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달 기소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분식회계 등 사건은 언론이 재벌총수 개인 범죄로 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삼성그룹 계열사를 위해서”라며 ‘회사 범죄’처럼 보도한 기사는 사실을 호도한다는 비판이다. 이 부회장이 삼성생명 지분 매각과 관련해 2015년 워런 버핏을 직접 만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는 해석도 나왔다. 

이 같은 지적은 16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건물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이재용 부회장 불법승계 혐의 공소장 분석’ 기자간담회에서 나왔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의 이지우 간사, 이상훈 실행위원(변호사), 김남근 정책위원(변호사), 홍순탁 실행위원(회계사), 박정은 사무처장 및 민변 민생경제위원인 김종보 변호사가 참석했다.

김종보 변호사는 “이 사건은 ‘회사 범죄’가 아니다”고 짚었다. “2015년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사건처럼 회사 이익을 위해 임직원들이 뭉쳐 환경법, 노동법 등을 어긴 범죄가 회사범죄이지 이 사건은 오로지 이재용 부회장을 위한 총수 개인 범죄다. 언론이 이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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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6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건물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이재용 부회장 불법승계 혐의 공소장 분석’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이 사건 핵심 사안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의 일환이라는 사실은 지난해 대법원에서 확인됐다.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심리한 대법원은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작업이란 부정 청탁의 대가로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줬다고 인정했다. 

대법원은 ‘승계작업’을 “최소비용으로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한 이재용의 지배권 강화”라며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삼성그룹 차원에서 조직적 승계작업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이상훈 실행위원은 특히 2015년 7월11일 이 부회장이 직접 미국에 건너가 워런 버핏을 만난 사실을 강조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이 부회장 및 삼성 미래전략실 관계자들은 워런 버핏이 최고경영자로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에 삼성생명 지분을 매각하는 안을 추진했다.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진 뒤다. 

검찰은 이 이유를 이 부회장의 상속세 마련이라고 봤다. 삼성 측이 당시 삼성생명을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해 지주회사가 가질 사업회사 지분을 버크셔 해서웨이에 매각할 계획을 했다고 공소장에 적었다. 검찰은 삼성 측이 워런 버핏 측에 ‘7~10년 간 삼성에 우호적인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이면 약정도 제안했고, 문제가 생길 경우 워런 버핏이 거래를 먼저 제안했다고 알리자는 계획도 갖고 있었다고 봤다. 이 부회장이 이 논의를 워런 버핏을 직접 만나 진행했다는 것. 

삼성생명 분할안은 승계작업의 일환이다. 그룹 핵심 기업인 삼성전자 지배력을 최대한 확보하는 안 중 하나였다. 당시 이 부회장 삼성전자 지분은 0.57%에 불과했다. 이상훈 실행위원은 “이 부회장이 실질 지배하는 계열사는 삼성SDS와 에버랜드(제일모직으로 상호 변경)다. 이 자산을 삼성전자 주식으로 전환하는 게 목적이었을 것”이라며 “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2대 주주다. 에버랜드가 가진 가장 가치 있는 삼성생명 주식을 현금화해 전자 주식을 사고 싶은데, 삼성생명 주식을 팔면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이 떨어져 오히려 손해다. 그래서 생명을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쪼개 지분은 지분대로 갖고, (워런 버핏에) 매각해 현금화도 하고, 의결권도 달라고 제안한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실행위원은 “기자들이 3가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워런 버핏을 직접 만난 것, 이들이 삼성물산 합병(2015년 7월17일) 6일 전에 만난 것, 즉 이 부회장은 대통령이 요구해서 수동적으로 뇌물을 준 게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해 적극 제공한 것”이다. 

