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검토 중인 도서정가제 개정안에 출판계에서 반발이 나오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3일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동대책위) 소속 단체들을 만나 도서전이나 장기 재고도서를 도서정가제에서 제외하고 전자책은 종이책보다 할인 폭을 넓히는 등의 내용을 담은 도서정가제 개선안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지난 8일 이런 사실을 알리며 “정부 개선안이 도서정가제 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하고 출판 생태계 파탄을 야기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도서정가제는 출판사에서 내놓은 정가대로 책을 팔도록 한 제도로 지난 2003년 법제화했고 지난 2014년 정가의 15% 안에서 할인하도록 개정했다. 지난해 11월 ‘완전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생태계 모임’(완반모)이란 단체에서 도서정가제 폐지를 주장했고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지역서점 수 감소, 독서인구 감소, 책값 상승 등 시장논리를 내세워 20만명 서명을 채웠다.

정부안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인 형태다. 문체부 안을 보면 정가의 15%를 할인(10% 가격할인, 5% 경제상 이익)할 수 있도록 한 종이책과 달리 전자책 할인 폭을 20~30%로 확대하고, 웹소설과 웹툰 등 웹기반 연속콘텐츠를 도서정가제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3년마다 개정이 필요한 도서정가제는 오는 11월 일몰을 앞두고 있다. 

▲ 서울의 한 책방 모습. 기사와 무관합니다. 사진=정용택 영화감독 제공
▲ 서울의 한 책방 모습. 기사와 무관합니다. 사진=정용택 영화감독 제공

대형 사업자 영향력 확대

한국출판인회의는 “대형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해 창의적 중소 전자책 업체를 고사시킬 것”이라며 “도서정가제는 작은 서점이 가격 경쟁에서 밀려 문을 닫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이자 저작권 안정성을 유지하는 문화생태계 보호의 시발점”이라고 주장했다. 

‘도서정가제 때문에 웹소설·웹툰의 무료보기 기능이 사라진다’는 정보가 퍼지면서 도서정가제 비판 여론이 힘을 받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도서정가제는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을 받은 전자출판물에만 적용해 ISBN을 받으면 종이책과 같은 혜택과 부담이 있다. 웹소설·웹툰에 ISBN을 받아 출간하면 부가가치세 10% 면세 혜택을 받는 대신 도서정가제 규제를 받는 것이다. 

이런 부담과 혜택에서 벗어나려면 ISBN을 받지 않으면 되고, ISBN을 받지 않으면 판매를 목적으로 한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대여’로 판단) 웹소설·웹툰 무료보기 기능도 사라지지 않는다. 중소출판계에서는 대형 사업자들이 무료보기 혜택은 누리면서 도서정가제 의무를 지지 않으려는 속셈 아니냐고 비판한다. 

중소 플랫폼 사업자들은 무료보기라는 마케팅을 활용하기 쉽지 않고, 중소 동네책방들은 책값 할인폭을 늘리는 마케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 정부안대로 도서정가제를 개정할 경우 콘텐츠에 대해 제대로 된 가격을 받지 못하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독서출판 시장이 대형 사업자 과점으로 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 책. 사진=Pixabay
▲ 책. 사진=Pixabay

콘텐츠 다양성 악화 우려

부산지역 26개 지역 서점이 참여하는 ‘도서정가제 개악을 반대하는 2020 부산 동네서점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0일 성명에서 “도서정가제는 창작자와 독자, 출판계와 서점계, 도서관과 교육계를 잇는 책 문화생태계가 그나마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방파제 역할을 해왔다”며 정부의 도서정가제 개정안이 오히려 지역서점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2014년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후 2015년 100여곳에 불과하던 독립서점이 올해 650곳으로 늘었다. 1인 출판사, 독립서점 등에서는 대형 서점에서 다루지 않는 다양한 콘텐츠를 출판사나 서점주인 취향과 전문성에 따라 독자에게 제공한다. 또한 작가와의 대화, 독서소모임 등을 토대로 독서 질도 높일 수 있어 콘텐츠 다양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출판사·서점 등 30개 이상 단체가 속한 공동대책위는 지난 11일 “도서정가제가 이미 출판·문화계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문체부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및 연구 용역 그리고 여러 산업 지표를 통해 분명히 확인된 바 있으며 실질적으로 도서정가제 적용을 받는 산업 쪽 작가, 출판사, 서점 등 모든 구성원이 도서정가제를 찬성하고 있음이 이를 뒷받침한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지난 1일 한국출판인회의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출판사와 서점의 80% 이상이 도서정가제가 도움이 되고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더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의심받는 문체부 대화 진정성

