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MBC가 지난 20년 간 정규직 아나운서를 채용하며 남성만 뽑고 여성은 프리랜서 등 비정규직 채용한 관행을 시정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를 일부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전MBC는 그간 채용성차별 관행을 부인하는 한편 진정인이 당한 업무상 불이익에 대한 배상을 거부했다.

대전MBC는 지난 18일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에 권고이행 여부에 대해 답변하며 “채용 절차를 진행해 올해 11월 말 이전에 정규직으로 임용하겠다”고 밝혔다. 대전MBC 관계자는 “동일 업무 및 지휘 감독과 관련해 다툼의 소지가 다수 존재한다고 판단했지만 공영방송사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본 권고를 수용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 채용 절차에 대해선 “내부 규정과 절차에 따라 진행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인권위는 지난 6월17일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 등이 낸 채용 성차별 진정에 “진정인들(유 아나운서 등)은 업무 내용 및 수행 방식을 봐도 형식상 프리랜서일 뿐, 사실상 근로자로서 남성 정규직 아나운서와 동일 업무를 수행했고 실질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결정했다. 인권위는 대전MBC에 △진정인 정규직 전환 △재발방지책 마련 △진정 뒤 가한 불이익에 대한 위로금 지급 등을 권고했다. 199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대전MBC가 신규 채용한 정규직 아나운서 4명은 모두 남성이고, 계약직 15명과 프리랜서 5명 등 비정규직은 모두 여성이다.

대전MBC는 장기간 이어진 채용성차별 관행 해소 대책을 마련하라는 권고를 수용하겠다면서도 성차별 관행 존재를 부인했다. 

대전MBC가 김상희 국회부의장실에 제출한 입장에 따르면 대전MBC는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유념하겠다. 아나운서 채용 시 성별 고용 불균형이 발생하지 않도록 통합적 관점에서 양성 평등 고용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대전MBC는 이어 “당사의 제도적 문제에서 비롯되거나 의도된 것이 아님을 거듭 밝힌다”며 “정규직을 채용하면서 직접 여성을 배제하거나 간접적으로 성차별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전MBC는 “공정한 채용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오인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대전MBC의 권고 이행이 ‘유 아나운서 등 비정규직 여성 아나운서는 그간 실질 노동자였다’는 인권위 지적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이뤄질지 우려가 인다. 대전MBC 관계자는 고려 중인 “채용 절차”(정규직 전환)가 신규채용 방식을 포함하느냐는 질문에 “그 부분은 미정”이라고 했다.

대전MBC는 답변에서 인권위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대전MBC는 “방송진행을 본질적으로 정규직과 같은 업무로 보는 건 일반화의 오류는 아닌지, 지역방송사 정규직 아나운서의 방송 진행 외 업무 다양성은 고려했는지, 근로자성 판단 기준인 대법원 판례를 적용하면서 방송 산업 특수성을 어떻게 고려할 것인지, 동일업무 차별대우에 대한 권고 방식이 ‘정규직 전환’이 적절한 것이고 긴급 구제 필요성이 있는 것인지 등 몇 가지 판단에 대해서는 아쉽게 생각한다”고 했다.

▲‘대전MBC아나운서 채용성차별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6월18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위 결정을 환영하며 대전MBC는 여성 아나운서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채용 성차별 관행을 시정하라”고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대전MBC아나운서 채용성차별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6월18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위 결정을 환영하며 대전MBC는 여성 아나운서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채용 성차별 관행을 시정하라”고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대전MBC는 유 아나운서 등에게 진정 뒤 가한 불이익에 대해 위로금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권고도 거부했다. 대전MBC는 “방송사 프로그램 개편으로 인한 자연스런 진행자 교체 과정에서 발생한 일로 보상의 의무는 뒤따르지 않는다”며 “방송편성 자율성과 독립성은 방송법과 방송편성규약에서 보장받고 있는 제작자들의 정당한 권리”라고 주장했다. 

인권위는 앞서 결정문에서 “(진정 뒤) 두 번에 걸친 개편이 5명의 아나운서 중 진정인 2명의 프로그램에 집중된 점, 이전에는 방송국 사정으로 개편하더라도 진정인들에게 다른 프로그램 진행을 맡겨 일정 수준의 방송 분량 및 보수를 유지해왔던 점 등을 볼 때, 통상적 프로그램 개편이라는 피진정인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전MBC 측은 지난해 10월 열린 시청자위원회에서 “문제(진정)가 제기된 이후 제작팀과 출연자 간 소통과 신뢰가 중요한데 이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MBC본사는 “인권위에 권고를 따르겠다는 답변을 보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대전MBC 대주주인 MBC본사에 전국 지역계열사 채용 성차별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성차별 시정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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