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힐 권리’를 내세워 정보나 기사를 삭제하라는 요구를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까. 개인의 사생활이나 자기결정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과, 표현의 자유나 알권리를 침해해선 안 된다는 견해는 여전히 논쟁 영역에 있다.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은 불법정보, 명예훼손 등 처벌 규정이 이미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정보 통제 권한이 명문화되면 부작용이 클 거란 우려도 있다.

기자 대부분은 일상적으로 기사 삭제 요구를 받는다. 지난해 한국언론진흥재단 설문에 응한 기자의 94%가 기사 삭제 요청을 받았다고 답했다. 삭제 요구 횟수는 1인당 평균 6.7회에 달했다. 41.7%가 기사 일부를, 19.6%가 전체를 삭제했다. 삭제하지 않은 경우는 38.7%다. 기사를 삭제한 이유는 명예훼손(2.5%), 사생활침해(21.5%) 비중이 높다. 업무상 비밀 누설(12.3%), 저작권 침해(1.0%)가 뒤를 이었고 오류·오보, 상부 지시, 광고, 취재원과 관계 등을 포함한 기타 사유가 25.9%다. 실제로 기사가 빈번하게 수정되거나 삭제되고 있다는 의미다.

기사 삭제를 ‘잊힐 권리’ 행사의 범주에 두는 게 맞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신문·방송 등에 비해 온라인 기사는 빠른 속도로 불특정 다수에게 퍼져 나가고, 정정보도가 이뤄지더라도 원 기사보다 읽히지 않거나, 여전히 원 기사가 확산된다는 특성이 있다. 필요한 시점에 적법하게 보도된 내용이더라도 영구적으로 온라인에 남아 있으면, 필요보다 과하게 개인정보가 노출·공유되는 문제도 있다.

▲ 한국언론진흥재단, '디지털 시대의 잊힐 권리와 기사 삭제'(2019년 11월) 발췌.
▲ 한국언론진흥재단, '디지털 시대의 잊힐 권리와 기사 삭제'(2019년 11월) 발췌.

물론 지금도 정보 삭제를 요구할 근거들이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정보 삭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법상 ‘정정보도 청구’ △정보통신망법상 ‘임시조치’ 및 ‘불법정보 삭제’ 등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7일 보고서(잊힐 권리 법제화에 대한 검토)에서 개인정보법은 검색결과가 아닌 검색엔진이 보유한 개인정보를 대상으로 하고, 정정보도청구는 ‘시효’가 정해져 있으며 기사삭제를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고 지적했다.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불법개인정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로 삭제될 수 있지만 온라인 기사는 심의·규제 대상이 아니다.

유럽연합(EU)은 2014년 소송을 사례로 ‘잊힐 권리’를 법제화했다. 스페인의 한 변호사가 과거 자신이 집을 경매에 넘겼다는 기사를 구글에서 삭제해달라며 해당 언론사와 구글에 소송을 제기했던 일이다. EU 사법재판소는 구글 검색링크 삭제만을 허용했다. 검색엔진 운영자는 ‘개인정보 관리자’로서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정보를 삭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기사 삭제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EU는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에 관련 규정을 마련했다. 정보주체가 합당한 근거로 개인정보처리자에게 개인정보 삭제를 요구할 수 있고, 개인정보처리자는 합리적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이다. 다만 △표현의 자유 보장 필요 △EU법이나 회원국 법률상 정보 처리 필요성이 인정되거나 공익적 활동이나 공적 권위로 수행된 활동 △공공보건 영역에서 공익적 사유 △공익적·과학적·역사적 연구나 통계 목적 저장행위 관련 △법적 권리 보장을 위한 경우 등에 해당되는 경우 삭제요구권을 제한했다.

