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공영방송이 제작한 풍자 영상이 수신료 논란으로 비화됐다. 여당 정치인들은 수신료 인상을 하지 않겠다며 나섰고, 언론계는 재정을 볼모로 한 협박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의 인스타그램 채널 아우렐(@aureloriginal)은 지난 7월11일 독일 경찰의 인종 프로파일링 정책을 비꼬는 내용의 영상을 공개했다. 내용은 이렇다.

두 경찰이 자전거 열쇠고리를 풀고 있는 청년을 두고 한바탕 토론을 벌인다. ‘외국인인가? 독일인인가? 흑인인가? 반 흑인인가? 마약 딜러보다는 피부가 하얗지만, 자전거 도난범으로 보기에는 충분히 검다’ 특수경찰이 출동해 총을 겨누고, 헬리콥터까지 등장한다. 청년은 결국 총에 맞아 쓰러진다. 경찰은 뒤늦게 독일인 신분증을 확인하지만 ‘원래’ 출신이 어딘지를 따진다. 그 순간, 샌들에 흰 양말을 신은 걸 보고 ‘진짜’ 독일인임을 깨닫는다. 경찰들이 슬픔에 빠진 순간 한 백인이 자전거를 훔쳐 유유히 떠난다. 

▲독일 공영방송이 제작한 경찰 풍자 영상의 한 장면.
▲독일 공영방송이 제작한 경찰 풍자 영상의 한 장면.

경찰 내 인종주의는 현재 독일 정치권 이슈 중 하나다. 경찰이 특별한 근거 없이 인종을 이유로 시민들을 조사하는 ‘인종 프로파일링’을 한다는 비판 때문에 관련 연구가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내무부 장관이 이를 막았다. ‘경찰 내 구조적인 인종주의는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현실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조금 다르다. 수많은 언론이 경찰을 비판하고 있다. 위 영상도 그런 흐름에서 나왔다. 

영상이 공개되자 메르켈 총리가 있는 독일 기민당(CDU) 소속의 연방 하원의원 마티아스 하우어(Matthias Hauer)는 “시청료로 제작된 경찰 혐오”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작센안할트주 소속 유럽의회 의원인 스벤 슐츠(Sven Schulze)도 “이 영상은 전체 경찰을 모욕하고 있다. 공영방송 재정으로 이런 것을 지원해선 안 된다”면서 “시청료 인상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작센안할트 주의회 CDU 대표이자 미디어정책 담당인 마르쿠스 쿠어츠(Markus Kurz) 의원도 “수신료 인상을 거부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독일 공영방송 수신료는 2021년부터 기존 17.5유로에서 18.36유로(약 2만5800원)로 인상된다. 지난 6월 16개 주정부가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 결정은 주의회에서 개별적으로 승인을 받아야 끝난다. 작센안할트주 의원들은 원래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던 중 이 영상이 빌미가 된 셈이다. 

방송 내용에 비판은 있을 수 있으나 수신료를 걸고 넘어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언론계에서는 수신료를 볼모로 한 검열 시도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독일기자협회 작센안할트지부 대표인 우베 가요브스키(Uwe Gajowski)는 정치인들 발언이 “노골적 협박”이라며 “(정권이) 원하지 않는 내용은 방송국의 재정 축소를 가져올 것이라는 걸 암시한다. 법률로 보장된 방송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독일 기자협회도 “정치인들은 재정적 압박으로 공영방송이 정치적으로 고분고분하게 행동하기를 강요하고 있다. 그들은 수신료로 방송 내용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 연방헌법 판례를 조속히 숙지해야 할 것”이라며 “검열 시도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독일의 방송 수신료는 지난한 법정 싸움을 딛고 확보한 시스템이다. 공권력을 비판한 내용 때문에 수신료 인상이 막힌다면 그건 시스템 후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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