그는 “이 부회장이 직접 미국에 가서 비밀 약정을 추진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었다”며 “삼성물산 합병을 추진하는 동시에 삼성생명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할 정도로 승계작업이 시급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삼성 측은 일관되게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 관여를 부인했다. 특히 ‘삼성 2인자’라고 불린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은 2017년 뇌물 사건 1심 때부터 “재직 동안 최종 의사결정은 내가 했다”며 “이 부회장이 후계자다보니 좋은 뜻에서 총수라고 불리는 바람에 결정권자란 오해를 산 것 같다”고 밝혀왔다. 이번 공소장에서 드러난 이 부회장 행적은 이 같은 ‘총대메기’ 전략을 궁색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9월2일 중앙일보 3면.
▲9월2일 중앙일보 3면.

 

“최악의 배임 범죄, 똑바로 보도해야”

언론이 이 부회장 혐의를 자본시장 관행이라거나 경범죄로 다루는 데 대한 쓴소리도 나왔다. 특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두고 “총수 지시를 계열사 사장이 충실히 이행”한 수준으로 다루는 논조는 자본시장 운영 원칙도 반영하지 않은 호도라는 비판이다. 

홍순탁 위원은 “재벌총수나 계열사 사장, 회사 이름을 다 걷어내고 A회사와 B회사가 있다고 가정하자. 두 회사가 합병하는데 B회사가 필요한 검토조차 하지 않고 A회사 말만 듣고 움직였다면 이건 자본시장에서의 최악의 배임 범죄다. 이 관점에서 재판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사건 합병은 제일모직 주주에겐 유리하고, 삼성물산 주주에겐 불리한 시점에 이뤄졌다. 제일모직 주가가 최대한 높이 산정되고 삼성물산 주가는 낮게 산정될 때 합병이 타결됐다. 총자산, 매출액, 영업이익 모두 제일모직의 3~5배에 달했던 삼성물산이 합병 당시엔 제일모직 주가의 3분의 1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삼성 총수 일가는 제일모직 지분 42.19%를 가진 지배주주였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인위적으로 제일모직 주가를 부풀리려고 ‘허위 호재’를 공표했다며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홍 위원은 “(합병되는 회사의 주주라면) ‘이 합병이 필요한지’, ‘시기는 적절한지’, ‘제대로 대가를 받고 파는 건지’, ‘시너지 효과가 정말 있는지’를 고려하는 게 마땅하다. 삼성물산 경영진은 아무 것도 안 했다. 한 것은 제일모직 입장, 이 부회장 입장에서 결정된 합병을 그대로 실행한 것”이라며 “이를 위해 (정보 은폐, 분식회계 등으로) 각종 자료도 조작했다. 이런 행위가 처벌받지 않고 용인되고 넘어간다면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쓴소리했다. 

▲검찰은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 합병 승인을 앞둔 이 부회장이 여론과 투자자 의사결정을 왜곡하기 위해 그해 6~7월 우호적 언론을 동원했다고 공소장에 썼다.
▲검찰은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 합병 승인을 앞둔 이 부회장이 여론과 투자자 의사결정을 왜곡하기 위해 그해 6~7월 우호적 언론을 동원했다고 공소장에 썼다.

이 부회장 사건은 내달 22일 첫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이와 별개로 법원, 정부 등 책임론도 나왔다. 사법부가 재벌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고질적 관행이 삼성물산 불법합병을 가능케 했다는 비판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재벌개혁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는데도 공약은 이행하지 않고 기조를 반대로 선회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종보 변호사는 “자본시장에서 부정거래로 수많은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분식회계로 자본시장 질서를 교란한 이에게 징역 수십 년의 중형을 선고하는 관행이 자리잡았다면 (2009년) 삼성SDS 신주인수권 사채 헐값 발행 사건으로 형사 처벌을 받았던 이건희 회장 일가가 다시 형사 처벌을 감수하면서도 불법 승계 작업에 나설 수 없었을 것”이라 말했다. 

김 변호사는 “문 대통령은 ‘재벌 자본주의 사회를 혁파해 포용적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한다’는 어젠다를 제시했는데 재벌 대기업의 소유·지배구조 개선이나 자사주 의결권 방지 등 개혁은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500억원 상속세 공제안(가업상속 경우 상속재산을 최고 500억원 공제) 등을 제안했다”며 “이 사건은 친재벌 성격을 띤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졌는데 문재인 정부도 같은 속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재벌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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