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매체가 민주노총이 지난 광복절 집회 참가자 명단 제출을 거부했다고 보도했으나 오보였다. 민주노총과 방역당국은 명단 제출을 논의해왔고 제출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 같은 결정 이후 민주노총의 방역 거부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혀 사실과 다른 보도가 재생산됐다.

문화일보는 25일 “민노총, 2000명 광복절 집회 참가자 명단제출 사실상 거부”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 민주노총 관계자가 “참가자 전원이 검사에 응했고, 음성판정이 나온다면 명단을 공개할 이유가 없다”며 사실상 서울시에 명단 제출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문화일보는 “민주노총이 2, 3차 감염 확산 우려를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고 했다. 서울신문도 “광복절 집회 참가자 명단 못 준다는 민주노총” 기사를 내 민주노총이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25일 문화일보 “민노총, 2000명 광복절 집회 참가자 명단제출 사실상 거부” 기사
▲25일 문화일보 “민노총, 2000명 광복절 집회 참가자 명단제출 사실상 거부” 기사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이에 “민주노총은 명단 제출을 거부한 적이 없을뿐더러, 24일 중앙방역대책본부와 논의를 시작했을 때부터 명단 제출에 협의해왔다. 26일 오전 9시 명단을 제출하기로 결정해 이를 알렸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서울시가 민주노총에 8・15 광복절 집회 참가자 명단제출 요구 공문을 보내자 민주노총은 ‘주최측은 3000여 단체가 참가하는 ‘8・15민족자주대회 추진위원회’라고 답했다. 서울시는 공문이 “안내 차원”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이같은 논의 과정에서 ‘이름과 나이, 주소 제출 요구는 과하다’는 입장을 전했다는 설명이다. 한 대변인은 민주노총이 연 사전노동자대회와 관련해 방역당국과 협의를 시작한 뒤에는 지속적으로 긍정적 논의를 이어왔다고 밝혔다.

▲ 광복절인 8월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8・15 노동자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 광복절인 8월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8・15 노동자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청와대는 26일 오후 브리핑에서 “민주노총의 8・15 종각 기자회견 참가자 명단 제출 거부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 방역에는 특권이 없다’면서 ‘엄정하게 대응하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이 오전 명단 제출을 결정하고 알린 뒤 청와대가 ‘민주노총의 방역 협조 거부’를 공식화한 셈이 됐다. 이 같은 내용을 전달하는 보도가 100건 이상 나왔다(포털 뉴스페이지 기준).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은 이날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의 ‘엄정 대응’ 입장 발표에 앞서 민주노총이 명단을 제출키로 했다고 했다. 정 본부장은 “(브리핑 전에) ‘명단 제출을 받을 예정’이라고 보고를 받았다”면서 “실무자와 협의하는 중이어서 더 정확한 사실은 확인해서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 ⓒ연합뉴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 ⓒ연합뉴스
▲대다수 언론은 방역당국의 공식 입장을 전하며 “민주노총이 ‘결국’ 명단을 제출키로”했다고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대다수 언론은 방역당국의 입장을 전하며 “민주노총이 ‘결국’ 명단을 제출키로”했다고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대다수 매체는 방역당국의 입장을 전하며 민주노총이 청와대의 강경 방침에 밀려 명단을 제출키로 했다는 취지로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뉴시스는 “대통령 한마디에 민노총 뒤늦게 '광복절 집회' 참가자 명단 제출키로”라고 제목을 달았다. 세계일보는 “文 “방역엔 특권 없다” 엄포… 민주노총, 참가자 명단 내기로”라고 제목을 달고 “민주노총은 문 대통령의 발언이 보도되기 전 방대본에 명단을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대통령의 엄정 대응 지시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한 대변인은 “코로나19 확산을 조기에 막는 것이 먼저이니 따로 공식 입장을 밝히지는 않을 예정이다. 다만 명백한 오보를 낸 매체에는 사태가 마무리되는 대로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라며 “문화일보가 민주노총에 사실 확인을 한 번이라도 거치고, 민주노총 입장을 그대로 전달했으면 이렇게까지 일이 커지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기사 수정 : 27일 17시 35분]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