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산업계에서 ‘넷플릭스’는 치트키처럼 쓰인다. 넷플릭스 ‘대응’을 강조하며 정책을 마련하거나 요구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넷플릭스’발 OTT 경쟁을 통한 미디어 환경 변화가 일어난 건 사실이지만 넷플릭스를 전면에 내세우며 특정 업계의 ‘숙원 사업’을 관철하려는 모습도 포착된다.

유료방송 독과점 만들어 넷플릭스 대항?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31일 방송법·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IPTV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오는 10월 12일까지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개정안은 케이블, IPTV, 위성방송 등 유료방송사업자의 시장점유율 33% 제한 조항을 없애는 게 골자다.  이미 통신사 주도의 인수합병이 일어난 상황에서 몇몇 통신사가 독과점 사업자가 돼도 이를 막을 수 없게 된다.

이번 입법예고는 지난 6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의 후속조치다. 발전방안은 “넷플릭스, 유튜브 등 기존의 지상파, 케이블과는 다른 인터넷 기반의 동영상 서비스(OTT) 이용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며 “세계의 주요 미디어 기업은 이전부터 전략적 M&A와 콘텐츠 투자 확대를 통해 빠른 속도로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며 규제완화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유료방송 인수합병을 가능케 해 넷플릭스에 대항해야 한다는 인식은 미디어 진흥기구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뿐 아니라 규제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에서도 갖고 있다. 지난해 1월 이효성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넷플릭스 등 세계적인 미디어 기업들이 국내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미디어 업체들도 상호 인수합병을 통해 대응력을 키워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 넷플릭스 등 해외 사업자의 영향력을 강조하며 국내 유료방송 등 규제를 철폐해 '대응'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 넷플릭스 등 해외 사업자의 영향력을 강조하며 국내 유료방송 등 규제를 철폐해 '대응'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미디어 국경이 붕괴되면서 국내 산업의 경쟁력 강화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정부가 산업 활성화를 명분으로 유료방송 내 주류인 통신사 입맛에 맞는 규제완화에 무비판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한국방송협회는 9일 성명을 내고 유료방송 점유율 규제 폐지로 인한 미디어 독과점의 폐해 등 우려를 지적했다. 그러면서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와 경쟁하기 위한 규제 완화로 정당화하기도 하지만 IPTV 사업자의 3분의 2가 넷플릭스와 업무 제휴를 하고 국내 진출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통신사와 넷플릭스가 제휴 관계인데 ‘대항마’로 키운다는 발상이 모순된다는 지적이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최근 2~3년 사이에 OTT로 인한 시장 변화가 있었다”면서도 “규제가 사라지면 독과점 사업자가 나타나게 된다. 어떻게 공적 책무를 부여하고 규율할지 전체적이고 종합적 맥락 속에서 검토 돼야 하는데 단순히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시장 성장에 따른 규제완화라는 측면에서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는 “OTT 시장을 유료방송에 통합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본다. 칸막이를 없앨 필요는 있지만 실제 소비자에게 어떤 효과가 나타나고, 불이익이 있을지를 신중하게 따져야 한다”고 했다.

▲ 넷플릭스와 KT 제휴 당시 KT가 배포한 홍보 이미지. 사진=KT 제공.
▲ 넷플릭스와 KT 제휴 당시 KT가 배포한 홍보 이미지. 사진=KT 제공.

웨이브 만들고 중간광고하면 넷플릭스 대항?

지상파 방송사 역시 ‘넷플릭스’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OTT서비스 ‘푹’이 SK텔레콤 ‘옥수수’와 합작 서비스 웨이브를 만들 때 지상파가 강조한 프레임도 ‘넷플릭스 대항마’였다. 지난해 1월 SBS 8뉴스의 “실시간 방송과 드라마 등 지상파의 콘텐츠가 결합해 넷플릭스 등 외국 미디어에 맞설 토종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탄생하게 된다” 보도가 대표적이다.

