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MBC 입사. 어느덧 20년 차를 맞은 올해 김태호PD는 ‘놀면 뭐하니?’로 한국방송대상 프로듀서상을 수상했다. 그는 2009년에도 ‘무한도전’으로 한국방송대상 TV연출상을 받았다. 그 사이 MBC를 둘러싼 방송환경은 ‘격변’했다. 스마트폰과 유튜브가 등장했고 종합편성채널이 개국했으며 CJ ENM이 성장했다. 지상파 PD들은 떠나갔다. 어쩌면 지상파 마지막 ‘스타 PD’로 기록될지 모를 김태호PD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누군가는 ‘놀면 뭐하니?’의 성공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김태호PD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짐작하기 어려운 중압감을 이겨내고 김태호PD와 제작진은 프로그램을 1년 만에 정상에 올려놨다. ‘놀면 뭐하니?’의 성공 요인과, 지상파PD의 ‘생존법’을 물었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에 맞춰 지난 15일 전화와 서면 보충으로 인터뷰를 구성했다. 

 

‘놀면 뭐하니?’의 성공, 핵심은 ‘확장성’ 

2019년 7월27일 첫 방송 이후 방영 1주년을 넘긴 ‘놀면 뭐하니?’는 각종 지표에서 앞서있다. 8월1일부터 지난 12일까지 7회 방송분에서 15일(9.3%)을 제외하고 모두 두 자릿수 시청률(닐슨코리아 기준)을 기록했고 8월29일 방송에선 13.3%로 자체 최고시청률을 기록했다. 익명의 시청률 조사 전문가는 “토요일 오후 6시30분은 무한도전 이후 방황하던 시간대였는데 시청자가 모이고 있다. 지난 12일 방송분 기준으로 고정형TV 실시간 20~49 시청자수에서 대한민국 모든 예능프로그램 중 1등”이라고 설명했다. 

온라인에서도 ‘놀면 뭐하니?’는 강세다. 각종 N스크린 데이터에서 전체 예능프로그램 가운데 TOP3 안에 꾸준히 포함되고 있다. OTT서비스 웨이브의 ‘주간웨이브’ 지표에 따르면 ‘놀면 뭐하니?’는 ‘런닝맨’에 이어 꾸준히 시청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자체 유튜브 채널 구독자도 85만명 수준으로 매우 높은데, 1년 만에 거둔 성과여서 더 놀랍다. 이곳에선 흥미를 끄는 예고편을 올려 본방송을 보게 만든 뒤, ‘미방분’을 푸는 식으로 충성 시청층을 강화한다.

‘놀면 뭐하니?’ 디지털 담당 이주원PD는 “TV 시청층과 웹 시청층이 원하는 콘텐츠의 결이 다르다. 같은 촬영본으로도 웹 시청층을 위해서는 짧은 영상으로 재가공해 낼 필요가 있고, 더 날 것의 느낌을 살리는 편집도 필요한 것 같다”고 밝힌 뒤 “지금은 본방의 재가공 형태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유(YOO)니버스 세계관을 확장시킬 수 있는 디지털 오리지널 콘텐츠들도 필요하다. 웹에 어울리는 짧고 간단한 포맷으로 날 것 느낌의 즐거움, 새로움과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룹 '싹쓰리'의 모습. 유재석은 부캐 '유두래곤'으로 등장했다. ⓒMBC
▲그룹 '싹쓰리'의 모습. 유재석은 부캐 '유두래곤'으로 등장했다. ⓒMBC

한 방송 전문가는 “김태호PD가 영리하다. 부캐를 중심으로 하는 성장형 예능으로, 복고를 적절히 섞으면서 사람들이 스토리에 흥미를 느끼게 만들었다. 프로그램 내에서 시즌제를 하고 있다”고 평가한 뒤 “온라인 홍보도 잘한다. 과거 예고편을 제일 잘 만들던 프로그램이 무한도전이었는데, 그 솜씨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오늘의 ‘놀면뭐하니?’는 ‘산전수전’ 다 겪은 무한도전에서의 경험과, 2020년에 걸맞는 고민이 있어 가능했다. 김태호PD가 말했다. 

