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오는 4월 중순이면 방송사들은 봄맞이 프로그램 개편을 단행한다. 아마도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방송에서 사라지고 또 새로운 제목을 달고 등장할 것이다.

그동안 무수한 프로그램 개편으로 사라진 반짝 프로그램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아마 열 손가락을 접어 왼쪽 엄지에서 오른쪽 검지까지 100번을 왔다 갔다 하더라도 모자랄 것 같다.
이 때문에 장수 프로그램들을 보면 기특하단 생각이 든다.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5년, 10년을 버텨온 그 저력은 무엇일까. 그 프로그램엔 특별한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할 터이다.

오는 5월이면 1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MBC「PD수첩」도 특별한 뭔가가 있는 장수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그 특별함을 거칠게 찾아본다면, 사회적 이슈에 대한 치열한 탐사보도와 성역을 두지 않으려는 주제선정이 주효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 동안의 수많은 수상경력들이 이를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분명 축하받을 일이고 그 구성원들도 자축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PD수첩」은 큰 고민에 빠져 있다. 「PD수첩」에 지원하는 PD가 없다는 것이다. 명예훼손 등 소송에 시달려서 PD들이 곤욕을 치려야 하기 때문에 선뜻 프로그램을 맡기가 겁난다는 것이다.


테러 위협·30억원대 소송에 시달리는 PD

지난해 방송가 최대사건이었던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의 MBC 난입사건도 「PD수첩」의 프로그램 ´이단 파문 목자님 우리 목자님´ 때문이었다. 만민중앙교회측은 8건의 소송을 「PD수첩」의 담당 PD를 상대로 제기했다. 얼마 전 법원은 만민중앙교회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반론을 보도하라고 판결하기도 했으며 아직도 소송이 진행중이다.

당시 이를 제작 방송했던 프로듀서는 윤길룡PD. 윤PD는 만민중앙교회뿐만 아니라 세계정교의 하정효 교주, 대전 법조비리의 이종기 변호사 등으로부터 소송이 걸려 있다. 소송액수만 해도 30억원이 넘는다. 그 심리적, 일상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3일씩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아야 했고 또 오는 목요일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아야 한다.

그는 지난해부터 혹시나 있을지 모를 테러에 대비해 엘리베이터도 타지 못하고 모자로 얼굴을 가리며 다녀야 했다. 길거리에서 누군가가 부르면 긴장부터 했다. 변호사 변론을 위해 경위서도 작성해야 하고…. 아무튼 귀찮고 힘들다.


명예훼손 소송 악용의 끝은

PD들이 이런 윤PD의 모습을 보면서 「PD수첩」을 맡지 않으려 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PD수첩」팀은 「PD수첩」을 거쳐갔던 PD들의 글을 묶어 기념책자를 내려고 하는데 이를 위해 제출된 글들이 대부분이 명예훼손 소송 등을 우려하는 내용들이었다고 한다. PD들의 강박관념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명예훼손 소송 등 법적 대응은 보도나 방송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유력한 수단이 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명예훼손 소송 실태를 살펴보면 사회적 약자가 아닌 검찰, 종교집단, 변호사 등 힘있는 집단의 기득권 방어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취재당시에는 답변을 회피하고 방송이 될 것 같으면 무조건 소송을 걸고 보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공격적 소송들이 기자나 PD의 취재의욕을 꺾어 버리고 있는 셈이다. 윤길룡 PD는 그 폐해를 이렇게 정리했다. "명예훼손이 이렇게 악용된다면 결국 PD들은 몸을 사리게 돼 말초신경이나 자극하는, 또는 나중에 문제가 전혀 되지 않는 소프트한 주제만 다루게 될 것이다. 결국 언론이 사회문제를 외면함으로써 발생하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은 결국 시청자,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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