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부터 올해 4월까지 2년 4개월간 부산에서 노동자 124명이 일하다가 죽었다.” 이달 국제신문의 ‘산재는 기업범죄다’ 기획기사의 첫 문장이다. 최근 3년여 부산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사건을 조사한 이 기획은 법원이 산재를 대하는 안이함을 다뤘다. 노동 현장에선 ‘기업 살인’이라고 부를 만큼 중대한 구조적 사건으로 보는 산재가 “법원에선 ‘단순 사건·사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분석 대상은 판결문이었다. 방법으론 ‘텍스트 마이닝’을 골랐다. 문서상 특별한 규칙 없이 나열된 문자 정보들을 컴퓨터 자연 언어 처리 기술을 통해 정보 간 관계를 분석하는 기법이다. 판결문 중 ‘이유(범죄 사실, 양형 이유 등)’에 해당하는 문장을 취합해 명사·형용사·부사·동사 1588개를 추출하고 사용 빈도가 높은 19개 단어를 찾아냈다. 첫 번째 기사 “참사 부추기는 솜방망이 처벌”에 실린 ‘부산지역 산재 판결 양형 연결망’ 그래프가 그 결과다.

▲ 국제신문 8월4일자 3면.
▲ 국제신문 8월4일자 3면.

취재 기자는 권혁범·신심범·임동우 기자다. 임동우 기자는 부산 북부 지역을 취재하는 사회부 기자고, 나머지 둘은 기획탐사팀 소속이다. 임 기자가 기획을 처음 제안했다. 임 기자는 “북부를 출입할 때 3일 연속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움직임도 활발한 상황이었다.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출입 기자로서 한 사고를 뛰어넘어 여러 사고를 종합해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며 취지를 밝혔다. 

2017년부터 지난 5월까지 부산 지역 법원에서 확정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81건의 판결문을 모았다. 지난 5월 말 시작해 3개월여 간 작업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판결 경향성을 분석하고자 텍스트 마이닝 기법을 택했다. 

주요하게 세 갈래 결과가 발견됐다. 먼저 피고인 154명은 크게 3개 그룹으로 나뉘었다. ‘반성’ ‘합의’ ‘피해자 과실’과 연결된 A그룹은 벌금형이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중대 혐의’이면서 ‘추락’ ‘사망’ ‘외력’ ‘과실치사’ 등과 관련된 B그룹은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받은 비율이 높았다. ‘사망’ ‘과실치사’ 책임은 인정됐지만 ‘중대 혐의’와는 연결 정도가 약한 C그룹은 벌금형이 더 많았다.

가장 가벼운 처벌을 받은 A그룹 모두가 ‘기업’(법인 피고인)이었다. 처벌 정도가 높은 B·C그룹 대부분은 사람(안전관리 책임자)이었다. 즉 기업 대다수가 중대 혐의는 인정되지만 합의와 반성을 했고 피해자 과실도 인정된다는 이유로 가벼운 처벌을 받고 있었다. 

이에 더해 기업이 둘 이상 기소된 사건에선 원청이 하청보다 가벼운 형을 받았다. 일례로 한 오피스텔 공사 현장에서 50대 노동자가 추락 사망한 책임으로 “하청 회사는 벌금 800만원, 원청 회사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는 식”이다. 

임 기자는 “법원이 산재를 단순 사고 정도로 취급하는 경향성에 놀랐다”며 “피고인의 전과가 없거나 자백, 반성, 합의 등의 명목을 앞세워 형을 감경해준다. 81건 판결 중 피고인이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가 없다. 벌금형 경우도 평균을 내보면 1인당 ‘567만원’이다. 대법원 양형 기준을 한참 밑돈다. 중한 처벌이 능사가 아니겠지만 재발방지를 위해 기업을 유인할 수 있을까”라 반문했다.

보도는 법원의 기계적 형평성도 꼬집었다. 노동자가 안전수칙을 어긴 상황의 구조적 원인을 숙고하지 않고 ‘피해자 과실’로만 정리하는 논리다. 기사는 탱크로리에 든 농도 98%의 황산을 다른 탱크로리에 옮기다 숨진 한 노동자의 사례를 들었다. 호스가 펌프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황산을 분출한 것이다. 

▲ 국제신문 기획 ‘산재는 기업범죄다’를 보도한 권혁범·신심범·임동우 기자(왼쪽부터).
▲ 국제신문 기획 ‘산재는 기업범죄다’를 보도한 권혁범·신심범·임동우 기자(왼쪽부터).

이 사건을 심리한 법관은 ‘피해자가 보호 장비를 착용하지 않았다’며 업체 사장에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보도는 “관련 법·지침은 안전관리 책임자가 지도·감독해야 할 다양한 상황과 행동, 의무를 설명한다. 노동자가 안전수칙을 어겼다면, 이를 관리하지 않은 책임자의 잘못이 크다”고 꼬집었다. 

임 기자는 “내 가족이 이런 산재를 당했을 때 법원이 책임자나 회사를 가볍게 처벌한다면 어떤 감정이 들지 생각하면서 기사를 읽어주면 좋겠다”며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의 슬픔과 답답함, 분노가 있을 것이다. 법원 판결문을 보면 정말 건조한데, 산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커녕 유족의 아픔조차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는 의구심이 있다”고 말했다. 또 “이 의구심 속에서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라고 물었다. 

아쉬운 점은 시민 알 권리에 대한 검찰의 비협조적 태도다. 취재진은 수사기관의 구형도 분석하기 위해 부산지검에 관련 정보를 공개 청구했다. 비공개 처분에 이의신청까지 했지만 검찰은 ‘향후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짧은 입장과 함께 또 기각했다. 이와 반대로 부산고용노동청은 산재 발생 건수부터 재해 내용 등을 요청한 취재진 청구에 정보를 공개했다. 

임 기자는 대안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을 언급했다. 정의당이 지난 6월 발의했고,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가 구성돼 활발히 논의 중이다. 중대재해 사건에 기업과 경영 책임자를 처벌하는 양벌규정을 두고, 기업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마련했다.

임 기자는 “제조업 기반의 부산은 수도권에 비해 인구 수는 적지만 인구 대비 산재사망률은 높다. 산재는 부산 지역의 심각한 문제”라며 “‘김용균법’(지난 1월부터 시행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제정됐지만 아직 현장에서 처벌받는 정도를 보면 실효성이 크지 않을 거라는 의구심도 든다. 이 경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필요성이나 이 법안 골자의 의미가 유효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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