입법조사처는 국내에서도 잊힐 권리를 법률로 구체화하고 포털 등에 관리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개인 사생활 또는 사회적 차별을 야기해 현저하게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정보’로서 민감정보, 오래되어 부정확한 정보, 편견을 낳는 정보, 고유식별정보(주민등록 등) 등을 잊힐 권리 대상으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나 알권리를 위해 △보도·학술연구·종료·정치활동 등 공적 정보 △공직자·운동선수·기업인·예술가·중대범인 등 공인 관련 정보는 잊힐 권리가 제한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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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전문기구가 ‘검색결과 배제’ 등을 결정하고, 네이버·다음 등 검색서비스사업자가 이를 따르는 방안도 언급했다. 입법조사처는 “삭제 결정을 검색서비스사업자가 부담하는 것은 과도하며, 국민의 기본권 심사를 사업자에게 맡기는 문제가 있다”며 “검색엔진에서의 검색결과 삭제는 제3의 전문기구에서 하고 검색서비스사업자는 전문기구의 결정을 집행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표현의 자유, 공익을 위한 경우, 연구 목적 등, 다른 법률에 따라 보관해야 하는 경우 검색배제 청구 대상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온라인 기사에 대해서는 피해자 요청의 적정성과 언론 자유의 균형을 위해서 언론사 기록은 유지하되, 기사에 언급된 사람을 인터넷 검색에서 제외하는 방향을 제안했다. 입법조사처는 “언론중재법에 특칙을 마련해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검색배제청구권을 신설하고, 검색 배제를 언론중재위원회가 조정하도록 근거 규정을 두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나아가 “검색배제 청구 대상은 보도 내용이 허위이거나 피해자의 인격권을 중대하게 침해하거나, 사생활의 핵심영역을 명백히 침해한 경우를 청구 요건으로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접근이 ‘옥상옥’이라는 지적도 있다. 박경신 ‘오픈넷’ 이사(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보통 ‘잊힐 권리’는 명예훼손도, 사생활 비밀 침해도 아니지만 잊히고 싶은 정보를 막기 위한 것인데, 이미 우리나라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있기 때문에 진실이라도 차단할 법적근거가 이미 있다”며 “정보통신망법상 임시조치도 조문에 ‘타인의 권리침해’ 정보만 삭제할 수 있는 것처럼 돼 있지만 실제로 플랫폼 운영자 측은 요청만 있어도 삭제하고 있다”고 전했다. 불법 성착취물의 경우 성폭력처벌법상 불법이기에 신청을 받으면 이를 삭제하지 않을 플랫폼이 없다는 점도 덧붙였다. 결국 “현행법으로 막지 못하는 불리한 정보, 자기가 생각하기에 불쾌한 과거를 막는 데 동원될 거”라며 “극악한 우민화 정책”이라는 표현을 썼다.

‘잊힐 권리’ 도입 사례로 회자되는 2014년 소송 건에 대해서도 맹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 이사는 “당시 해당 변호사는 가난해서 집이 경매에 넘어간 게 아니라, 국가에 세금을 안 낸 사례다. 누군가 ‘탈세한 사람과 일을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 않겠나. 이렇듯 ‘허위의 이미지’를 보호하기 위해 정보 세탁을 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며 “인터넷은 자기와 거래할 대상, 표를 줄 대상 등의 민낯을 알아보도록 해주는 공간이다. ‘잊힐 권리’라는 규정을 또 만들면 실제로는 국민이 자기를 보호하기 어렵게 만드는 일만 계속될 것”이라 말했다.

박 이사는 또 ‘검색배제청구권’과 관련해 “언론중재위는 말이 중재지 강제적이다. 방통심의위는 기사를 2차 가공하는 글을 막고 있다”며 “합법적 정보가 1계급, 배제되는 정보가 2계급, 배제에 더해 삭제되는 정보가 3계급, 배제·삭제 뿐 아니라 형사처벌되는 4계급 이런 식으로 정보를 계급화하면 그런 구조를 누가 잘 이용하겠나. 사람들 사이의 계급 구조를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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