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백서에 대한 대응 성격으로 등장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일명 ‘조국흑서’가 출간됐다. 책의 부제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끝장나는가’이다. 강양구 TBS 과학 전문기자, 권경애 변호사, 김경률 회계사,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진중권 시사평론가의 대담 형식으로 구성된 340여페이지 분량의 이 책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은 우리의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실현됐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들어가는 말에서 “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것은 너무도 쉬워 보였지만 희망이 사라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입시와 사모펀드, 가족 재산 형성 등에 숱한 의혹이 제기된 조국 교수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함으로써 도덕이라는 최후의 보루마저 무너뜨렸다”며 “취임사와 달리 기회는 평등하지 않았고, 과정은 공정하지 않았으며, 결과는 전혀 정의롭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시민씨와 김어준씨의 사례에서 보듯 여기에 이의를 제기해야 할 언론과 지식인들은 정권의 부역자가 되는 길을 택했다. 참여연대와 민변은 정권과 한 몸이 된 채 침묵하는 중”이라고 비판했으며 “소위 문팬은 압도적 화력으로 인터넷을 점령한 채 정권의 모든 잘못을 비호하고 있다. 조국 비리를 수사한다는 이유로 서초동에 모여 ‘조국수호’를 외치고 ‘정경심 사랑합니다’며 울부짖은 건 역사에 남을 희대의 코미디”라고 꼬집었다. 

▲신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신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책은 크게 7장으로 구성되었으며, 2장의 주제가 ‘미디어의 몰락, 지식인의 죽음’, 뒤이은 3장은 ‘새로운 정치 플랫폼, 팬덤 정치’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팬덤 세력에 의해 미디어와 지식인이 몰락했다는 메시지가 담겼다. 진중권씨는 “조중동과 보수정치인은 결합되어 있다. (언론은) 그들의 하청을 받아 채동욱 검찰총장도 날렸다. 정권 바뀐 뒤 똑같은 일을 진보언론을 표방하는 이들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진씨는 “(조국) 딸은 변호인단에서 정리한 거짓말을 숙지시켜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내보냈다. 그 이후 한겨레에서 윤석열 총장을 성접대 의혹에 엮어 음해하는 기사를 썼다”며 “뉴스공장, 알릴레오는 물론이고 대다수 진보언론까지 (조국 수난극이라는) 거대한 허구를 날조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주장했다. 서민 교수는 “MBC, KBS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 편을 드는 수호 방송이 되었다. 특히 MBC의 변신이 놀라울 정도다. PD수첩에서 조국 전 장관 딸 표창장을 옹호했다”고 비판했다.

강양구 기자는 공영방송을 가리켜 “지난 9년간 고생한 KBS, MBC 등 언론인들이 ‘이 권력이 지켜지지 않으면 내가 다시 지난 9년처럼 될 수 있겠구나’하는 두려움의 이해관계로 권력과 같이 가는 언론, 권력을 만드는 언론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조선일보를 욕했던 이유는 편파, 왜곡을 마음 놓고 자행하는 집단이라 생각했기 때문인데 지금 진보언론도 자유롭지 않다”고 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집필에 참여한 진중권-김경률-서민-강양구-권경애씨. ⓒ출판사 천년의 상상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집필에 참여한 김경률-강양구-진중권-권경애-서민씨(왼쪽부터). ⓒ출판사 천년의 상상

진중권씨는 “한겨레야말로 권위와 신뢰의 상실을 고민해야 한다. 요즘 완전히 어용이 되었다”고 했으며 MBC가 수신료 등 공적 재원을 요구한 것에 대해선 “민주당 방송을 하는데 왜 우리가 수신료를 내야 하냐”며 “그 돈은 민주당에서 받아야 한다. 수익자부담 원칙”이라고 했다.  

강양구 기자는 “지금은 손석희 JTBC사장처럼 언론의 정체성을 성찰하면서, 언론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명확히 하면서, 팩트만을 좇으면 안 된다. 대중이 듣고 싶은 얘기를 해줘야 지지해주고, 환호해주고, 영향력이 생기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것을 성공적으로 보여준 게 나꼼수이고 김어준씨나 주진우 기자 등”이라고 했다. 진중권씨는 “1930년대 서구의 당파적 저널리즘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나꼼수 멤버들이 공중파로 진입하면서 레거시 미디어의 ‘나꼼수화’가 진행되었다”고 지적했다.

