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교란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공소장엔 언론과 삼성그룹 사이 물밑 유착 관계도 적혔다. 삼성 측이 인맥, 광고비 등을 활용해 보도를 부탁하면 언론인들은 삼성 입장을 받아 썼다. 검찰은 이 부회장 승계작업의 핵심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직전 집행된 광고비만 36억원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 합병 승인을 앞둔 이 부회장이 여론과 투자자 의사결정을 왜곡하기 위해 그해 6~7월 우호적 언론을 동원했다고 공소장에 썼다. 그룹 대관 담당자를 통해 언론인들을 접촉하거나 경제계 저명인사들을 이용해 의도적으로 인터뷰 기사를 내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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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 합병 승인을 앞둔 이 부회장이 여론과 투자자 의사결정을 왜곡하기 위해 그해 6~7월 우호적 언론을 동원했다고 공소장에 썼다.

 

핵심 인물은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이다. 검찰은 장 전 차장이 “2015년 6월경부터 미래전략실 및 물산 홍보팀을 지휘해 평소 선물, 접대, 인맥 등을 통해 교분을 형성한 언론사 임직원과 기자에게 과거 엘리엇 투자 사례에 관한 보도 참고자료 등을 제공하며 기사 작성을 수시로 요구했다”고 밝혔다. 

삼성물산 주총(7월 17일) 4일 전인 2015년 7월13일부터 16일까지 집행된 언론 광고비만 약 36억원에 달했다. 검찰은 삼성물산의 최치훈 전 사장, 김신 전 사장, 이영호 당시 최고재무책임자가 “4일간 약 36억 원 상당의 의결권 위임 관련 광고를 발주했다”고 적었다. 

당시 이 부회장에 우호적 여론이 필요했던 이유는 합병 무산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합병 비율(회사 가치 산정)에 대한 비판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삼성물산이 총자산, 매출액, 영업이익 모두 제일모직의 3~5배에 달했음에도, 회사 가치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1대 0.35’로 정반대로 산정됐다. 같은 시기인 2015년 6월24일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가 SK와 SK C&C간 합병에 반대 결정을 내려 위기감이 고조된 터였다. 

특히 삼성물산 주식 4.9%가량을 보유한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저먼트는 이 합병이 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다며 반대했다. 삼성물산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11.21%)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다. 그런데 삼성물산 주총 2주 전인 7월3일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가 국민연금에 합병 반대를 권고했다. 

검찰은 이에 삼성 측이 “합병 관련 허위 또는 왜곡된 정보의 유포 효과를 배가시키기 위해 엘리엇을 ‘해외 투기자본’, ‘기업사냥꾼’, ‘먹튀’, ‘벌처펀드’ 등 시세차익만을 노리는 투기 세력으로 규정해 엘리엇에 대한 반감을 적극 유발하고 합병 구도를 삼성과 엘리엇의 선악 대결 또는 경영권 분쟁인 것처럼 왜곡해 합병의 문제점을 은폐하기 위해” 언론 대응 계획을 수립했다고 적었다. 

▲ⓒpixabay.
▲ⓒpixabay.

 

공소장에 인용된 ‘우호적 보도’는 대부분 동아일보, 조선비즈, 매일경제 등 보수언론 기사다. “투기자본의 기업경영 교란 막아야”(7월13일 동아일보), “헤지펀드 ‘먹잇감’된 한국기업 ‘일단 공격당하면 경영 올스톱’”(7월9일 조선비즈), “대기업 특혜 논란에… 포이즌필-차등 의결권 번번이 무산”(7월9일 동아), “‘헤지펀드 방어책 미흡’ 80%, 가장 시급한건 차등의결권”(7월13일 동아), “삼성물산 소액주주들 ‘엘리엇 먹튀 우려’ 위임장 전달 늘어”(7월13일 동아), “국민연금 의결권, 외부에 맡기지 말고 스스로 결정해야”(7월9일 동아), “국가 경제냐, 株主 이익이냐… 국민연금의 선택은”(7월9일 조선비즈), “국민연금, 삼성물산 합병 백기사로 나서라”(7월9일 중앙일보), “‘엘리엇은 투기성 먹튀 펀드’ 75%, ‘국민연금이 백기사해야’ 54%”(7월9일 조선비즈), “국민연금의 선택을 주목한다”(7월9일 동아), “국민연금 삼성물산 합병 찬성, 당연한 선택이다”(7월13일 매일경제 사설) 등이다. 

