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편집작업 직후 뇌경색으로 쓰러져 사망한 드라마 편집감독이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다. 망인이 ‘프리랜서’라며 산재를 불승인한 근로복지공단 처분을 법원이 그의 노동자성이 인정된다며 뒤집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김국현 재판장)는 지난달 13일 드라마 편집감독 고 박아무개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등을 지급하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2015년 8월 박씨가 사망한 지 5년 만이다. (서울행정법원 2020구합50959)

근로복지공단은 지난해 3월27일, 유족이 산재를 주장하며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 신청을 기각했다. 박씨가 “위탁용역대금을 받은 자유직업소득자(프리랜서)로서 제작사 복무규정이나 업무지시에 따르지 않고, 근무시간과 장소에 제약이 없었으며, 보조편집자를 채용해 업무를 시작했으므로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법원은 “비록 계약이 업무 위탁 형식을 취했으나 망인은 임금을 목적으로 외주제작사와 사용종속관계에 있는 근로자라고 인정된다”며 “이와 다른 전제에 선 근로복지공단 처분은 위법하다”고 밝혔다.

▲2015년 3~8월 방영된 MBC 드라마 '여왕의 꽃'. 사진=MBC
▲2015년 3~8월 방영된 MBC 드라마 '여왕의 꽃'. 사진=MBC

 

박씨는 2015년 MBC가 3~8월 방영한 드라마 ‘여왕의 꽃’ 편집감독이었다. 드라마 외주제작사인 G사와 김종학 프로덕션이 공동제작을 맡은 작품이다. 박씨는 그해 1월 G사와 회당 대금을 받는다는 내용의 업무위탁계약서를 체결했다. 계약상 지위가 프리랜서였다.

박씨는 드라마 종영 4주 전 MBC 숙직실에서 쓰러졌다. 2015년 8월1일 밤 10시경 연출자, 종협편집실 스태프 등 제작진과 함께 드라마 편집을 마친 후 숙직실로 들어갔으나 15분 후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그는 4일 후 뇌경색으로 사망했다.

법원은 G사가 박씨를 실질적으로 지휘·감독했다고 봤다. “MBC는 제작사에 드라마 제작에 관한 구체적인 지시를 하고, 제작사는 드라마 제작을 제 3자에게 위탁할 수 없으며 박씨는 독립적으로 드라마 완성 등을 정할 수 없는 편집을 담당했다”며 “박씨는 연출자 지시에 따라야하고, 업무 결과를 연출자에게 보고하며 필요에 따라 제작사에도 보고해야 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또 박씨의 근무시간과 장소가 G사와 계약에 구속됐다고 밝혔다. 박씨는 MBC 5층 편집실을 썼다. MBC가 계약 의무에 따라 G사에 지정해 준 장소다. 제작사는 방송 4시간 전까지 MBC에 드라마 완제품을 납품해야 했다. 박씨는 촬영이 완료된 데이터를 받은 때부터 방송 전까지 편집을 했고, 통상 방송 당일까지 최종 작업을 했다.

나아가 법원은 “박씨가 계속적·전속적으로 G사에서 편집업무를 했다”며 “계약 기간은 방송사 사정에 따라 증감될 수 있는 등 사전에 명확히 정할 수 없었고 회당 대금도 근로의 대가로 받았다”고 인정했다.

‘편집보조’를 따로 둔 사정에 대해서도 법원은 “해당 편집보조 스태프는 제작사와 업무위탁계약을 체결했다. 이 스태프는 연출자 지시에 따르고 결과를 보고할 의무가 있었다”며 “박씨가 채용해 업무지시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끝으로 법원은 박씨가 제작사의 취업규칙을 적용받거나 4대 보험 가입이 되지 않은 사실을 두고도 “계약상 박씨는 자유직업소득자로 제작사 취업규칙, 복무규정이 적용되지 않도록 정해졌다”며 “이런 사정만으론 앞서 본 사실들에 비춰 박씨가 노동자가 아니라고 단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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