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신입기자 공채 필기시험에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발한 피해자를 ‘피해자’로 부를지 여부를 논제로 내 안팎 논란에 휩싸였다. 여권이 박 시장에게 제기된 성폭력 사건에 이례적으로 ‘피해자’ 호칭을 피해 비판을 받고 용어를 정리했던 사안을 다시 논란으로 쟁점화해 2차 가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MBC 내부에선 다수 기자가 논제에 비판 의견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측 대리인과 소수노조인 MBC노동조합, 언론노조 MBC본부가 차례로 공식 입장을 냈다. 

MBC는 13일 MBC 신입(경력)기자 대상 논술시험을 진행하면서 논제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성추행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의 호칭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며 “당신은 ‘피해호소인’(피해고소인)과 ‘피해자’ 중 어떤 단어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가? 그 이유를 논술하라”고 물었다. 

MBC 측은 논제 지문에서 “한쪽에서는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지 않았는데 ‘피해자’란 단어를 쓰면 성추행을 기정사실화하게 된다며 ‘피해호소인’ 또는 ‘피해고소인’으로 칭했다. 반대쪽에서는 기존 관행과 달리 ‘피해호소인’이란 말을 쓰는 것 자체가 성범죄 사건에서의 피해자 중심주의에 반하고 2차 피해를 조장한다고 주장했다”며 “제3의 적절한 호칭이 있다면 논리적 근거와 함께 제시해도 무방하다”고 부연했다.

▲MBC.
▲MBC.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서울시 측은 지난 7월 고 박 시장의 성추행 혐의에 입장을 발표하며 거듭 ‘피해 호소인’ 또는 ‘피해호소 직원’이라는 호칭을 써 논란을 불렀다. 형사사건을 고소한 피해자는 법적 피해자로 불리는 데다 언론이 그간 성폭력 사건을 보도하며 널리 ‘피해자’란 용어를 써온 상황에서 해당 사건에만 해당 호칭을 쓰지 않는 배경에 문제 제기가 일었다. MBC도 당시 보도본부 내부 논의를 거쳐 보도 리포트에 ‘피해자’ 호칭을 써왔다. 

이날 언론사 입사준비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아랑’에 문제 제기 글이 올라왔다. 게시판엔 “명백한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에서 그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닌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을 가져와 논제로 써먹는다? 수백여명의 응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나를 두고 피해호소인인지 피해자인지 가리는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피해호소인은 틀린 표현이다. 명백한 2차 가해” “논술 주제론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내 생각대로 피해자가 왜 맞고 왜 피해호소인이 틀렸는지 쓰긴 했는데, 토론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한 쪽이 명백히 잘못한 사안” 등 비판 의견이 다수를 이뤘다.

▲지난 14일 언론사 입사 준비자들의 온라인커뮤니티 게시글
▲지난 14일 언론사 입사 준비자들의 온라인커뮤니티 게시글

피해자 측 대리인은 14일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MBC 논제에 2차 가해라는 취지로 유감을 표했다.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은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명명했던 분들이 공식 사과하고 용어가 정리됐다. 그런데도 언론사가 다시 이것을 논쟁화한 것”이라며 “1800명의 응시자들이 일정 시간 동안 살아 있는 피해자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이 사람을 뭐라고 부를지 본인들이 결정하는 상황을 만들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는 이 상황에 참 잔인하다고 표현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 입장에선 ‘내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법적 고소를 했고 우리 법에선 그 단계부터 피해자로 명명하고, 절차상 보호 규정을 적용해 피해자의 무료 법률구조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며 “이 사건 피해자도 그런 절차를 지원받고 있는 것인데, 도대체 어디에도 없는 ‘피해호소인’ 명칭을 쓰는 것이 맞는지 이렇게 의도를 갖고 질문하고 논제로 던지는 것 자체가 매우 유감스럽고 안타깝다”고 밝혔다.

MBC 보도본부는 15일 오전 회사 차원에서 입장을 정리 중이라며 보도국 기자들이 의견을 제출하면 입장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들 사이에선 해당 논제 출제가 부적절하거나 2차 가해 행위라는 의견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MBC 측은 현재 출제된 논제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MBC 관계자는 “논제는 어떤 경우가 맞는다고 생각하는지를 보고자 함이 아니라 사건의 맥락을 판단하는 능력을 파악하려는 취지다. 응시자가 특정 답을 어떤 근거로 선택했는지가 핵심”이라며 “피해호소인이라고 쓰는 것이 문제가 있다면 여러 근거를 들어 이를 논증하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기자 능력 핵심은 공정성과 객관성이다. 예단하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를 다 듣고서 주장과 비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사내 다수 노조와 소수 노조는 이날 잇따라 공식 비판 입장을 냈다. MBC 내부 제3노조인 MBC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을 내 “많은 응시자들은 ‘논제 자체에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우려가 있다’고 불쾌해 했다. ‘논제가 편향적’이며 ‘사상검증’이라는 지적도 나왔다”며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문제를 냈는지 밝힐 것을 박성제 MBC 사장에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언론노조 MBC본부도 “이미 회사 내부에서도 용어 사용에 입장을 정리한 상황에서 논란 여지가 있는 것처럼 출제한 것은 부적절하고, 피해자 입장이나 사안 심각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 유감”이라며 “회사의 진지한 성찰과 후속 입장이 필요하다. 공식 기구를 통해 문제를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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