“무한도전 초창기는 ‘6인으로 뭐든 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었다면, 스트리밍과 숏폼이라는 콘텐츠 화두가 한창이던 2018년 3월 무한도전 종료 시점에는 매주 다른 주제로 100분에 가까운 콘텐츠를 만든다는 게 시대의 흐름을 온몸으로 막고 있는 것 같았다. 복귀 프로그램은 충분한 준비 시간을 거처 확실한 기획 의도와 스토리텔링을 가진 시즌제 프로그램을 하려 했다.” 그러나 고민은 복잡해졌다. 

“1년을 (쉬며) 제작자가 아닌 시청자로 보내보니 ‘TV시청’이라는 행위 자체가 쉽지 않았다. 10회~12회 시즌제 프로그램도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데는 큰 노력이 필요했다. 접근성 높은 플랫폼과 더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유혹하는 환경에서 매주 무한도전을 찾아주시던 시청자들께 대한 무한한 감사함을 프로그램 끝나고 시간이 지나서야 더 크게 느꼈다.” 그는 프로그램을 새롭게 계획했다. 

“작년 초 새 프로그램을 위해 모인 팀원들과의 회의 초창기, 가장 큰 관심을 가졌던 프로젝트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매달 주방장이 제철 식재료로 새로운 특선요리를 내놓듯이 지금 가장 트렌디하고 가장 재밌는 프로그램을 매달 준비하는 이달의 프로그램, 가칭 이달프였고, 또 하나는 유재석 1인에 매회 1인의 인물이 추가되면서 그 인원에 가장 적합한 콘텐츠는 뭘지, 어떻게 케미스트리가 변해갈지를 실험하는 가칭 재석’s 일레븐이었다. 둘의 공통점은 확장성, 실험성, 그리고 독창성이었다. 자연스럽게 ‘놀면 뭐하니?’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놀면 뭐하니?'. ⓒMBC
▲'놀면 뭐하니?'. ⓒMBC

‘놀면 뭐하니?’가 시작됐다. 

“지난해 4월, 유재석씨는 제작진과 회의에서 ‘작지만 소소하게 시작해 점차 확장시키자’는 것에 동의했다. 그리고 실험성과 독창성에 대한 합의는 지난 1년 동안 유재석씨를 제작진 마음대로 당황하게 만들어도 된다는 무한 허락으로 받아들였다. 사실 확장성, 실험성, 독창성이라는 표현은 너무 주관적이어서 몇 번의 테스트를 통해 제작진과 출연자가 공감할 객관적인 가늠이 필요했다. 방송의 가장 필수적인 준비, 출연자 1인과 카메라 1대로부터 일을 시작했다. 유재석씨에게 건넨 카메라를 바통 삼아 한 사람 한 사람 이어지는 ‘릴레이 카메라’를 시도해 유튜브 계정에 올렸다. 이를 기초로 출연자의 확장성을 그린 ‘조의 아파트’, 카메라의 수적 확장을 시도한 ‘대한민국 라이브’까지 영점 조정 테스트를 거쳤다.”

제작진의 방향성은 ‘확장’이었다. 고정출연자가 1명인 이유도 확장에 유리해서였다. 그렇게 카메라의 확장에서 출발한 프로그램은, ‘단 한 명의 고정 출연자’ 유재석의 확장을 시작했다. ‘놀면 뭐하니?’ 장우성PD가 말했다. 

“기술적인 면에서의 확장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정작 주인공인 유재석 씨의 비중과 역할을 정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다양한 사람들 사이의 1/N이 아닌 주인공으로서 더 부각할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부캐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릴레이 카메라 형식에 음악적인 접근을 시도한 드럼 영재 유고스타를 시작으로, 트로트 신동 유산슬, 툴툴대며 요리하는 라섹, 손을 벌벌 떨며 연주하는 유르페우스, 토크를 좋아하는 라디오 진행자 유DJ뽕디스빠뤼, 치킨 매니아 닭터유, BPM 130 이상을 좋아하는 유두래곤 까지. 우리가 몰랐던-어쩌면 본인도 몰랐던-유재석 씨를 찾아 새로이 확장해가는 과정이었다. 이렇게 부캐 플레이가 핵심이 되자 ‘놀면 뭐하니?’가 어떤 프로그램인지 시청자들에게 좀 더 쉽게 이해되기 시작한 것 같다.”

