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4일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안에 반발해 들어간 총파업이 9월4일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의 합의, 그리고 이에 반발하던 전공의들이 9월7일 업무 복귀를 결정함으로써 한 고비를 넘겼다.

이번 파업 사태는 의사들의 이해관계 관철이라는 표면적 요구보다 한국 사회에서 ‘전문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의사, 법률가, 학자 등 전문직은 사람의 생명, 법적 처벌, 정확한 정보와 해설의 전달 등 업무 특성으로 일정 수준 자격을 취득하고 엄격한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이러한 자격과 책임은 전문직이 외부 간섭이 없이 자신의 판단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권리에 따르는 조건이다. 그러나 전문직에 대한 사회적 인정은 늘 안정적이지 않다.

▲ 대한의사협회가 2차 총파업에 돌입한 8월2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전임의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대한의사협회가 2차 총파업에 돌입한 8월2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전임의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와 동료들은 전문직 형성과 변화에 네 가지 요건이 작용한다고 말한다. 첫째 과학이나 기술 등 다른 분야 변화에 영향을 받아 직업 영역이 재구성되거나 해체될 때다. 현미경, 청진기 발명은 이발사와 의사의 구분을 더욱 명확하게 만들었고 유전학의 성장은 새로운 의료 분야를 형성했다.

둘째 문화적 가치와 신념의 변화다. 유럽에서는 인간 신체의 해부는 종교적 신념으로 인해 14세기까지 금지돼 왔다. 전문직은 당대의 가치 체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것이 도덕적으로 허용되는지 또 어떤 분야가 유행하는지에 따라 성장과 정체를 거듭한다.

셋째 전문직 지위와 고용 형태에 영향을 주는 대중 요구와 정치적 변화다. 의료계에서는 시기마다 각광받는 분야가 달랐다. 서구에서는 1980년대까지 방사선학이나 마취학에 수요가 높았다. 그러나 이후 가정의학과, 감염학과 같은 분야가 더 중요성을 인정 받아 왔다.

더 중요한 것은 전문직 고용 형태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변화다. 과거 한의사와 같이 의사 한 명이 모든 것을 관리하고 결정하는 자율적 영역은 대형 병원 출현으로 위계와 고용관계에 종속되는 대규모 월급직 피고용인으로 채워졌다. 이윤을 최우선으로 하는 영리병원 등장은 의사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전문직이 아니라 이기적 고연봉직으로 인식을 바꾸었다.

넷째 전문직 실무 종사자들의 혁신이다. 요즘 예로 든다면 새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백신 개발이 여기에 해당된다.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할 때마다 기존 의료 지식보다 화학, 전자공학 등 타 분야 지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사회에 기여하게 된다. 이러한 창의성은 단지 사회적 인정과 높은 연봉이 아니라 환자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보람, 새로운 지식 발견 기쁨과 같은 내적 동기에 유래한다.

지난 한 달 동안의 의료계 파업은 정부의 의료 정책에 대한 반발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료대학 설립 반대는 한국 의료계가 대형병원 중심 노동시장으로 급변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신종 바이러스가 몇 년을 주기로 발생하면서 의사라는 전문직에 사회적 요구가 증가했다.

이에 따라 정부와 시민들은 의사 인력 증원을 반드시 필요한 의료서비스 확대로 보았지만, 당사자인 의사들은 이를 노동시장 변화로 받아들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문직 실무 종사자 혁신 또한 대형병원을 소유한 기업과 일부 대학, 그리고 의료산업에 투자한 주주라는 이해당사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제약을 받아왔다.

이런 체제에서 의사는 새로운 백신을 개발했다는 보람 같은 내적 동기보다 관료적 체계 내 성과와 보상에 더 민감하게 된다. 결국 이번 의사 파업은 의료계에 대한 정부의 표면적 인식, 그리고 이제는 전문직의 지위 변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의사들의 민낯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결국 오늘날 한국에서 의사라는 전문직은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자문하는 정체성의 과제를 안게 됐다. 자신의 직업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사회적 가치와 인정은 어떻게 받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정체성에 대한 측정법 중 하나인 ‘거울 테스트’는 한 가지 사례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런던 주재 독일 대사가 축하 의식에서 에드워드 7세에게 매춘부를 제공할 것을 요구받자 직위를 사임한 일이 있었다.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침에 면도하면서 거울 속에 있는 포주를 보기 싫었을 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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