서민 교수는 KBS ‘저널리즘토크쇼J’를 가리켜 “(윤지오 MBC 인터뷰 논란 당시) 패널들이 입을 모아 MBC 앵커를 욕했다. ‘조선일보를 잡으러 온 것이니 윤지오는 무조건 옳다’ 이런 진영 논리의 결과였다. 그런데 그 뒤 윤지오씨가 사기꾼임이 드러났는데 ‘저널리즘토크쇼J’에선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과 함께 윤지오 같은 허술한 사기꾼에 넘어간 언론에 대해 성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강양구 기자는 “공론장 안에서 그나마 합리적이고 건강한 목소리를 냈던 저널리스트들이 마녀사냥 당하고 있는 게 지금 현실”이라고 우려했다. 진중권씨는 이에 “유시민씨가 했던 일이 그거다. 경향신문 유희곤 기자를 마녀사냥했고, 말 한마디로 KBS 법조팀을 날려버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애먼 언론들을 쓰레기로 만들어 놓고, 깜냥도 안 되는 이들이 ‘참’언론인 행세를 하고 있다. 그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지난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기자간담회 당시 조 후보자에게 질문했던 기자들의 얼굴을 모두 모아놓은 이미지. 이날 질문했던 기자들은 매체나 질문 내용을 가리지 않고 조 후보자 지지자들로부터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 이미지는 조 후보자 지지자들이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기자간담회 당시 조 후보자에게 질문했던 기자들의 얼굴을 모두 모아놓은 이미지. 이날 질문했던 기자들은 매체나 질문 내용을 가리지 않고 조 후보자 지지자들로부터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 이미지는 조 후보자 지지자들이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 교수는 “아주경제는 끝까지 조국 일가가 옳다며 아예 사실관계를 왜곡하기까지 하는데, 문팬들은 아주경제 이외의 기사는 다 무시한다. ‘믿고 거르는 조중동’, ‘시방새 안사요’, ‘한겨레 경향은 가난한 조중동’ 이렇게 다 빼고 나면 아주경제와 뉴스공장만 남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중권씨는 “겉으로 보이는 언론자유지수는 상당히 높게 나오는데, 실제 (언론인이) 경험하는 상황은 매우 억압적이다. 요즘 기자들이 대놓고 말을 못하니 내게 잘한다고 격려문자나 보내고 있다. 심지어는 페이스북 ‘좋아요’도 무서워서 못 누르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했다. 이와 관련 서민 교수는 “진 교수가 페이스북에 쓰면 그걸 그대로 기사화하는 언론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현상도 정권 비판에 따르는 비난을 기자 개인이 감당하기 어렵다보니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강 기자는 “노무현빠들과 황우석빠들이 많이 겹쳤다. 대표적 황빠가 김어준이었다. 끝까지 반성하지 않았던 황빠”라고 했으며, “노무현 정부 때 한미FTA 반대 기사를 썼더니 참기레기, 똑같은 내용을 이명박 정부 때 쓰면 ‘참기자’가 됐다. 조국 사태 때도 조 전 장관을 비판했더니 ‘참기레기’, 코로나19가 유행할 때 자기들한테 도움 되는 글을 쓰면 ‘참기자’였다”고 현실을 개탄했다. 

진중권씨는 “황우석 사태 때 이미 ‘진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나꼼수 철학이 만들어진 것이고, ‘선악도 중요하지 않다’는 게 곽노현 사건 때 만들어졌다. 우리 편을 위해 진실은 왜곡해도 되는 것이고, 우리 편을 위해 선악의 기준은 버려도 된다는 포맷, 그것이 문재인 정권의 권력과 만나 증폭되면서 미증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디지털 시대는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수평적 소통이다. 대중이 대두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대중이 기자가 되고, 저자가 되고, 방송사가 되었다”며 “문제는 대중이 파시스트적 추적 군중으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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