▲'환불원정대'의 모습. 유재석은 '부캐' 지미유로 등장한다. ⓒMBC
▲'환불원정대'의 모습. 유재석은 '부캐' 지미유로 등장한다. ⓒMBC

 

현재 활동 중인 연예 제작자 ‘지미(知美)유’는 기존의 부캐들로부터 한 걸음 더 나간 캐릭터다. ‘놀면 뭐하니?’ 김윤집 PD가 말했다. 

“기존의 부캐들은 수동적이었던 반면, 지미(知美)유는 능동적이다.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 씨의 부캐들을 당황스러운 상황에 투입하고 이를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면, ‘환불 원정대’에서는 제작진 대 부캐의 대결 구도가 아니다. 지미(知美)유는 제작진 대신 환불 원정대 멤버들을 적극적으로 마주하고, 알아서 대립하고,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지미(知美)유 덕분에 제작진은 한발 물러설 수 있게 됐다. 다른 부캐들과 달리 카메라 앞에서 신이 나 있는 이 새로운 부캐를 통해 ‘놀면 뭐하니?’의 새로운 확장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놀면 뭐하니?’의 최종 목적지는 방송시간이 정해진 지상파 편성의 틀을 넘어서는 콘텐츠다. ‘어벤저스’를 만든 일종의 ‘마블 스튜디오’ 전략이다. 김태호PD가 말했다. 

“2008년부터 그렸던 큰 그림이 ‘무한도전 스튜디오’였다. 무한도전에서 발생한 캐릭터가 타 프로그램에서 소모되고, 무한도전의 특별한 에피소드들이 타 채널 정규프로그램들로 만들어지는 걸 보면서 우리가 성장시킨 캐릭터와 개발한 포맷들을 우리 시스템 안에서 소화할 수는 없을까, 우리 능력 안에서 지상파가 아닌 플랫폼에 특화된 스핀오프를 만들 순 없을까 고민했다. 토요일 저녁 무한도전과 별개로 월요일 밤 ‘시트콤 무한상사’나, 시니어 대상 프로그램 ‘하와 수’, 예능계 후배 육성 프로그램 ‘무한도전 마이너리그’ 등을 제작하는 식인데, 당시 가능성이 있겠느냐는 반문이 있었다. 지금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하나의 명확한 IP에서 개성 있는 서브IP로 확장해나가는 시스템은 이미 성공한 경우들이 흔하다.” 

모든 예능PD의 고민은 제작비다. 무한도전에 비해 제작비는 어느 정도 수준인지 궁금했다.

“출연료를 떠나 콘텐츠를 만드는 기본비용이 있다. 1인 출연자 위주의 콘텐츠다 보니 70분 한 회 분량을 담는데 2~3회 촬영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어 결과적으로 무한도전과 비슷한 제작비를 쓴다. 그래서 좀 더 높은 퀄리티의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PPL을 자주 활용하게 된다. 사실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광고주가 원하는 마케팅 방향으로 PPL을 진행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PPL을 웃음 소재로 잘 활용해 광고주의 호감도를 높이고 예비 소비자인 시청자들의 선택에 도움을 주는 게 우리의 전략이다.” 

