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훈씨(34)는 “대궐 앞 북 치는 농부 심정으로 법원을 두드린다”고 말했다. 법원이 정의를 찾아 줄 마지막 보루라는 심정이다. 권씨는 이른바 ‘권대희 사건’의 유족이다. 고 권대희씨는 2016년 9월 서울 강남 ‘ㅈ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수술을 받다 과다출혈로 사망한 의료사고 피해자다. 형인 권씨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진상규명과 합당한 처벌만 생각하고 싸웠다.

법원을 찾는 이유는 재정신청 때문이다. 재정신청은 쉽게 말해 검찰이 내린 무혐의 처분이 옳은지 법원에 다시 묻는 제도다. 유족 눈에 검찰 판단은 편향됐다. 검찰은 해당 의사들에게 업무상 과실치사만 적용했고 ‘의료법 위반’ 혐의는 없다고 봤다. 유족은 의사들이 ‘공장식 수술’로 환자를 방치하고 권한 없는 간호조무사에게 의료 행위를 시켰다며 “눈에 보이는 죄를 봐줬다”고 주장한다. 증거 불충분으로 외관을 그럴 듯하게 꾸몄지만 실상 소극적으로 수사하고 법을 적용한 직무유기라는 주장이다.

유족에게 본질은 의료법 위반이다. 사망할 이유가 없었던 대희씨가 숨진 구조적 원인을 ‘공장식 수술’이라고 본다. 2016년 9월8일 수술 당일 집도의 A씨와 마취전문의 B씨는 동시에 환자 3명을 수술했다. ‘뼈만 깎고’ 자리를 뜬 A의사는 수술 4시간 중 1시간만 수술실에 있었다. 나머지 세척, 봉합, 지혈은 의학전문대학원을 갓 졸업한 ‘유령 의사’와 간호조무사들이 했다. 지난 2일 서울 종로 인근에서 권씨를 만나 사건 이야기를 들었다.

▲고 권대희씨 생전 모습.
▲고 권대희씨 생전 모습.
▲수술실 CCTV 영상 중 의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간호조무사가 지혈을 하는 모습. 2018년 10월 JTBC 관련 보도 갈무리.
▲수술실 CCTV 영상 중 의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간호조무사가 지혈을 하는 모습. 2018년 10월 JTBC 관련 보도 갈무리.

의사윤리 없는 ‘공장식 수술’ 허망한 죽음 낳아

안면윤곽수술은 통상 2시간 가량 걸리는 수술로 알려졌다. 집도의와 마취의가 2시간 동안 환자 옆에서 수술 시작과 끝을 지켜야 직무 윤리에 맞는다. 그러나 CCTV를 통해 본 대희씨 수술실에 그런 의사는 없다. B의사는 약 30분 대희씨를 전신 마취한 후 옆 수술실로 갔다. A의사도 1시간 가량 턱뼈 절삭 수술 후 옆 수술실로 옮겼다. 이들은 두 번째, 세 번째 환자에게도 똑같이 했다.

모든 수술엔 위험이 잠재해 있다. 이 사건도 숙련 의사가 수술을 했을지라도 주요 혈관이 손상된 경우는 지혈이 어려울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집도의, 마취의가 환자 상태를 지속 확인해야 한다. 대희씨처럼 출혈이 과다하면 원인을 찾아내 제대로 지혈해야 한다. 상태가 심각할 경우 수혈을 하거나 상급병원에 전원시키는 판단도 해야 한다. 

그러나 남은 1시간은 대희씨조차 존재를 몰랐던 C의사가 맡았다. 의전원을 막 졸업한 경력 6개월 차 일반의 C의사가 세척, 봉합 등 수술 ‘뒤처리’를 맡았다. 또 뒤처리엔 1시간도 아니고 2시간 넘게 걸렸는데 C의사는 ‘출혈이 잦아 시야 확보가 어려워 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했다. 대희씨가 이날 흘린 피의 양은 3500cc 정도다. 몸무게 70kg인 성인 남성 기준, 전체 혈액량의 70% 가량이다. 수술은 오후 4시30분께 끝났지만 세 의사는 밤 10시30분 대희씨 상태가 급격히 악화될 때까지 과다 출혈을 인지하지 못했다.

대희씨는 수술이 이렇게 진행될 거라는 설명은 듣지 못했다. 대희씨는 ‘집도의가 수술을 끝까지 책임진다’거나 ‘14년 무사고’ 등의 광고 문구를 보고 이 성형외과를 찾았다. 환자 3명 수술이 동시에 진행된다거나 미숙련 의사가 수술 뒤처리를 하고 간호조무사만 있는 수술실에 한동안 혼자 남겨진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수술에 동의할 리 없었다.

