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의협)와 더불어민주당∙보건복지부가 공공의료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의료계 집단휴진을 중단하기로 4일 합의했다. 코로나19 장기화 속에서 의료계 집단 휴진을 막게 됐으나 곳곳이 상처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일방적 결정’이라며 여전히 반발하고 있고, 당정이 섣부른 백기투항을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궁극적으로 공공의료 정책의 동력을 상실했다는 우려도 높다. 5일 아침신문을 발간한 전국단위 주요 종합일간지들은 1면부터 관련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아래는 이날 1면 머리기사(톱기사) 제목들이다.

경향신문: 결국 파업에 멈춰선 ‘공공의료 확충’
국민일보: 의대 정원 확대 중단 정부∙의협 극적 합의
동아일보: 醫政갈등, 불씨 남긴 봉합
세계일보: 수도권 2.5단계 일주일 더 연장
조선일보: 당정∙의협 합의…전공의 결정 남았다
중앙일보: 수술대 오른 공공의료, 칼 못 대고 일단 봉합
한겨레: 의협에 무릎꿇은 ‘공공의료’…그 합의문도 거부한 전공의
한국일보: 의∙정 갈등 불안한 봉합…의료계 내분∙정책불신 후폭풍

4일 합의 골자는 △의대증원 △공공의대 신설 △첩약급여화 시범사업 △비대면 진료 도입 등 4대 의료 정책을 원점에서 재논의하고, 이를 위한 의∙정협의체를 신설이 골자다. 이번 협상에는 신임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역할이 컸다는 후문이다. 이낙연 대표가 취임 직후 첫 과제로 ‘의료진 복귀 방안 모색’을 꼽은 가운데, 한정애 정책위의장이 공식석상에서 눈물까지 보이며 꾸준히 의료계와 만남을 추진했다. 지도부 발로 ‘원점 재논의’라는 메시지도 연일 이어졌다. 한국일보(이낙연의 소통, 한정애의 디테일 ‘협상 돌파구’)는 “새 여당 지도부의 의지와 대응이 아니면 이만한 출구전략을 마련하기 어려웠을 거란 공감대가 크다”며 “두 사람 모두 일을 풀어갈 때 겸손이나 진정성을 강조하고, 일단 작은 교집합을 만들고 이를 큰 교집합으로 키워가는 실용주의”(지도부 의원)라는 의견을 전했다.

그러나 당 바깥은 물론 내부에서도 ‘백기투항’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연세의료원노동조합위원장 출신인 이수진 의원(비례대표)은 페이스북에 "이번 합의안은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지역의사제 도입을 의사들의 진료 복귀와 맞바꾼 것"이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무상의료운동본부 등 176개 노동ㆍ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청와대 분수대 앞 기자회견에서 “정부 여당과 의협이 공공의료 정책의 진퇴를 놓고 협상을 벌인 끝에 사실상 공공의료 개혁 포기를 선언했다”고 규탄했다. 한국일보(의협, 정부에 판정승…그래도 국민 신뢰 잃었다)는 “당정은 직역 단체에 밀려 국민 앞에서 한 정책 추진 약속을 어긴 것은 물론, 앞으로 의대 정원 확충 등에 있어 논의 파트너를 의협으로 국한시킴으로써 건강보험 가입자 등 다른 이해 당사자를 배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까지 나서 의사 파업에 ‘강력 대처’를 지시했던 정부는 이번 합의로 내상을 입게 됐다”고 봤다.

▲ 9월5일자 경향신문 3면 기사.
▲ 9월5일자 경향신문 3면 기사.

경향신문은 “결국 파업에 멈춰선 ‘공공의료 확충’”, 한겨레는 “의협에 무릎꿇은 ‘공공의료’…그 합의문도 거부한 전공의”라는 제목의 기사를 각각 1면 머리에 배치했다.

공공의료정책에 의사들 목소리가 과하게 반영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비판도 있다. 경향신문은 이어진 기사(환자 등 의료 이용자는 배제… “의∙정협의체, 나쁜 선례 될 것”)에서 “합의문에는 민주당과 복지부가 의·정협의체를 구성해 여러 의료정책들을 논의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역수가 등 지역의료 지원책·필수 보건의료 육성 및 지원책·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구조 등 주요 의료현안을 의제로 하는 의·정협의체를 구성하고, 복지부는 여기서 나온 논의 결과를 보건의료발전계획에 적극 반영하고 실행하기로 했다. 의·정협의체에는 의협과 대학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 이번 협상 당사자들이 주축으로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대한간호협회도 이와 관련 “정부는 양자 간의 의·정협의체를 폐기하고 간호사 등이 포함된 범국민 논의기구를 구성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한겨레는 전공의단체 비판에 날을 세웠다. 1면 기사에서 “정부 정책 추진을 무력화시켰으면서도, 전공의들은 합의문 수용조차 하지 않고 있다. 최종 합의문에 공공의대 설립 등 관련 법안 ‘철회’가 포함되지 않았는데도 의협 회장이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합의문에 의사들의 ‘의료현장 복귀’가 버젓이 명시돼 있지만, 집단휴진이 언제 종료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전공의들은 앞서 지난달 25일 복지부와 의협이 만든 잠정 합의문도 걷어차고 집단휴진을 이어간 바 있다”고 했다. 4일 최대집 의협회장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전공의단체의 실력행사에 막혀 시간과 장소를 변경한 끝에 합의문에 서명했다.

