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가 오는 9월부터 자사 메인뉴스에 수어방송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KBS가 지난 10일 가장 먼저 KBS ‘뉴스9’에 수어통역을 제공하겠다고 밝히자 MBC와 SBS도 준비하겠다고 밝힌 것.

이보다 앞서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등 11개 장애인 인권단체는 지난해 2월20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지상파 3사가 메인뉴스에서 수어통역을 제공해야 한다”며 진정을 넣었다. 인권위는 진정을 받아들여 지난 4월 지상파3사에 권고를 내렸다. 미디어오늘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김철환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활동가를 만났다.

-KBS가 지난 10일 메인뉴스에서 수어통역을 하겠다고 했다. 이어 MBC와 SBS도 메인뉴스에서 수어통역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어떤 과정이었나?

“지상파 3사 메인뉴스에 수어통역을 제공하라고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낸 건 2018년부터다. 이전에도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은 선거 방송뿐 아니라 국제 행사, 재난방송, 남북정상회담 등에서 수어방송을 제공하라고 말해왔다. 이에 더해 모든 방송사 메인뉴스에서 수어통역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8년 문제를 제기했을 때 방송사들은 부정적이었다. 지난해 2월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냈고 인권위가 올해 4월20일 방송사가 메인뉴스에서 수어통역을 제공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인권위 권고가 각 방송사에 5월 중순 정도 전달됐을 것이다. 권고에 대한 답을 3개월 이내 해야 하는데 KBS가 가장 먼저 메인뉴스에서 수어통역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메인뉴스에서 수어통역을 한다는 것의 의의는 무엇일까?

“지상파 방송 메인뉴스의 수어통역 실시 결정은 특정 프로그램에 수어통역을 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상징성이 있다. 농인들도, 누구나 다 시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게 됐고 우리 사회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 ‘한국수화언어법’에 명시된 ‘한국어와 동등한 한국 수어’라는 문구가 실효성을 얻는 순간이라고 볼 수 있다.”

▲김철환
▲김철환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활동가. 사진=정민경 기자. 

-사실 KBS는 지난 5월 시청자위원회가 열렸을 때만 하더라도 메인뉴스 수어통역에는 다소 회의적이었다. “수어방송을 할 경우 우측 하단에 고정적으로 화면 제약을 받는데, 기타 다른 동영상 일부분이 훼손되는 면이 있어서 제작진 고민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논리는 10년 전이라면 통용됐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19 브리핑으로 국민들이 수어통역이 제공되는 화면에 더 친숙해지고 익숙해졌다고 본다. ‘K-방역’의 모범 사례로 알려지기도 했다.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이런 변화가 있다. 8월 초 미국 농아인협회가 워싱턴DC 법원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을 고소하는 일이 있었다. 백악관이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을 하면서 수어통역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방송은 공공재이고 KBS는 그 가운데서도 공영방송이다. 소수자 접근성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메인뉴스에 이미 자막방송을 하고 있는데, 수어통역을 또 추가해야 하냐는 말도 있었다.

“자막은 텍스트 언어고 수어는 시각적 언어다. 자막은 청각장애인에게 ‘자기 언어’라고 와닿지 않는다. 같은 문장이래도 텍스트와 수어를 놓고 보면, 수어를 자기 언어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수어통역이 더 직관적으로 와닿는다. 자막과 수어통역을 모두 넣는 것이 가장 좋다. 수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조어는 자막으로 보는 등 두 가지 모두 있어야 한다.”

(관련 기사: KBS 시청자위원 “메인뉴스에서 불법 촬영기기 사건 안 다뤄”)

- 지상파 3사의 수어방송 제공 발표를 어떻게 봤나?

“먼저 KBS가 이렇게 용기를 내준 것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MBC도 과거 1998년 자막방송을 가장 먼저 제공한 역사에 이어 이번에도 메인뉴스에 수어통역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참 감사하다. SBS는 상업방송인데도 긍정적 결정을 내려줬다. 이 역시 감사하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등 11개 장애인권단체는 2019년 2월20일 서울 저동 인권위원회 앞에서 ‘수어통역을 통한 방송시청권을 보장하라’ 기자회견을 연 뒤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사진=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등 11개 장애인권단체는 2019년 2월20일 서울 저동 인권위원회 앞에서 ‘수어통역을 통한 방송시청권을 보장하라’ 기자회견을 연 뒤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사진=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 1990년대 말 TV 자막방송 도입 시기에도 지금과 비슷했나?(편집자주 : 김철환씨는 1999년 TV 자막방송 도입을 통해 장애인 방송 접근권 제고를 위해 투쟁했다.)