유족은 ‘무면허 의료 행위’에 분노한다. 의사 없이 30분 넘게 간호조무사들만 대희씨 수술실에 있었을 때다. 이들은 출혈이 멈추지 않는 대희씨 수술 부위를 지혈했다. 출혈량이 많은 데다 수술 시간도 길어져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원칙적으로 수술 중 지혈은 일반 지혈 행위와 다른 ‘의료 행위’에 포함된다. 의사의 감독·지배 하에 이뤄졌어야 할 지혈을 간호조무사들이 한 것.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의료법 27조 위반이 거론된다.

▲지난 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한 권태훈씨. 사진=손가영 기자
▲지난 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한 권태훈씨. 사진=손가영 기자

경찰 ‘의료법 위반’ vs 검찰 ‘증거 불충분’

유족이 공장식 수술에 따른 ‘의료법 위반’을 주장하는 이유다. 동시다발 수술에선 의사의 지배·감독 사각지대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집도의 수술 시간을 줄이고 횟수를 늘리니 의사 인력이 필요해지고 ㅈ성형외과는 미숙련 의사를 보조의로 썼다. 의사들이 동시 수술로 자리를 비운 시간 동안 간호조무사들이 수술 중 지혈을 계속했다.

권씨는 “조사권이 없는 유족은 수사기관 규명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수사기관엔 명명백백한 진상규명과 합당한 처벌 밖에 바라는 게 없었다”며 “그러나 검찰은 공장식 수술, 이에 따른 모든 비원칙적 의료 행위들에 면죄부를 줬다. 믿었던 검찰이 죄를 덮어줬다는 판단을 하는 순간 가족들이 투사가 됐다”고 밝혔다.

시간은 2019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검찰 수사가 마무리된 시점이다. 경찰, 검찰 수사 모두 더뎠다. 유족은 2016년 11월 수술 참여 의사와 간호조무사 6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와 의료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경찰은 이를 1년10개월 후인 2018년 10월 검찰에 송치했다. 

“어머니, 죄송하지만 무면허 의료 행위는 기소 의견으로 송치 못하게 됐습니다.” 유족은 이 말을 듣고 하늘이 노래졌다. 사건을 검찰에 넘기기 직전 담당 경찰관이 권씨 어머니에게 한 말이다. 경찰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등의 감정을 받고 보건복지부에도 질의해 ‘무면허 의료 행위’에 대한 기소 심증을 갖고 있었다. 그때 수사 검사는 담당 경찰을 불러 업무상 과실치사만 기소의견으로 올리라고 지휘했다.

“저는 기소로 넘기겠습니다.” 경찰은 결국 검사 지휘를 따르지 않고 의료법 위반까지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송치 직전에 수사검사인 성재호 검사와 병원 측 법률대리인 윤아무개 변호사 이력이 확인됐다. 두 사람은 같은 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해 2003년 같이 졸업했고, 2008년 사법시험에도 나란히 합격해 2011년 사법연수원까지 같이 수료했다.

▲2018년 2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경찰에 회신한 자료 중 일부.
▲2018년 2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경찰에 회신한 자료 중 일부.
▲2018년 10월 유족이 국민신문고를 통해 넣은 질의에 답변한 보건복지부 공문 일부.
▲2018년 10월 유족이 국민신문고를 통해 넣은 질의에 답변한 보건복지부 공문 일부.

검찰 “지혈은 단순 진료 보조, 의사도 지시·감독해”

석연치 않은 정황이 쌓이지만 제대로 해명되지 않으면 의혹이 커진다. 권씨가 그랬다. 검찰은 2019년 11월 의사 3명을 업무상 과실치사로 재판에 넘겼고, 무면허 의료 행위는 불기소 처분했다. 그런데 검찰이 쓴 공소장과 불기소처분서는 유족에게 해명이 되지 않았다.

관점이 달랐다. 권씨에겐 의사들이 동시 수술을 하느라 자리를 비웠고 환자 상태를 판단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이 첫 번째다. 그렇게 되면 환자 수술 행위를 의사가 지배·감독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빈 자리를 간호조무사들이 채웠고, 의학적 판단이 계속 필요했던 과다 출혈 동안에 계속 지혈했다. 경찰은 “원칙적으로 ‘수술 중 지혈’은 의료 행위”라는 감정을 받았다. 유족도 보건복지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등 복수 기관에서 대희씨가 처한 위험 상황엔 해당 간호조무사들의 행위를 무면허 의료 행위로 볼 수 있다는 감정을 받았다.

