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협조 없이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출범할 수 있는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올랐다. 국민의힘이 ‘공수처법이 위헌이라 협조 못한다’는 입장을 유지하면서,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빨리 가려내라는 여당 의원 질책도 나온다.

21일 국회 법사위는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수처법 개정안을 제1소위원회에서 심사하기로 했다. 여당과 야당 교섭단체가 각각 2명씩 공수처장 추천위원을 선임해야 하는 현행법 대신, ‘국회’가 4명의 추천위원을 선임하는 내용이다. 야당 교섭단체(국민의힘)가 반대하면 추천위조차 꾸리지 못하는 현행법을 바꾸겠다는 취지다. 같은 당 박범계·백혜련 의원도 관련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으나 회의에 올릴 수 있는 숙려기간이 지나지 않아 김 의원 발의안만 상정됐다.

윤호중 법사위원장(민주당)은 이날 법안들을 상정하면서 “공수처법이 7월15일 시행됐음에도 출범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많은 우려의 말씀이 있다”며 “소관 법률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 법안심사에 좀 더 속도를 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당부했다. 윤 위원장은 “이렇게 계속 지연되면 공수처 출범에 대한 국민적 요구와 공수처법을 우리 스스로 국회가 어기게 될 수 있으니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제1소위는 법안심사를 함에 있어서 매우 상황인식을 정확하게 해서 조속·신속한 논의가 이뤄지도록 협조해주기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오전 회의 동안에는 공수처 출범이 더 늦어져선 안 된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9월 중 공수처법에 따른 야당 협조가 원활히 되지 않으면 대체입법을 통해서라도 출범해야 한다. 10월은 국정감사 기간이고, 11월은 예산국회다. 야당께서 혹시라도 안건조정위원회 같은 걸로 발목 잡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야당에 협치를 구해야 통과 시행 가능한 제도이기 때문에 협치 상징으로 공수처가 출범해야 한다. 조속한 심사를 원한다”고 말했다.

▲9월1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윤호중 위원장이 개회를 선언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민중의소리
▲9월1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윤호중 위원장이 개회를 선언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민중의소리

박 의원은 국민의힘이 제기한 위헌심판 결론이 빨리 나와야 한다며 헌법재판소에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박종문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을 향해 그는 “야당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데 (공수처법을) 심리하고 있나, 안 하고 있나. 헌재는 생각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라며 “온통 나라에서 ‘공수처 시행해야 된다, 안 된다’ 갈려 있으면 국가 헌법기관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국민께 결과 내놓는 게 헌법기관답다고 생각하는데 아무 생각이 없느냐”고 목소리 높였다.

박종문 처장이 “그럴 리가 있겠느냐”며 “심리 중”이라고 답한 뒤에도 질책은 이어졌다. 박 의원은 “야당이 반대한다고 해서 다수결로 통과된 법 지키지 않겠다는 건 음주운전자가 윤창호법에 의해 처벌받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거랑 뭐가 다른가. 성범죄자가 전자발찌 착용하기 싫다고 ‘헌법소원 제기했으니 (전자발찌) 차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거랑 뭐가 다른가”라며 “헌재는 헌재대로 조속한 결론 내 달라는 말씀을 존경하는 박종문 처장이 전달해달라”고 말했다.

공수처 출범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은 민주당 안팎으로 제기됐다. 소병철 민주당 의원은 “공수처법은 작년 12월30일 공표됐고 6개월 후 시행됐다. 이에 따라 공수처는 7월15일 출범돼야 한다. 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개정안이 나오는 해괴한 일을 국회에 와서 보고 있다”며 “오늘 법사위에서 공수처를 법 규정대로 출범하자는 결의안을 정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은 “국민 70~80%가 (공수처 설치를) 찬성하고 이미 법안이 시행돼 있다. 박범계 의원 안이나 백혜련 의원 안이 숙려기간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정되지 못했지만 숙려기간은 위원회 의결을 통해서 줄일 수 있고, 법안소위에서도 새롭게 수정안을 낼 수 있는 걸로 안다”며 “여당 의원들의 결단”을 촉구했다.

회의에 출석한 추미애 법무부장관도 공수처법 개정에 긍정적 입장을 냈다. 공수처법 필요성을 설명해달라는 여당 측 질의에 추 장관은 “권력 눈치를 봐온, 수사와 기소를 독점하고 있는, 임의적·선택적·편의적으로 수사·기소권을 행사해 온 검찰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공수처법 탄생의 배경이다. 20여년간 꾸준히 학계 원로들과 재야 시민단체, 우리 국민들 사이에 꾸준히 논의돼 발전된 것 국회가 수렴해 탄생됐다는 게 제 답변”이라며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한 수사기구 설치가 공수처법의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국회 논의를 거쳐 제정된 것이기 때문에 신속히 출범되는 게 마땅하다 생각한다”고 했다.

이를 두고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장관은 야당의 추천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개정안도 긍정적이다 이렇게 답변한 거냐”고 물었다. 추 장관은 “제 말씀을 자꾸 왜곡시키는데 신속한 출범 자체에 장애가 초래되고 있으니, 신속한 출범을 위해서는 그럴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