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기안84(김희민)의 웹툰 ‘복학왕’이 여성혐오로 비판을 받는 가운데 한국웹툰협회가 “작가 퇴출, 연재 중단 요구는 파시즘”이라는 입장을 냈다. 이에 기안84의 네이버웹툰 연재 중단 등을 요구해온 기본소득당 젠더정치특별위원회는 즉각 “웹툰협회가 지키려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가부장적 규범”이라며 비판했다. 

지난 11일 네이버에 공개한 기안84의 웹툰 ‘복학왕-광어인간’ 2화에선 스펙이 부족한 여성 인턴(봉지은)이 남성 상사와 성적인 관계(배 위에 대왕조개를 올려놓고 깨는 모습)를 가진 후 정직원으로 채용된 듯한 장면이 나와 여성혐오 논란이 일었다. 기안84가 출연하고 있는 MBC 예능 프로그램 ‘나혼자산다’ 게시판에는 기안84 하차 요구 글이 쏟아졌고, 그가 장애인을 희화화했던 과거 작품도 다시 거론됐다. 현재 거취 관련 공식입장은 나오지 않았고, 기안84는 앞으로 2주간 개인사정으로 녹화에 불참하기로 했다.   

비판이 거세지자 기안84는 “부적절한 묘사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입장문을 냈다. 기안84는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본다는 설정을 추가하면서 이런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할 수 있는 장면을 고민하다가 귀여운 수달로 그렸다”고 했다. 하지만 사과가 구체적이지 않고, 풍자는 약자가 아닌 강자에게 해야한다며 기안84 입장에 대한 비판이 다시 제기됐다. 

▲ 만화가 기안84. 사진=노컷뉴스
▲ 만화가 기안84. 사진=노컷뉴스

 

기본소득당 젠더정치특별위원회·만화계성폭력대책위원회 등 8개 단체는 지난 14일부터 1000명이 넘는 네이버 사용자에게 서명을 받아 기안84 작품의 네이버 연재 중단을 요구했다. 이런 가운데 제1대 세계웹툰협회 회장을 역임한 만화가 원수연씨가 지난 19일 자신의 SNS에 “작가들이 같은 작가 작품을 검열하고 연재 중단 시위를 벌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며 이를 “패륜적 행위”라고 작가퇴출운동을 비판했다. 

웹툰협회는 지난 24일 작가에 대한 비판은 받아들이지만 작가 퇴출이나 연재중단 요구는 ‘파시즘’이라는 입장을 냈다. 웹툰협회는 “여성 혐오와 성 소수자,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비하와 조롱 혐의에 바탕한 독자 일반의 문제 제기와 비판 함의는 진중하고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작가와 작품에 대한 비판은 얼마든 가능하지만 작가퇴출, 연재중단 요구는 파시즘”이라고 했다. 

웹툰협회는 “만화계에 대한 대표성이 없는 소위 ‘만화계성폭력대책위’라는 단체의 ‘성평등한 작품을 위한 주의점’ 지침 발표 등 일련의 처신도 유감”이라며 “사회적 아젠다나 특정 정파성과 주의의 관점에서 여느 작가의 창작과 작품을 비판적 논쟁의 영역을 벗어나 물리적으로 강제하려는 행위는 조지오웰의 1984가 경계했던 빅브라더 사회, 전체주의로 해석하는 파시스트들의 그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이어 “성평등 지수를 높이는 실천 기제로 전혀 무가치하다고 무시할 수 없고 실천해야 할 당위에도 동의하지만 이를 명분으로 작가들의 자유로운 발상과 상상을 제약하고 탄압의 근거로 기능하는 것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지난 24일 입장을 발표한 뒤 25일 오전 현재까지 접속자가 많아 웹툰협회 홈페이지가 다운됐다. 

▲ 24일 오후 웹툰협회가 기안84 관련 입장을 발표한 뒤 25일 오전 현재까지 웹툰협회 홈페이지가 다운된 상태다.
▲ 24일 오후 웹툰협회가 기안84 관련 입장을 발표한 뒤 25일 오전 현재까지 웹툰협회 홈페이지가 다운된 상태다.

 

이에 기본소득당 젠더정치특별위원회는 24일 “웹툰협회가 지키려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가부장적 규범이다”라는 반박 입장을 냈다. 기본소득당은 “웹툰협회는 문제제기와 비판의 함의는 진중하고 무겁게 받아들이고 통감한다면서 그에 대한 어떠한 책임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비판에 공감한다면서 반복적으로 이를 ‘특정 사회적 아젠다’로 축소하며 ‘특정 정파성과 주의에 경도된 PC(정치적 올바름)의 관점’으로 배격하고 있는데 우린 바로 그 시각과 싸우고자 한다”고 했다.

기본소득당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던 한국의 독재 시절은 끝났다”며 “오히려 이제는 면접에서 페미니스트라고 답변하면 취업할 수 없거나, 예스컷 운동이 지지를 받거나, 성평등을 지지하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으면 직장을 잃는, 민주화 이후의 새로운 검열 시대”라고 했다. 이어 “웹툰에 성평등 관점을 요구하는 것 역시 특정 아젠다의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공공선을 추구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웹툰협회가 만화계 성폭력대책위를 비판한 것을 두고 기본소득당은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이어져온 시간 동안 반드시 필요했을 역할들을 오로지 대책위에만 맡겨둔 채 웹툰협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의 인정”이라며 “위력행사는 만화계 내 성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해온 대책위의 목소리를 경청하기보다 성명을 통해 공격하기를 택한 웹툰협회가 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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