 의혹을 간단하게 정리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박 의원을 주제로 사설을 쓰지 않은 곳도 이들 3개 매체였다.

▲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 등이 7월2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트북에 ‘청와대 하명입법 즉각 철회하라, 이생집망 집값폭정 김현미는 사퇴하라’를 붙이고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 등이 7월2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트북에 ‘청와대 하명입법 즉각 철회하라, 이생집망 집값폭정 김현미는 사퇴하라’를 붙이고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추미애 장관 아들의 휴가 처리 과정에 ‘특혜’가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비슷한 시기 언론은 추 장관의 의원 시절 정치자금 내역 중 자녀와 연관된 의혹을 추가 제기했다. 지난 15일부터 21일까지 ‘추미애 정치자금’이라는 키워드로 주요 일간지 보도량을 봤더니 박덕흠 의원 의혹 보도와는 정반대로 나왔다. 보도 24건 중 문화일보가 6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조선일보가 5건이었다. 경향신문 3건, 중앙일보·한국일보·세계일보 2건, 국민일보·동아일보·서울신문·한겨레 1건이었다.

한 언론 기사 제목처럼 “박덕흠, 형·아들에 ‘1000억’ VS 추미애, 딸 식당서 ‘250만원’”이라는 대립 구도로 의혹의 크고 작음을 비교할 일은 아니다. 근거를 갖추고 공익에 어긋났다고 판단하면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 다만 박덕흠과 추미애(기존 아들 의혹)의 보도량에 견줘 보면 추 장관 자녀 의혹 기사가 월등히 많아 언론이 ‘선택적 보도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자신의 편’에 불리한 내용은 철저히 외면하거나 ‘상대편’ 의혹에는 가혹할 정도로 보도를 쏟아내는 현상은 한국 언론 병폐로 지적되곤 했는데 최근 정도가 심하다는 지적이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9월2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국무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9월2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국무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항제 교수(부산대 신문방송학과)는 최근 펴낸 ‘한국의 민주주의와 언론’에서 “한국의 정치와 언론은 일종의 불신의 연쇄 속에 빠져 서로를 동반으로 하락시킨다. 언론은 정치를 보도할 때 장점을 부각해 신뢰를 높이기보다 약점을 더욱 부풀려 불신을 조장한다”며 “조국 사태에서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흔히 진영화로 불리는 양극화는 정치와 언론 사이의 합작품이다. 전통적으로 언론에는 사회 단위 간, 각축하는 세력 간 갈등을 줄여주는 ‘상관 조정 기능’ 같은 게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한국 언론은 이런 기능을 전혀 쓰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정확한 진단이다.

정파적 보도에 그러려니 손을 놓게 되면 언론개혁 목소리는 상대방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클리셰’로 전락한다. 정파적 보도를 바꾸지 않는 이상 언론개혁은 요원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