웨이브는 넷플릭스와 직접적인 경쟁자이지만 지상파 역시 일부 콘텐츠를 넷플릭스를 통해 공급하는 상황이라 ‘파트너’이기도 하다. 그동안 통신사 주도의 미디어 사업을 ‘재벌 미디어’의 폐해 측면에서 경계해온 지상파 방송사들이 통신사와 손을 잡으면서 ‘넷플릭스 대항마’ 프레임을 통해 긍정적인 면만 부각하는 대목은 부자연스럽다.

▲ 1월3일 지상파3사와 SKT 동영상 플랫폼 공동사업 양해각서 체결식.
▲ 1월3일 지상파3사와 SKT 동영상 플랫폼 공동사업 양해각서 체결식.

지난 8월 26일 한국미디어경영학회가 SBS문화재단 후원으로 개최한 ‘시청각미디어 시대의 민영방송 규제 합리화 방안’ 토론회에서도 넷플릭스가 언급됐다.

이날 다수 패널들은 넷플릭스 등 OTT와 경쟁하기 위해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 등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재원을 늘려 OTT에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다.

반면 이 자리에서 송인덕 중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용 시간을 볼 때 코드커팅(전선을 자른다는 의미로, TV 시청을 끊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 일어났다기보다 (TV와 OTT 전반의) 콘텐츠 이용시간의 파이가 늘어났다”며 넷플릭스와 민영방송의 경쟁구도를 전제한 규제완화 논리의 한계를 지적했다.

▲ 2016년 3월14일 SBS8뉴스의 방송화면(위)과 3월28일 SBS8뉴스 방송화면(아래).
▲ 2016년 3월14일 SBS8뉴스의 방송화면(위)과 3월28일 SBS8뉴스 방송화면(아래).

‘넷플릭스 법’에 네이버 카카오 반발 이유는?

통신사들은 인터넷에서 포털, OTT 등 콘텐츠를 제공하는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CP)들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통신사가 제공하는 ‘망’의 대가가 비싸다고 생각하는 인터넷 사업자들과 트래픽 폭증에 따른 비용 인상을 요구하는 통신사 간 대립이다. 특히 해외 사업자가 국내에 서버를 두면서도 비용 협상이 원활하지 않자 통신사는 반발해왔다.

이 가운데 지난 5월 ‘넷플릭스 무임승차 방지법’(넷플릭스법)이 탄생했다. 넷플릭스 등 해외 사업자가 국내 시장에서 막대한 매출을 올리면서도 서비스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소홀하다며 만든 법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9일 시행령을 입법예고한 내용에 따르면 접속 장애 등 ‘서비스 안정’ 책임을 다하지 않은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는 시정명령과 과태료를 부과 받는다.

그러나 ‘넷플릭스법’에 국내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넷플릭스법이 ‘넷플릭스 견제’가 목적이 아니라 통신사와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의 갈등 속에서 통신사의 이해관계가 반영됐다고 본다.

▲ 통신사와 인터넷서비스사업자는 사업자가 통신망을 이용하는 대가인 망 사용료를 두고 갈등을 이어오고 있다. ⓒwikipedia
▲ 통신사와 인터넷서비스사업자는 사업자가 통신망을 이용하는 대가인 망 사용료를 두고 갈등을 이어오고 있다. ⓒwikipedia

특히 규제 대상에 국내 대형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이 포함되자 네이버 카카오 등이 소속된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망 비용 및 관리 문제를 ‘망사업자’(통신사)가 아닌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이 책임을 지는 게 부당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에 ‘서비스 안정’ 의무를 부과하면 망 대가 산정 및 서버 구축 과정에서 통신사가 요구하는대로 끌려다닐 수 있다는 우려다. 반면 과기정통부는 과도한 의무를 부과하는 게 아니며 망 대가 산정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반박해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망을 제공하는 통신사와 콘텐츠를 제공하는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 중 누가 품질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까.

국회와 정부는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의 책임을 강조하며 법을 만들었지만 사법부의 판단은 달랐다. 페이스북이 방통위로부터 받은 제재를 취소하기 위해 제기한 행정소송 판결에서 재판부는 1, 2심 모두 “인터넷 접속 서비스의 품질은 기본적으로 통신사들이 관리·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지 페이스북과 같은 콘텐츠 사업자들의 영역이 아니다”라며 통신사 책임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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