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종 신문을 종합해 보고야 문제의 골자를 겨우 포착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해방 직후 한 언론인이 신문마다 다르게 보도해 사실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는 취지로 한 얘기다. 그는 그 원인으로 ‘압력’과 ‘파쟁’을 들었다. 미군정의 언론통제와 정치적, 이념적 대립이 영향을 주었다. 신문들은 지면을 주의, 주장으로 채웠고, 정략적 허위보도를 서슴지 않았다.

한국전쟁 이후 분단체제가 공고해지면서 사실보도조차 반공을 이유로 억압되는 일이 많았다. 군사정권 등장 이후 언론은 중요한 사실에 대해 자주 침묵하거나 왜곡하여 보도하곤 했다. 침묵과 왜곡은 탄압과 특혜를 결합한 언론정책이 주효한 결과였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언론자유가 신장했고, 새로운 매체가 등장했다. 보수 일색의 매체 지형에 변화가 나타났다. 기존 보수매체와 새로운 진보매체 사이에 갈등과 대립이 나타났다. 진보정권이 등장하면서 갈등이 격화됐고, 왜곡과 편파보도가 권력 감시로 포장되어 나타나기도 했다. 이제 ‘압력’이 아니라 ‘파쟁’이 사실보도를 가로막았다.

분단체제 속 왜곡·편파보도 구조화

‘탈진실화’가 진실과 거짓의 구별보다 내 관점에 맞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분단체제가 지속돼 온 한국 사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탈진실 시대였을지도 모른다. 반공주의에 부합되는지 여부만이 중요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진실과 사실의 가치가 폄하되고 거짓과 조작이 횡행하기도 했다. 반공을 위한 것이라면 언론의 왜곡, 편파보도도 문제되지 않았다.

진보정권의 등장과 매체환경의 변화가 ‘탈진실화’를 가속화시켰다. 진보정권 등장에 따른 보수세력의 박탈감과 반발심이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을 통한 ‘가짜뉴스’와 결합했다. 가짜뉴스의 범람을 막을 묘수는 없다. 더디더라도 조금이나마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은, 기존 언론이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를 통해 신뢰와 권위를 회복하는 것이다. 기존 언론도 정파성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정파성 때문에 사실에 대해 눈감지는 말아야 한다.

탈진실 시대, 절실한 언론 신뢰와 권위 회복

조선일보가 신뢰도와 영향력에서 1위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기자협회보>가 한국기자협회 창립 56주년을 맞아 협회 소속 기자 653명을 대상으로 2020년 8월7일부터 11일까지 시행한 조사결과이다. 영향력은 조선일보(32.5%)가 2위인 KBS(18.4%)를 한참 앞섰는데, 경제지와 온라인매체 기자들의 선택 때문이었다고 한다. 신뢰도는 조선일보(10.1%)가 공동 2위 경향신문과 한겨레(7.4%)보다 근소하게 우위를 보였는데, 대구·경북 지역일간지 기자들의 높은 신뢰도와 다른 매체들의 신뢰도 하락 덕택이었다고 한다.

[ 관련기사 : 기자협회보) 신뢰하는 언론사 ‘모름·무응답’ 24.8%… JTBC는 급락 ]

▲ 기자협회보 8월19일자 3면
▲ 기자협회보 8월19일자 3면

그동안 조선일보가 신뢰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한 데다가 조사 시점까지 감안하면  <기자협회보> 신뢰도 조사결과는 정말 의외이다. 2020년 7월17일 서울시청을 출입하는 조선일보 기자가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 사무실에 무단 침입해 자료를 촬영하다가 발각됐다. 서울시는 7월24일 해당 기자를 건조물 침입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고, 서울시청 출입기자단은 7월28일 조선일보 기자를 기자단에서 제명했다. 불법 취재행위로 한참 비판받던 매체가 기자 대상의 여론조사에서 신뢰도 1위로 나타난 것은 한국 언론의 민낯을 보여준다.

조선일보는 신뢰도 1위 사실이 보도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8월28일 “조국 딸이다, 의시고시후 여기서 인턴하고 싶다”라는 제목의 보도를 했다가 다음 날 오보를 인정해 사과했다. 또한 8월6일 “고위직, 한동훈 내쫓을 보도 나간다 전화”라는 제목으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에 관한 기사를 게재했다가 9월11일 정정 및 반론보도문을 게재했다. 진보정권에 대한 비판의 과욕 때문에 모처럼의 ‘신뢰도 1위’라는 결과가 빛이 바랬다.

▲ 조선일보.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조선일보.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불법 취재행위 논란 속 신뢰도 1위

“정쟁에 휩쓸리어 기자 자신이 당파적인 선입견의 포로가 되어 냉정한 관찰과 비판력을 잃은 일도 많았고, 심하면 신문사 자신이 정쟁의 급선봉이 되어” 버린 일도 있었다. 지금도 경계해야 할 언론인의 태도를 지적한 내용이다. 이 글의 서두에 인용한 문장과 마지막에 다시 인용한 문장은 조선일보에 재직한 홍종인이 <신천지> 1946년 6월호에 쓴 글에서 따온 것이다. 그 시대나 지금이나 ‘당파적인 선입견의 포로’가 된 기자가 쓴 기사는 결코 온전히 사실을 전달하기 어렵다는 점을, 조선일보 기자를 포함한 이 시대 모든 기자가 새삼 되새겨야 한다.

 

※ <언론포커스>는 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 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해보는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 주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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