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본부는 지난달 31일 ‘불명확한 감염경로’를 일컫는 ‘깜깜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기로 했다. 시각장애인들의 개선 요청을 받아들인 결과다. 당연한 조치로 보이지만 그동안 언론이 무의식적으로 정부의 발표를 받아쓰거나 언론 스스로 차별적 용어의 개념을 확산시킨 건 아닌지 성찰할 대목이다. 미디어오늘 역시 과거 ‘깜깜이’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언론의 용어 선택은 사안의 본질을 꿰뚫기도 하지만 왜곡할 수 있는 위험이 높아 신중해야 한다. 특히 한국 사회 인권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로 작용하기 때문에 언론의 책임이 엄중하다. 2015년 세계보건기구는 지리적 위치, 사람이름, 동물 등이 포함된 병명을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했지만 여전히 코로나19를 중국 우한 폐렴이라고 고집하는 언론이 있다. 해당 언론은 정부가 ‘우한 폐렴’이라는 말을 쓰지 않은 것은 중국 눈치를 보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심하다.

故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고발 사건에서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부르자는 주장도 나왔다. 피해자는 고소 단계의 법률 용어일 뿐인데도 굳이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부르는 것은 정치적 의도를 의심해봐야 하는데 언론 보도를 보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젠 대부분 전두환‘씨’라는 용어를 쓰고 있긴 하지만 전직 대통령 예우 차원이라며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5·18 진상을 가리고 희생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은폐하는 효과가 있다.

앞서 ‘깜깜이’와 같은 용어를 포함해 무의식적으로 쓰는 차별적 용어에 대해서도 언론인들이 자정 능력을 발휘해 적극 바로잡아야 한다. 지난 7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절름발이’라는 표현을 쓴 의원에 대해 장애를 비하하는 발언을 사용했다고 지적했을 때 ‘절름발이’라는 용어를 언론 역시 무의식적으로 쓰고 있는 건 아니었는지 점검할 계기로 삼는 게 중요하다. 장애에 차별과 편견이 있는 용어를 비유적으로 쓰는 것을 중단하자고 언론 유관기관이 특별한 ‘권고’를 내리고, 장애 비하 고정관념 용어 금지 매뉴얼을 단일하게 정리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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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눈먼 장님’이나 ‘꿀먹은 벙어리’와 같은 표현을 쓰거나 이 같은 표현을 쓴 정치인의 발언을 인용하는 뉴스는 지금도 많다. 핵심을 보여주는 단어라 하더라도 비하의 개념이 들어간 용어는 인용하지 말아야 한다. 언론매체가 받는 기고 글에 장애 비하 용어가 쓰인 것도 적극 잡아내 이 같은 용어가 주는 폐해를 필자에게도 주지시킬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 언론이 심판자 역할을 분명히 할 때 장애 비하 표현의 공범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있다. 

언론의 용어 선택과 더불어 최근 국제뉴스에 선정적인 요소가 극대화되는 모습도 우려된다. 영국 BBC 보도를 인용해 여성 두 명을 폭행하고 살해한 뒤 시체를 냉장고에 유기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한 남성의 뉴스가 지난 4일 포털에 도배됐다.(관련기사 : 영국 남성 두 여성 살해 후 수년간 냉장고 보관) 문제는 희생을 당한 두 여성의 사진을 굳이 쓸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머나먼 나라의 일이라고 희생자의 사진을 쓰는 선정성이 끼어들지 않았는지, 범죄 보도에 있어 원칙을 저버리지 않았는지 등을 고심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달 30일 폭스뉴스와 뉴욕포스트 등을 인용해 뉴욕 맨해튼 지하철 역에서 성폭행을 시도했던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는 국제뉴스도 도를 넘었다. 관련 뉴스에서 한 언론은 ‘뉴욕 포스트 캡처’라며 해당 남성이 성폭행을 시도하는 동영상을 내걸었다.(관련기사 : 대낮 뉴욕 지하철서 성폭행 시도 남성, 안면인식기술로 잡았다) 선정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뉴스다. 서울의 한 지하철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면 성폭행 장면의 영상을 버젓이 내걸 수 있을지 상상키 어렵다.

언론은 공익적 보도에 대한 책무를 이행했을 때 빛을 발한다. 결국 언론의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얘기다. 최소한 부끄러운 뉴스는 내보내지 말아야 한다. 우리 언론인 스스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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