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존재하는 의혹을 되새김질한 게 아니라 (김어준씨가) 새 의혹을 제기했다.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려면 다른 언론사들이 하는 정도의 팩트체크와 반론 정도는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10분 가까이 의혹을 제기한다. 사회자가 의견을 표명할 수 있지만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문제가 없나?”(이소영 위원)

TBS 라디오 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진행자인 김어준씨는 지난 5월26일 방송분에서 “누군가 자신들 입장을 반영한 왜곡된 정보를 (이용수) 할머니께 드렸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문을 읽어보신 분이 별로 없겠지만 읽어보면 할머니가 쓰신 게 아닌 건 명백해 보인다”, “그 도움을 줬다는 분들이 정의연 자리를 대신 차지하려는 것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추정했다” 등의 의혹성 발언을 10분 가까이 이어갔다.

▲지난 5월26일 방영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방송화면 갈무리. 사진=TBS 유튜브채널.
▲지난 5월26일 방영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방송화면 갈무리. 사진=TBS 유튜브채널.

이날 방송 이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이용수씨의 배후설이 제기됐다. 당시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의원을 비판했던 이씨를 겨냥한 음모론이었다.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법정제재가 추진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원회(방통심의위 방송소위·위원장 허미숙)는 19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회의를 열고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방송심의규정 ‘객관성’ 조항을 위반했는지 심의한 결과 법정제재 ‘주의’를 결정했다. ‘주의’는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심사 때 감점 반영되는 중징계다.

이날 TBS 관계자들과 심의위원들은 설전을 벌였다. 이날 의견진술자로 출석한 송원섭 TBS 제작본부장이 “사전에 이런 이야기를 하겠다고 제작진과 사회자가 이야기를 나누긴 했다”고 말하자 허미숙 위원장은 “(이용수 할머니 배후설 관련) 별도 원고는 있지 않았다는 건가? 진행자가 본인 생각을 말한 일종의 칼럼, 논평, 해설이었던 것이냐”고 물었고, 이에 송 본부장은 “맞다”고 답했다.

송 본부장은 “당시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의 지난 30년 활동이 폄훼되는 분위기였다. 출연자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언급하는 건 쉽지 않았다”고 토로한 뒤 “그동안 이용수 할머니가 썼던 표현과 어휘가 너무 달랐다. 기자회견문 자체가 직접 쓴 게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뉴스공장에서 의혹 제기 후 수양 딸 등 7~8명이 함께 기자회견문을 썼다는 보도가 나왔다”고 해명했다. 강진숙 위원은 “관련자들을 인터뷰할 생각을 안 해봤냐”고 묻자 양승창 TBS 뉴스공장 PD는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상수 위원이 “진행자 발언을 보면 추정한다는 말이 많다. 누군가 의도가 반영된 거라고 추정하고 결론 내렸다고 했다. 대단히 위험한 것 아닌가”라고 묻자 송 본부장은 “맞다. 어떤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합리적 추론 과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에 박 위원은 “교통방송이 왜 이렇게 기자회견문 배후를 궁금해 하나. 대통령 연설문은 대통령 혼자 쓰나. VIP 연설문도 여러 명이 함께 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에 대한 배후를 묻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심의위원 3인(허미숙 위원장, 강진숙·이소영 위원)은 법정제재 ‘주의’를, 박상수 위원은 법정제재 ‘관계자 징계’를 주장했다.

이소영 위원은 이 같은 논의 과정에서 이용수씨가 소외되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 위원은 “사회자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사회자는 사실이 확인된 상태에서 논평하거나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사회자가 개입해서 시청자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TBS가) 진영논리에 충실하려는 게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의연과 윤 의원을 공격하는 사람들이나 방어하는 사람들 모두 이용수 할머니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왜 해소되지 않아 이런 갈등이 나오는 것인지 외면하고 있다”며 “이용수 할머니는 논쟁의 당사자임에도 논의 과정에서는 소외되고 있다. 이 방송이 객관성을 위반해서 불쾌했던 게 아니라 다뤄야 하는 본질은 눈을 감고 진영논리에 충실했던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에 불쾌감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홀로 ‘관계자 징계’를 주장한 박상수 위원은 “방송에서 진행자가 객관적 사실관계 확인 없이 추정을 근거로 결론을 내린다는 건 위험하다. 김어준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4기 방통심의위) 출범 이후 법정제재를 가장 많이 받았다. 가볍게 여기고 무시하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이 프로그램은 개선 의지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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