정부 태도도 논란이다. 정부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지난해 7월부터 16차례나 협의를 진행해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다. 지난 7월 중순 공개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문체부는 7월 말 “사회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개선안”을 거론하며 잠정합의안과 거리를 뒀고 이에 출판계에선 ‘정부가 합의 내용을 뒤집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동네책방 생존권이 걸려있는 문제로 논란은 쉽게 잦아들지 않을 분위기다.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책방넷)에서는 지난 7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도서정가제 개악 반대’와 ‘합의안 준수’를 요구하며 1인시위를 진행하기로 했다. 

동네책방도 코로나 경기침체로 타격을 받는 소상공인이지만 관련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책방넷은 “그동안 문체부는 코로나19 대책 마련과 지원 방안 논의라는 이름으로 5차례에 걸쳐 책방넷이 참석한 간담회를 개최했지만 문체부는 동네책방 피해 지원과 정책마련에 아무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며 “심지어 추경에서도 동네책방을 위한 정책과 예산은 없다”고 비판했다. 전반적으로 문체부가 동네책방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볼만한 대목이다.

▲ 서점. 사진=pixabay
▲ 서점. 사진=pixabay

책값, 독서인구 감소 근본 원인인가

도서정가제 개정 논의를 촉발한 완반모의 청와대 국민청원 내용을 보면 독서인구 감소, 출판시장 쇠락의 원인으로 높은 책값을 들고 있다. 책값이 싸면 더 많은 책이 팔릴 것이란 논리다. 원론적으로 타당해보이는 시장 논리지만 현실과 괴리가 있는 진단에 가깝다. 

지난 2018년 책의 해 연구보고서 ‘읽는 사람, 읽지 않는 사람’을 보면 독서의 가장 큰 장애 요인은 ‘시간이 없어서’(19.4%)로 나타난 반면 ‘책을 사는 비용이 부담스러워서’는 1.4%에 불과했다. 출판계 특히 중소서점들 사이에선 시장 논리를 내세운 현재의 도서정가제 개정 움직임에 동의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책을 대체할 콘텐츠가 많고, 원래 책을 읽지 않는 이들이 많은 가운데 책 할인 폭을 늘린다고 근본적으로 독서시장을 활성화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문화콘텐츠인 만큼 지나친 시장 논리가 아닌 정부의 보호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는 국제사회 추세이기도 하다. 은종복 제주풀무질 대표의 지난달 말 오마이뉴스 기고를 보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6개 나라 중 도서정가제를 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 중국 포함 5곳에 불과하지만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와 북유럽 대부분 국가는 완전 도서정가제를 하고 있다. 

또한 도서정가제를 하지 않는 미국, 영국, 호주 등 영어권 나라들도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미국은 동네책방을 보호하려고 40% 넘게 책 이익금을 주고, 도서관 책 분실률을 30% 이상으로 판단, 도서관에서 동네책방 책을 많이 구입하고 있다. 한국의 동네책방 지원 체계를 더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직 정치권에서는 별 반응이 없다. 

다만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양 동안을·외교통일위원회)은 지난 9일 안양서점연합회를 만나 도서정가제 관련 입장을 들었다. 이 의원은 “중요한 건 도서정가제 취지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며 “정부가 어렵게 합의한 민간협의체 논의를 바탕으로 출판계와 독자들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상생’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도서정가제 관련 상임위인 문화체육관광위의 적극적 논의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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