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미디어 생태계를 바꿔놓았습니다. 특히 지역 방송은 생존이 위태로울 정도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비단 코로나19 영향 때문이 아니라 지역 방송은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위기가 계속돼 왔습니다. 미디어오늘은 학계와 시민단체, 지역방송 구성원들의 기고글을 통해 지역 방송의 정체성부터 다매체 환경에 놓인 지역 방송의 자구 노력, 나아가 정부의 지역방송 정책에 대한 방향을 묻고자 합니다. 지역방송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잘못하고 있는 부분도 따끔하게 질타하는 목소리를 담겠습니다. 지역 방송 존재가치를 묻는 독자들에게 조그마한 실마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해당 릴레이 기고는 미디어오늘과 MBC계열사 전략지원단이 공동기획했습니다. - 편집자주

 

지난 2010년 당시 MBC 본사(대표이사 김재철)는 진주와 마산MBC 광역화 계획을 발표하고 전례 없이 양 회사에 겸임사장을 내려 보냈다. 지역MBC 구조조정의 신호탄이자 본격적인 광역화 선언이었다. 당시 노동조합 진주지부장을 맡고 있던 나는 일방적인 통폐합에 반대하며 1년 넘게 통합 반대 투쟁을 주도했고 이로 인해 해직이란 아픔을 겪어야 했다. 통폐합을 반대했던 가장 주요한 명분은 지역성 말살이었다.

같은 경남이라 해도 당시 진주와 마산MBC는 1960년 대 후반 각 지역의 필요에 의해 지역민들이 주도적으로 민방을 설립하면서 이후 MBC 네트워크에 편입되었고 50년 가까이 지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하루아침에 회사가 사라지고 합병된다는 소식은 특히 진주를 비롯한 서부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극심했다. 지역성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소식과 문화가 방송을 통해 자주 접할 수 있어야 실현될 수 있는 가치이기에 권역이 넓어지면 자칫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지역의 방송소외가 불을 보듯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지역MBC는 그 태생부터가 지역주민의 염원이었기에 지역민들은 지역MBC를 우리 것, 우리 지역의 자산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매우 뚜렷하다. 지역MBC가 반세기 넘게 지역을 지키며 생존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부족해도 “우리 것, 우리 방송”이라 여겨 주었던 지역 시청자들의 신뢰와 사랑 덕분이었다.

2018년 MBC경남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지역성과 프로그램 질적 향상을 모두 꾀하기 위한 방법으로 창원과 진주에 소재한 양 연주소의 역할을 보다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즉 각각의 권역이 가지는 지역성을 구현하면서도 MBC경남이 보유한 경남 도권 전체를 아우르는 광역의 장점을 동시에 살리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동안 지체돼 왔던 진주와 창원 양 연주소의 방송시설과 기존 수익사업 등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시청자의 시청 패턴이 급변하면서 뉴미디어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조직개편과 투자 또한 병행했다. 오랜 공정방송 투쟁을 마무리하고 서로 격려하며 우리가 최선을 다 한다면 MBC의 경쟁력은 되살아 날 것이고 최고 방송사의 지위 또한 어렵지 않게 회복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완전히 동떨어져 진행되고 있었다.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지상파 방송사가 현재 겪고 있는 심각한 위기로 인해 앞서 제기했던 권역과 광역의 장점을 모두 활용해 지역성을 구현하는 구상은 사실상 어렵게 됐다. 더 이상 두 개의 연주소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지역성 구현은 고사하고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조만간 연주소 일원화를 단행해 인력을 한 곳으로 모아 비용을 절감하고 프로그램도 선택과 집중을 통한 축소가 불가피하다.

특히 올해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MBC경남 방송 외 수익 대부분이 궤멸적인 타격을 입으면서 역대 가장 심각한 경영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어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방송의 특성상 지역 주민과 함께 호흡하는 다양한 사업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한 곳으로 모으는 행사사업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가 우리 사회 전반에 비대면 문화를 확산시키면서 그나마 수익으로 연결할 수 있는 행사사업들의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정적인 수입을 담보할 기타 사업들에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투자금을 회수하고 상응한 이익을 창출하기 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으며 혹여 사업이 실패할 경우 이를 상쇄할 수 있는 여유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결국 주요 재원인 광고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열악한 지역 여건 상 이를 뒷받침할 자체 수익 창출은 희망사항일 뿐 요원한 일이다.