검찰은 비판 보도를 쓴 언론사에 광고비를 줄인다는 압박 행위도 있었다고 적었다. 메트로신문 2015년 6월8일자 “최지성, 제 꾀에 제 발목” 제목의 보도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이 삼성총수 일가가 최대주주인 제일모직에 최대한 유리하고 삼성물산에 지나치게 불리한 합병을 추진해 엘리엇을 포함한 해외 투자자들에게 공격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이 담겼다. 

이에 장충기 전 차장과 미전실 홍보팀이 “메트로신문 대표에게 소속 편집국장을 해고하지 않으면 광고 및 협찬을 줄이거나 지원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압박해 이 기사가 보도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장 전 차장과 미전실 홍보팀이 합병 관련 지면 기사를 매일 취합해 점검하면서 합병 성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기사의 경우 해당 언론사에 연락해 본판에서 제목과 내용을 삭제하거나 수정한 다음 보도하게 했다고도 밝혔다. 

▲2015년 6월23일 “헤지펀드, 대기업 순환출자 해소때 경영권 빈틈 노려” 동아일보 기사.
▲2015년 6월23일 “헤지펀드, 대기업 순환출자 해소때 경영권 빈틈 노려” 동아일보 기사.

 

동아일보 전 공정거래위원장 인터뷰 뒤 '삼성 미전실-위원장 교감'

검찰은 2015년 6월23일 동아일보가 보도한 “헤지펀드, 대기업 순환출자 해소때 경영권 빈틈 노려” 기사를 삼성 발주 기사라고 봤다.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 등은 이보다 6일 전(6월17일)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에게 엘리엇을 ‘경영권 위협 투기 세력’으로 상정한 비판글을 써주고 대신 기고를 부탁했다. 노 전 위원장은 같은 논지대로 6월21일 동아일보와 인터뷰했다.

황영기 전 한국금융투자협회장은 ‘삼성의 입’ 역할을 했다. 연합뉴스는 6월14일 황 전 협회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황영기 ‘삼성물산 합병 무산시 세계 벌처펀드 공격 유발’” 제목 기사로 보도했고, 다수 언론이 이 기사를 인용했다. 황 전 협회장은 7월8일엔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자본시장 신뢰 제고를 위한 금융투자업계 자율결의 대회’에 참석해 “물산 주가가 낮은 것을 방치했다는 섭섭함 때문에 합병을 무산시키는 것은 옳지 않아 보인다”고 발언했고, 다수 언론이 발언을 인용 보도했다.

검찰은 이에 “장충기 전 차장이 삼성 출신으로 황 전 협회장으로 하여금 엘리엇에 대해 국익을 해치는 헤지펀드로 비난하고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을 적극 옹호하는 취지로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도록 요청했다”고 공소장에 적었다.

검찰은 삼성과 언론 관계와 관련해 “매출액 일부를 대기업 광고수입에 의존하는 신문 산업의 재무구조, 그 광고 수입에 삼성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다른 기업들이 광고비를 책정할 때 삼성그룹 광고비를 기준 삼는 현실, 기사 내용이 삼성에 우호적인지 아닌지에 따라 광고비 책정 여부 및 규모를 달리하며 신문사 소속 임직원의 인사도 좌우할 수 있는 삼성그룹의 영향력 등이 있다”고 언급했다.

언론을 통한 여론 왜곡 계획을 수립하고 모의한 이들로 검찰은 이 부회장,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이 아무개 전 미전실 전무를 지목했다. 삼성물산의 최치훈 전 사장, 김 전 사장, 이영호 전 재무책임자도 포함됐다. 이들은 지난 1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내달 22일 첫 공판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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