▲김태호 '놀면 뭐하니?' PD. ⓒMBC
▲김태호 '놀면 뭐하니?' PD. ⓒMBC

 

김태호PD “매스미디어? 이제는 매스콘텐츠다” 

10년 전, 기자는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 당시 운이 좋아 장충체육관에서 정형돈의 수플렉스를 봤다. 무한도전의 전성기였고, MBC도 재밌으면 시청률 20%는 쉽게 넘기던 전성기 끝 무렵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2009년 스마트폰의 등장은 전혀 다른 ‘세계관’의 등장이었고, 진격의 유튜브는 지상파PD들 입장에서 ‘타노스급’ 빌런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김태호PD는 10년 전과 지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종합편성채널이 시작되고, 유튜브가 성장하고, 해외 및 토종 OTT들이 탄생하면서, 무한도전이 끝난 2018년은 MBC 전체매출에서 광고매출이 50% 이하로 떨어지고 유통 매출이 앞서기 시작한 해였다. MBC가 플랫폼 지형 변화에 속상해하기보다는 콘텐츠 제작사로서의 역할이 강화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했다. MBC만을 위한 콘텐츠가 아니라 멀티 윈도우에 맞는 콘텐츠들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면서 그는 ‘매스콘텐츠’의 시대를 강조했다. 

“요즘 ‘매스미디어’라는 말은 사라졌지만, 멀티 플랫폼을 통해 ‘매스콘텐츠’가 가능한 시기다. 확실히 실시간TV 시청자 수는 줄어들고 있다. ‘놀면 뭐하니?’ 뿐 아니라 레거시 플랫폼이 주 타깃으로 삼는 연령대인 20~49 시청자들은 재미를 위해 하나의 플랫폼만을 이용하지 않고,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든 TV를 멀리할 수 있는 유혹에도 가장 가까운 분들이다. 콘텐츠는 제작자나 플랫폼을 위해서가 아닌 시청자를 위해 존재한다. 기술이 먼저가 아니라, 시청자 니즈(Needs)에 따라 기술이 따라간다. 스마트폰 콘텐츠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10년 전과 달리 MBC를 비롯한 지상파는 수많은 콘텐츠 제작사 중 1/N처럼 느껴진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매스콘텐츠는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지상파 PD는 어떻게 생존해야 할까. 그에게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김태호PD가 답했다. 

▲MBC '무한도전'의 한 장면.
▲MBC '무한도전'의 한 장면.

“지상파의 옛 영광을 되돌릴 수 없다. 이미 시청자들의 콘텐츠 소비 방법이 변했다. MBC 하루 광고매출과 1인 유튜버 광고수익이 비교되는 시대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시청자들이 여러 플랫폼을 방문하며 찾고 있는 건 하나다. 나를 재밌게 해줄 새로운 ‘콘텐츠’다. 일방적으로 보여주던 시대에서 내 입맛대로 골라보는 시대다. 그래서 간혹 제작자들이 아쉬움에 얘기하는 ‘우리 방송 보면 재밌는데…’라는 말은 이미 어느 정도 실패를 내포하고 있다. 콘텐츠에 대한 기획 의도와 주제 못지않게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도 제작진이 고민해야 할 큰 부분이다. 플랫폼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지만, 반대로 콘텐츠에 적합한 플랫폼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났다.”

그는 지상파PD의 정체성과 관련, “MBC PD가 아닌 ‘놀면 뭐하니’ PD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지상파PD로 규정하는 것은 콘텐츠 제작자로서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긍정적인 건 플랫폼이 많아지면서 실시간 TV시청자 수는 줄었지만 전체적인 콘텐츠 이용자 수·이용시간은 늘어났다. ‘놀면 뭐하니’ 스튜디오 PD로서 이 기회를 잘 이용하려 한다. 유튜브, 넷플릭스, 카카오TV는 경쟁상대가 아니라 우리의 새 놀이터다. 재밌게 놀 자신이 있다.”

시청자가 편성권을 가진 시대. 보게끔, 오게끔 하는 것도 PD의 능력이다. 지상파에 입사한다고 모두 내가 제작한 콘텐츠를 보는 시대가 아니다. 접근성에 대한 고민 없이 만드는 것 자체가 콘텐츠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간과하는 시대다. 또 한 가지, ‘실패할 수 있는 자유’가 없었다면 무한도전은 탄생할 수 없었다. 방송사는 PD들에게 2020년 버전의 ‘실패할 자유’를 구현해야 한다.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쉬어야 할 때, 쉴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PD를 성장시키고, 뺏기지 말아야 한다. 지상파의 ‘생존법’은 멀리 있지 않다. ‘김태호PD의 20년’이 방송가에 주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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