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방역에 있어 장애인을 취약계층으로 분류하는 게 차별이라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에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장애인 단체들이 박 장관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한편, 야당 소속 의원도 박 장관을 질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능후 장관은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4차 추가경정예산안에 장애인 관련 예산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방역 차원에서 장애인을 취약계층이라고 구분하는 건 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며 “기저질환, 노인들로서 감염됐을 때 다른 질환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분들이 우선 대상이다. 장애인 이름 하나를 갖고 방역 취약계층으로 보는 건 바른 시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박 장관에게 “3차 추경 34조에 달하는 추경안 편성하면서 장애인 관련 예산은 삭감했고, 이번 4차 추경에서는 장애인 관련 예산을 한 푼도 편성하지 않았다. 사회복지시설들이 장기간 휴업 상태로 장애 가족들이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고 몇 번을 강조했다”며 “4차 추경에 장애인이라는 단어는 하나도 없다. 너무하신 것 아닌가”라고 질문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박 장관은 ‘추경안에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장애인 단어가 안 들어간 건, (추경안에) 광부나 농부에 대한 말도 없다. 어떤 특정 용어가 없다고 해서 대상이 빠진 게 아니다”라며 “특정한 용어가 없어서 그 부분이 빠졌다는 건 과도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이종성 의원은 장애인을 방역 취약계층으로 본 것이 차별인지 국가인권위원회가 판단해 달라며 진정서를 냈다. 이 의원은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제가 과연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 의무를 위반한 것인지 조속히 판단해 주실 것을 촉구한다”며 “대한민국 헌법 제45조에 의한 면책특권을 일체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법적 판단에 의한 모든 처벌 역시 감수하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이 의원은 “우리나라 장애인의 만성질환 유병률(84.3%)은 전체 국민(36.2%)에 비해 두 배가 훨씬 높다는 통계가 있음에도 장애인 중 43.4%가 경제적인 이유 및 이동권의 제한으로 병원조차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며 “지난 9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또한 브리핑을 통해 코로나19와 독감 동시 감염 사례가 있다며 만성질환자, 기저질환자에 대해 독감예방 접종을 권고한 바 있다. 따라서 저는 복지부에 코로나19 방역차원에서라도 장애인을 독감예방백신 무료접종 대상에 포함시켜줄 것을 요청한 것”이라고 질의 취지를 밝혔다. 복지부의 2017년 장애인실태조사에서 장애인의 보건의료 취약성이 확인됐고, 이런 취약성으로 인해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는 점도 언급했다.

장애인들의 반발도 거세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는 17일 성명을 내고 “즉각적인 복지부 장관의 사과와 장애인식개선 교육 수강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금이라도 적극적인 장애인에 대한 코로나 상황에서의 지원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도 보건복지부는 이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으며 복지부의 수장인 장관은 전 세계가 모두 인정하고 있는 장애인의 취약성을 부인하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광부나 농부라는 단어도 추경안에 없다’는 답변에 대해서는 “장애인을 마치 선택이 가능한 직업군과 비교하는 등 장애인에 대한 몰이해 수준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런 기본적인 철학과 사고가 과연 어떻게 향후 장애인복지정책을 이끌어 갈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18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사진=이종성 의원실
▲ 18일 국가인권위원회를 방문한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 사진=이종성 의원실

지체장애인협회는 “이미 코로나 발생 초기인 지난해 말 확진자 가족의 격리로 인해 집에서 홀로 남은 장애인이 굶어 죽는 사건이 중국에서 발생했으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장애인지원방안이 추진됐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과 달리 국내 상황은 코로나19로 인해 발생 된 대부분의 피해부담을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이미 정부는 장애인 관련 시설을 코로나 초기부터 빠르게 폐쇄함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돌봄을 가족에게 부담하게 했고 장애인의 경제적 활동을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 또한 얼마 전 발표된 국내 장애인 관련 코로나19 매뉴얼도 3단계 이상의 코로나 상황을 전제로 했다고 보기 어려우며 국가의 책무를 철저히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2020년 5월 UN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장애를 포함한 코로나19의 대응 전략에 관한 정책 개요를 발표하면서 코로나로 인해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위기에 처했다고 밝히고 이에 대한 대책과 지원을 호소한 바 있다. 이외에도 WHO와 세계 각국은 코로나 상황에서의 장애인에 대한 지원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실제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했던 2017년 장애인실태조사에서도, 장애인의 보건의료 취약성이 확인되었다. 그런 취약성 때문에 사회계층 중 유일하게 장애인 건강권법까지 제정되었던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나아가 “정부는 K방역이라 부르며 정부의 대처를 자랑하고 있다. 물론 철저한 확진자 추적 등을 통해 코로나 확산을 막는 것은 우수한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그 K방역이 취약계층인 장애인을 외면한 정책이었음을 알게 된다면 그 정책은 절대 모범방안이 될 수 없다”며 “코로나 상황에서의 장애인에 대한 교육, 노동권 확보, 돌봄, 마스크 지원, 중증장애인의 생존권 보장 등 전 분야의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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