검사는 “대희씨 수술 중 지혈을 반드시 의사만이 해야 하는 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뼈 출혈이 계속되면 오랜 시간 압박해 지혈하는 게 일반적이고 이 경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전문의 감정에 근거했다. 또 간호조무사들이 C의사에게 지혈에 대해 구체적 지시를 받았고 다른 의사들도 각 환자 상태를 살펴보고 있었던 점에 비춰 “의사의 구체적 지시·감독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불기소처분서엔 대희씨 상황은 누락됐다. 검사는 간호사가 ‘진료 보조’할 땐 의사가 현장에서 일일이 지도·감독할 필요는 없다는 판례를 인용했다. 그런데 이 판례엔 “(진료 보조인지 여부는) 그 보조 행위의 객관적 특성상 위험이 따르거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지, 당시 환자 상태가 어떤지, 간호사 자질과 숙련도는 어느 정도인지 등 사정을 참작해야 한다”고도 적혔다. 대희씨 지혈은 간호조무사가 맡았다.

권씨는 “의사들이 환자 상태를 살펴보고 구체적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는 검사 판단에 “그럼 대체 3500cc 출혈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내가 검사라면 공장식 수술도 문제로 보고, ‘왜 피가 많이 난 거냐’ ‘각 상황에서 어떤 상태라고 판단해 어떤 지시를 내린 건가’라며 끝까지 캐물을 것 같은데, 그럼 답이 계속 나오지 않느냐”고도 했다.

검사는 처분을 내리기 ‘2주 전’ 주치의 등의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도 했다. 검찰이 사건을 수사한 지 1년이 지난 때였다. 영장은 기각됐다. 법조계 일각에선 ‘고소인을 달래주려고 겉으로 수사 의지가 있었다는 걸 보여준 것’이란 평도 나왔다. 권씨에겐 ‘적당히 수사하고 뭉개는 게 이런 거구나’란 생각부터 ‘검사가 객관 증거보다 피의자들 말과 의학계 관행에 손 들어 줬다’는 의구심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해당 성형외과는 사고 후에도 '끝까지 책임지는'이나 '14년 무사고' 등의 문구로 광고를 해 여러 차례 고발당했다.
▲해당 성형외과는 사고 후에도 '끝까지 책임지는'이나 '14년 무사고' 등의 문구로 광고를 해 여러 차례 고발당했다.
▲고 권대희씨 어머니 이나금씨가 ---일부터 50일 넘게 대검찰청, 서울지방검찰청,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고 권대희씨 어머니 이나금씨가 7월16일부터 50일 넘게 대검찰청, 서울지방검찰청,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검사·의사에 직업 윤리 묻는다”

권씨는 “검찰에게 사회적 약자란 누구고, 의사에겐 정의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당장 일반 시민들이 겪는 민생사건에 검찰이 원칙적인 잣대를 들이대야 한단 뜻이다. 권씨 어머니 이나금씨는 54일 째 대검찰청과 서울고등법원에서 1인 시위를 하며 윤석열 검찰총장 면담도 요구하고 있다. 권씨도 “정의의 잣대를 자기 조직 내에서도 실현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당 병원은 이 사건 후에도 ‘14년 무사고’라거나 ‘집도의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허위 광고를 내 여러 차례 고발당했다. 권씨는 “유족에게 사과 한 마디 없었던 C의사에게 가장 분노한다”며 “그런 그가 이번 전공의 진료거부 사태에 정의의 투사처럼 ‘끝까지 싸운다’며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바꾼 것을 보고 정말 화가 났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 집단에 “본인들에게 정의롭지 않은 정책엔 ‘양심’과 ‘정의’를 외치며 분개하면서 그 반대엔 침묵한다. 윤리를 져버린 의사는 징계하고, 똑같이 성명 내고 규탄하고 개선하라”고도 했다.

현재 유족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심정이다. 권씨는 의료법 위반 무혐의 처분이 나온 즉시 서울고등검찰청에 항고했지만 기각됐다. 이에 지난 2월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서를 냈고 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서울고등법원의 재정신청 인용률은 1만9000여건 중 50여건으로 0.25% 정도다.

유족은 재정신청서에서 “영리 목적으로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공장식 수술 시스템은 무면허 의료 행위가 문제의 본질임에도 이사건 불기소처분이유에 따르면 업무상과실 치사상 문제 외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며 “업무상 과실치사상은 의사 면허에 영향이 없고, 유죄로 판단돼도 대부분 집행유예에 그쳐 일부 의료인들은 사고가 나도 손해배상만 해주면 된다는 안이한 인식을 한다. 불기소처분은 이 공장식 수술에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