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주로 돌아오는 칼럼을 쓸 때마다 가장 어려운 고민은 ‘글감’이다. 어떤 이슈를 택할지, 그 이슈가 나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고민한다. 여기에 이슈를 바라보는 내 관점은 동일한 이슈를 다루었던 다른 관점과 얼마나 다른지, 혹시 그 차이만을 고려한 협소한 관점은 아닌지도 고민이다. 게다가 이슈에 대한 관점을 택한다는 것은 평가이기도 하다. 뉴스보도,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드라마까지 미디어 콘텐츠를 대상으로 하는 평가는 콘텐츠에 등장한 출연자 뿐 아니라 제작진이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문학이나 이론서와 같이 소수의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평가보다 훨씬 많은 당사자들이 미디어 비평의 ‘독자’로 어른거리는 이유다.

그런데 미디어 비평도 다양하여 콘텐츠가 아니라 한 언론사나 방송사 뿐 아니라 지상파 방송사, 유료방송사, 인터넷 뉴스 등으로 범위를 넓히면 ‘독자’의 범위는 더 넓어진다. 이럴 때는 미디어 현업 종사자 뿐 아니라 법령이나 규제기관을 또한 대상이 된다. 종편을 조건부 승인한 방송통신위원회, ‘디지털 교도소’ 접속차단을 결정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또한 미디어 비평의 중요 독자다. 이 뿐이 아니다. 독립제작사 지원과 방송사와의 공정거래 등 진흥 요구는 외주제작물을 편성하는 방송사에게 과잉규제로 여겨진다. 미디어 정책에 대한 비평은 규제기관 뿐 아니라 동일한 미디어 시장 내 특정 경쟁사업자에 대한 ‘밀어주기’로 받아들여진다.

▲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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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의 가장 어려운 점은 바로 어떤 독자를 머리에 떠올리고 글을 쓰는가에 있다. 미디어 콘텐츠 출연진, 제작진과 해당 미디어, 관련 법령을 만드는 정당 및 국회, 규제기관, 경쟁 미디어 사업자 등 실로 고려해야 할 독자의 범위는 점점 확장된다. 이 비평을 어떤 독자가 먼저 읽기를 바라는지는, 곧 그 비평이 어떤 효과를 발휘할지에 대한 기대나 우려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가장 손쉬운 미디어 비평의 한 형식은 바로 특정 미디어 기업이나 규제기관이 위탁하는 ‘연구용역보고서’다. 콘텐츠에 대한 평가이건 미디어 정책에 대한 대안이건 용역보고서의 독자는 명쾌하다. 한 방송사가 규제 완화를 요구할 때, 이를 자사의 보도나 콘텐츠로 만들기 어렵다. 미디어는 세상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분석하며 비판할 수 있지만 오직 자신만은 예외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연구용역이다. 이른바 전문가의 목소리와 글을 빌려 자사에 영향을 미칠 정책 변화를 요구하고 근거로 제시한다. 이 때 경쟁 사업자는 전혀 독자로 고려되지 않는다. 법령을 개정할 국회와 규제기관만을 독자로 한다.

특정한 미디어 산업 부문이 위기에 처했을 때, 미디어 비평은 더욱 어려워진다. 프로그램 한 편의 콘텐츠 비평이 아니라 제도와 정책을 그 대상으로 할 때 미디어 사업자나 종사자들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즉 연구용역보고서와 같이 특정 독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목소리와 글쓰기를 요청한다. 이런 시기가 바로 연구자의 정체성이 흔들릴 때다. 연구 보고서, 학술 논문 뿐 아니라 몇 문단의 칼럼까지 “미디어 비평 시장”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핵심 내용과 독자를 정해 놓고 주문하는 ‘발주’가 횡횡하고 이는 학계에서 연구업적이나 성과로 평가된다. 학문의 시장화는 이렇게 이루어진다.

▲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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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산업의 위기와 학문의 시장화는 미디어 비평의 가장 중요한 독자, 즉 시민을 시야에서 지워버린다. 붙특정 다수, 혹은 자사를 신뢰하는 시청자와 독자를 전제로 하는 미디어 종사자의 눈에서도 다르지 않다. 행여 자신의 이익을 침해하는 미디어 비평이 등장하면 ‘현장을 모르는 탁상공론’으로 치부하고 자신의 요구가 왜 정당한지 시민에게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미디어 비평은 협소한 정치적·경제적 행위가 되기 일쑤다.

그럼에도 나는 미디어 비평이 더욱 정치적이기 바란다. 여기서 정치라는 것은 조지 오웰이 말했던 바로 그 의미,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이다. 보다 나은 언론이 무엇인지, 한 사회와 공동체에 바람직한 미디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지향을 뚜렷이 하는 비평이 바로 정치적 비평이다. 이런 비평이 같은 변화를 바라는 이들을 독자로 만나기 바란다. 이렇게 고도로 정치적인 비평은 현재만을 유지하고 변화를 바라지 않는 이들은 독자로 염두에 두지 않을 것이다. 미디어 비평의 정치성이 필요하다면 바로 이런 정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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