한겨레 사설(또 합의 뒤엎겠다는 전공의들, 고립 자초할 뿐이다)의 경우 합의문에 공공의료 정책 ‘철회’ 문구가 있어야 한다는 대한전공의협의회 측 주장을 “생떼”라 규정했다. 한겨레는 “박 위원장은 합의안에 ‘단체행동 중단’이 적시된 것에 대해 ‘단체행동 중단은 저희가 결정한다’고도 했다. 의협 산하단체로 직접 합의안을 만들어 최대집 회장에게 협상 전권을 위임해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상식도 보이지 않는 막무가내식 행태로, 더 이상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다”며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전공의들의 이기적인 행동 탓에 의사 전체에 대한 국민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 여기서 집단행동을 멈추고 의료 현장으로 복귀하지 않는다면 정부는 물론 국민도 더는 인내심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9월5일자 한겨레 사설.
▲ 9월5일자 한겨레 사설.

이번 합의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한국일보 사설(의사 파업 타결 다행이나 공공의료 원칙은 지켜야)도 “의사와 의대생들은 국민의 냉정한 시각을 자각하고, 집단이익 우선주의를 넘어서길 바란다. 의료계가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잡아 당장은 요구를 관철한 것 같지만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기적 집단’이라는 인식이 적잖이 확산됐다”며 “전공의협의회는 합의 후에도 반대시위를 벌여 정부-의료계 협약이 시간과 장소를 바꿔가며 가까스로 체결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국민 다수가 의료계 주장을 집단이기주의로 보는 한 의료계 입장이 정책에 반영할 여지는 크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정부의 정책 추진이 성급했다는 의료계 반응을 담았다. 동아일보(“정부,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했나” 野-의료계서 비판)는 “정부가 정책을 밀어붙이기만 하면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의료계의 거부감을 미리 헤아렸다면 이런 식으로 추진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실 교수 주장을 전했다. 사설(국민 고통만 가중시킨 공공의대 논란)에서는 “코로나19 위기 속에 벌어진 이번 파업은 정부 정책이 소통과 설득, 종합적 관점을 잃은 채 일방통행식으로 추진될 경우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며 “의료계와의 협의 및 설득을 통해 합리적 방안을 도출해야 할 사안이었는데도 보건복지부는 코로나 사태 와중에 공청회 한번 없이 밀어붙였고, 설상가상으로 공공의대 학생 추천자에 시민단체를 포함시킨다는 발상 등으로 현대판 음서제 논란을 야기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파업은 멈췄지만 추후 갈등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은 남아있다. 의료계도 의대 정원 확대와 의료 불균형 해소 문제 논의를 무작정 거부해선 안 된다. 의료 공공성 확대 논의에 의료계가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9월5일자 동아일보 사설.
▲ 9월5일자 동아일보 사설.

조선일보 사설의 경우 최근 의료계 집단휴업과 관련해 불거진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 논란을 지적했다. “부하 잘못이라도 자기 책임으로 돌리는 게 리더의 자격”이라는 제목의 사설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대통령 페이스북에는 “전공의 등 의사들이 떠난 의료현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간호사분들”에게 감사한다며 “장기간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시겠느냐”는 글이 게재됐다. 해당 글이 ‘편 가르기’ 지적을 받은 가운데 해당 글은 기획비서관실이 써서 올렸다는 일부 보도가 나왔다. 조선일보는 이런 상황을 두고 “졸렬하다”고 맹비난했다.

조선일보 사설은 “지금까지 청와대는 문 대통령 인터넷 글은 본인이 직접 작성한다고 해왔다. 그런데 이번엔 참모진이 작성해 대통령 확인 절차도 없이 공개됐다고 한다. 그 말을 믿을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비판을 받으니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미룬 것이다. 졸렬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설사 부하 잘못이라고 해도 ‘내 책임‘이라고 하는 것이 리더의 기본적인 자격 요건”이라 주장했다. 이 사설은 ‘그린벨트 해제 검토’가 이뤄지다 비판 여론이 일자 대통령이 백지화 메시지를 내며 거둬들인 일, 국무회의에서 심의 의결된 대통령 기록관 예산과 관련해 “대통령이 불 같이 화를 냈다”고 전해진 사례 등을 함께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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