▲ MBC경남 방송권역. 사진=MBC경남 홈페이지
▲ MBC경남 방송권역. 사진=MBC경남 홈페이지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방송은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 부어야 할 UHD 전환을 앞두고 있다. 여러 차례 UHD 도입 연기를 주장하는 것은 앞서 설명한 작금의 상황이 매우 엄중할 뿐만 아니라 이를 감당할 여력이 실제로 없기 때문이다. 과거 지상파 방송의 황금기 때 부여된 각종 규제의 비대칭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공적 의무를 다해야 하는 상황은 답답할 따름이다.

어려운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지원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역방송 구성원들의 노력으로 지난 2014년 지역방송 지원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특별법에 따라 특별기금의 형태로 지원기금이 조성되지 못하고 방송발전기금에 편입되면서 매년 정부의 예산 기조에 따라 답보 혹은 삭감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역방송의 현실을 감안해 작년 100% 증액을 역설하고 이해를 구했지만 실현되지 못했고 최근 내년 예산이 오히려 삭감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면서 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 경상남도의 경우 특별법을 근거로 2018년 조례제정을 거쳐 지역 지상파 방송의 제작지원에 나서면서 많은 도움이 되고 있지만 지자체의 여건 상 이 또한 넉넉한 수준은 아니다. 이렇게 지원은 존재하지만 제작 혹은 경영상 실질적인 지원이라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적자구조의 고착화는 필시 제작 인력과 프로그램 축소로 이어지게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프로그램의 질은 갈수록 떨어져 지역 공기(公器)로서의 역할은 중대한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지역 사회를 주제로 치열한 프로그램 기획에 매진해야 할 지역방송 구성원들이 사회적 가치보다 수익성에 내몰릴 경우 어떠한 일이 벌어지겠는가? 지역에는 사안 별로 수많은 이해 당사자와 갈등이 존재한다. 지역방송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인 지역사회 갈등 조정과 균형발전은 이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보도하는 언론의 역할 속에 실현될 수 있다.

지역균형발전에서 더 나아가 지방분권 등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큰 방향에 대한 이견은 크지 않다. 이에 부합한 지역방송의 역할은 보다 더 강화되는 것이 순리다. 따라서 자체적인 생존 노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는 만큼 정책적 차원의 지역방송 생존 전략이 동시에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일각에선 경영난을 이유로 문을 닫는 지역방송을 방치하는 것이 시장 질서에 부합하다는 논리가 고개를 드는 모양이다. 실로 경악할 일이다. 과거 지역방송의 위기 때마다 지역 구성원들은 그에 합당한 정책을 개발해 건의해 왔고 때론 희생을 감수하며 극한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늘 변두리 취급을 받으며 실효성 있는 제도 도입은 번번이 외면 받아 왔다. 과연 급변하는 방송 환경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지금의 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오로지 지역 방송사들에게만 전가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MBC 자체적으로 이 문제를 풀기 위한 길을 찾고 있다. 하지만 내부 공론화 과정에서 해답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본사를 포함해 지역MBC 각 사의 이해관계가 존재하기에 하나 된 의견 통일을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이 과정에 정부 차원의 지역 공영방송에 대한 명확한 입장정립이 필요하다. 사실상 부재했던 지속 가능한 지역방송 정책 수립을 함께, 그것도 시급히 모색해야 한다.

MBC경남을 비롯한 지역MBC는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자체적인 구조조정에 이미 들어갔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방송의 자구책 마련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오랜 기간 지역방송의 위기론은 상시적으로 우리의 목을 죄어 왔고 사세 확장은커녕 축소에 축소를 거듭해 온 것이 유감스럽게도 지역MBC의 역사다. 결과적으로 지역 공영방송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조차 버거운 현실에 더해 감당할 수 없는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정부는 방송 정책상 지역 언론의 공영성 확보라는 대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지역방송사들의 절박한 고통을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 이미 한계가 노정된 지역MBC의 강도 높은 자구책을 방관만하는 자세에서 공적 책무를 강화하는 조건으로 그에 합당한 실질적 지원 방안을 제시하는 적극적 역할을 요구한다.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말 시간이 없다.

▲  정대균 MBC경남 대표이사 사장. 사진=MBC경남 홈페이지
▲ 정대균 MBC경남 대표이사 사장. 사진=MBC경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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