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페이스북에 내린 시정명령이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행정10부(부장판사 이원형)는 11일 오후 2시 페이스북이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처분 취소 소송에서 페이스북 승소 판결을 내렸다. 방통위는 1심에 이어 항소심도 패소했다. 재판부는 “원고의 접속경로 변경은 이용을 제한하는 행위에 해당하지만 이용자의 현저한 이익을 해하는 방식으로 행하지 않았다”며 “(방통위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발단은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 논란이다. 2017년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이용자들의 페이스북 접속이 원활하지 않아 이용자 불만이 속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원인은 페이스북이 한국 이용자들의 접속 경로를 바꿨기 때문이다. 국내에 이용자가 몰리는 해외 서비스는 한국 통신사들과 협의를 통해 국내에 데이터 임시 저장소와 같은 ‘캐시서버’를 두고 원활한 접속이 가능하게 운영해왔다. 

▲ 페이스북 본사. 사진=페이스북 뉴스룸.
▲ 페이스북 본사. 사진=페이스북 뉴스룸.

페이스북은 KT와 계약을 통해 KT에 캐시서버를 만들어 썼고, 다른 통신사 이용자들도 KT망을 통해 접속할 수 있게 했다. 당시 페이스북은 다른 통신사와 서버 증설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 이용자 접속경로를 홍콩 서버로 바꾸면서 속도가 느려졌다.

그러자 방통위는 페이스북이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기 위해 고의로 이용자 피해를 야기했다며 2018년 3월 페이스북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3억9600만원을 부과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페이스북에 대한 제재는 ‘무효’가 됐다.

다만 1심 판결과 2심 판결에는 차이가 있다. 1심 재판부는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이 이용 제한이 아니라고 봤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이용 제한이 맞지만 이용자의 이익을 현저히 침해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당시 페이스북을 통한 영상 시청이 원활하지 않았지만 일반적인 메시지 전송 정도는 가능했기에 ‘현저한 침해’는 아니라는 것이다.

▲ 방송통신위원회가 위치한 과천정부청사. 사진=이치열 기자.
▲ 방송통신위원회가 위치한 과천정부청사. 사진=이치열 기자.

페이스북은 ‘환영’ 입장을 냈다. 페이스북코리아는 “서울고등법원의 결정을 환영한다. 페이스북은 한국 이용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1심 판결 당시 페이스북코리아 관계자는 “우리가 이용자들에게 의도적으로 피해를 야기했다는 제재 사유가 억울했다. 우리가 식당인데 식당 앞 사람이 많아져서 도로 교통에 문제가 생겼다고 일부러 음식을 맛없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비유하며 억울함을 주장했다. 

이번 판결에 방통위 관계자는 “패소해서 아쉽다. 판결문을 받고 나서 상고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방통위는 “1심은 페이스북의 임의 접속경로 변경이 이용지연이나 불편은 있었으나 이용제한은 아니라고 봤으나 2심 재판부는 페이스북의 행위가 ‘이용 제한’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것에 대해서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현저성에 대해서는 그 당시 피해를 입은 이용자의 입장에서 재판부가 판단하지 않은 점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번 논란의 배경에는 통신사와 해외 인터넷서비스 사업자 사이의 ‘망 사용료 산정’에 대한 갈등이 있다. 통신사는 트래픽을 과도하게 발생시키는 해외 사업자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해외 사업자들은 캐시서버 구축은 국내 통신사의 필요에 의해 이뤄졌고 통신사의 망 사용료 요구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