“지금은 KBS가 가장 먼저 나섰지만 당시에는 MBC가 가장 먼저 나섰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를 막 시작했고 방송 개혁이라는 의제가 화두였다. 최근 ‘언론 개혁’ 의제가 강조되고 있는데 상황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1997년 IMF 상황이었다. TV를 만드는 가전업체들이 위기에 몰리니 TV자막 표준화와 자막방송 추진이 보류됐다. 그때 자막방송 실시를 위해 방송법과 장애인복지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애인도 방송을 봐야 한다’는 생각을 못하던 때였다. 방송법을 들여다봤는데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없더라. 그래서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언론시민단체에 방송법 개정에 장애인 인권을 위한 조항이 들어가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1998년 12월1일 대통령 자문기구로 방송개혁위원회(방개위)가 설치됐고 관련 규정을 공포했다. 그때 MBC가 공익성 강화 차원에서 TV자막방송을 가장 먼저 실시했다. 1999년 2월12일 한국 최초로 MBC가 자막방송을 실시한 배경이다. 이러한 흐름 위에서 1999년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됐고, 장애인의 정보접근권 관련 내용이 추가됐다. 2000년 방송법이 개정돼 ‘방송 소외 계층’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장애인의 정보접근권 문제가 방송 정책에 등장하게 됐다.”

-언제부터 장애인의 방송접근권에 관심을 갖게 된 건가?

“20대 중반 우연치 않게 수어와 점자를 배웠다. 수어를 배우고 청각 장애인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굉장히 화나는 일들이 많았다. 그들은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니 왕따를 당하거나 가족 내에서도 오해를 많이 받았다. 오해 때문에 칼부림이 나는 일도 있었다.

또 하나 계기는 1996년 겨울 에바다농아원에서 벌어진 사건들이었다. 에바다에 있던 농아 학생들이 배가 고프다고 항의하자 경찰들이 출동했는데 장애 학생들에게 권총을 겨누는 일이 벌어졌다. 이 역시 소통이 안 됐기 때문이다. 이후 에바다 재단의 비리 등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다. 에바다 재단 퇴진과 정상화 등을 요구하는 이들과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정상화를 요구하던 이들이 결국 쫓겨나 떠돌았다. 신문으로 이슈를 접하고 농아인협회에 팩스를 통해 ‘이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후 함께 집회에 참여하는 등 장애인 권리에 눈뜨게 됐다.”

1997년 한국농아인협회에 근무하고 있던 김씨는 TV자막방송 추진 후 장애인의 영화 관람을 위해 1999년부터 한글자막을 넣은 비디오테이프를 만들어 전국 농아인협회와 복지관에 배포하기도 했다. 1999년 영화 ‘쉬리’에 자막을 넣어 서울 송파 여성문화회관에서 상영했을 때 청각장애인들 반응은 뜨거웠다고 한다.

“그때는 정말 겁이 없었다. 자막뿐 아니라 휠체어장애인을 위해 영화관 앞좌석을 뜯어내는 운동을 하기도 했다. 장애인영화제를 시작하고 나서는 대여한 영화관의 동의를 얻어 좌석 30~40개를 뜯어내기도 했다. 물론 관람 이후 좌석은 복구했다. 2005년부터는 문체부에 관련 예산을 잡기도 했다. 현재는 안착됐다고 본다.”

- 앞으로 어떤 과제들이 남아있을까?

“방통위의 요구했던 내용은 향후 5년 동안 수어통역방송 20%를 목표로 단계적으로 올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한 스마트수어방송의 확대도 필요하다. 스마트수어방송 서비스는 아직 보편화하지 않았지만, 이 서비스는 기존 방송과 달리 방송영상과 수어영상을 각각 방송망과 인터넷망으로 제공하고 수신기에서 두 영상을 한 화면에 재생해 수어영상의 크기 등을 조절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100% 수어 방송이 가능하다. 그러나 스마트수어방송이 완전히 정착하지 못한 상황이다. 의지와 함께 예산 확보 등 수어통역방송 비율을 점차 확대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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