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 4개월이 흘렀다. 여당의 압도적 승리로 영향력이 줄어든 정의당과 미래통합당은 총선 이후 각각 혁신위원회(혁신위)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꾸려 총선 이후를 준비 중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의당은 진단과 대안마련에 실패했고, 통합당은 이에 성공했다는 평이 가능해 보인다. 

13일 오전 11시 국회 본관 223호에선 정의당이 지난 두달반 정도 운영한 강령개정을 1번으로 담은 혁신위 결과물을 내놨다. 같은시각 같은층 228호에선 미래통합당 정강정책개정특위가 10대 정책을 브리핑했다. 이날 오전 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는 호남 출신의 정운천 의원을 국민통합특위 위원장으로 의결했고, 총선백서제작특위는 이날 총선백서를 내놨다. 또 통합당은 이날부터 국민들을 상대로 당명개정 아이디어를 받기로 했다. 

정의당 혁신위 기자간담회에서 장혜영 혁신위원장은 “정의당은 민주주의자들의 정당이고 하나의 의견이 있으면 다른 의견이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정당”이라며 “이를 모아내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라고 입을 열었다. 혁신위는 초안 발표 이후 ‘알맹이가 없다’, ‘보고서에 왜 여러 의견을 다 담을 거면 혁신안을 왜 했느냐’ 등 쏟아지는 비판에 직면했는데 관련 고민이 담긴 발언이다.  

▲ 장혜영 정의당 혁신위원장이 13일 국회에서 열린 혁신안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정의당
▲ 장혜영 정의당 혁신위원장이 13일 국회에서 열린 혁신안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정의당

혁신안은 총 14가지 내용이다. 강령개정, 당원 직접민주주의, 당권제도, 당원교육, 조직문화, 대의기구(의결체계), 지도체제, 청년정의당, 부문·직능·과제별위원회, 지역강화, 당무시스템, 기관지 및 당 메시지 업무시스템, 재정혁신을 위한 제언 등이다. 10가지 이상이 당 내부의 이야기다. ‘국민을 위한 메시지는 무엇인지’ 한 기자가 묻자 장 위원장은 “당명 개정시도 방안도 있었지만 뚜렷한 정체성을 만드는 시간이 필요해 강령 개정을 권고했다”고 답했다. 

‘가장 치열하게 토론했던 부분이 무엇인지’ 다른 기자가 묻자 장 위원장은 “한가지가 아니었다”고 답했다. 성현 혁신위원이 “부대표를 늘리는 것”이었다며 “혁신은 사실상 실패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혁신안에는 부대표 5명으로 늘리는 안을 넣었다. 성 위원은 “부대표가 5명이 아니라 3명이어서 총선에서 실패했나 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라며 “혁신위는 심상정 대표의 책임 면피용으로 만든 기획”이라고 지적했다. 

▲ 정의당 혁신위가 1번으로 제시한 강령 개정에 담아야 한다고 권고한 문제의식 6가지
▲ 정의당 혁신위가 1번으로 제시한 강령 개정에 담아야 한다고 권고한 문제의식 6가지

그러자 장 위원장은 “짧게 해달라”고 수차례 제지했고 결국 위원장 외 다른 위원의 발언권을 회수했고 간담회 끝난 뒤 백브리핑에서 기자들과 대화하도록 했다. 혁신위원들이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위원장 옆에 앉아는 있되 이견은 말할 수 없게 됐다. 

같은시각 통합당은 새 정강정책 첫 조항에 기본소득을 명시했다고 발표했다. 경제민주화 구현, 저탄소 청정에너지 혁명, 복지사각지대 해소 등 진보 의제도 담았다. 정치권에서 논란이 된 국회의원 4연임 금지 조항, 피선거권 연령 18세 인하, 권력형 비리 공소시효 폐지 등도 정치개혁 과제로 내놨다. 

통합당 총선백서를 보면 자신들이 왜 선거에서 졌는지 10가지 항목으로 평가했다. 대선 이후 이어진 중도층 지지회복 부족, 선거 종반 막말 논란, 공천 문제, 전략 부재, 탄핵에 대한 입장, 40대 이하 외면, 코로나19 방역 대통령 긍정평가, 대선후보군 부족, 공약부족, 정부의 재난지원금 추진 등이다. 

최근 당 지도부가 연일 호남 등 수해복구 현장에 찾아가고, 호남출신 정운천 의원을 국민통합위원장으로 임명한 것 등을 종합하면 통합당은 자신들의 과오를 진단·반성하고 정체성을 고민하며 국민 요구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진정성을 의심할만한 모습도 적지 않지만 국민정서와 동떨어졌던 정당이 눈높이를 맞춰보겠다는 식의 ‘쇼’라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4개월 만에 호남 지지율이 2배나 올랐다. 

▲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주재의 비상대책위원회의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미래통합당
▲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주재의 비상대책위원회의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미래통합당

두 야당은 왜 이런 차이를 보였을까.

일단 총선에 대한 진단부터 달랐다. 총선 당일 황교안 당시 대표는 자리에서 물러났고 외부인사인 김종인 위원장을 영입해 비대위를 꾸렸다. 총선에서 패배했다고 진단하고 대표가 책임진 것이다. 김 위원장에 대한 당내 반발이 거셌지만 통합당은 총선 당일의 진단을 바꾸지 않았다. 최근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반사이익으로 통합당의 지지가 오른다는 것을 인지하고 서울시장과 대선주자 찾기와 국민 다수를 위한 정책마련에 주파수를 유지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정의당의 진단은 달랐다. 지난 국회서 2석이던 지역구가 1석으로 줄었고 선거제 개혁에 더해 민주당이 180석 가까운 초거대정당이 되는 분위기에서도 의석수가 늘지 않았는데도 총선 패배로 인식하지 않았다. 조국 사태와 비례연합정당 논의·공천 과정에서 당원들이 대거 빠져나갔고 교섭단체(20석)를 꿈꾸다 9.6% 득표에 그쳤지만 결과적으로 지난 총선보다 득표가 늘었다고 봐서다. 투표 다음날 중앙선거대책위 해단식에서 심 대표가 눈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심 대표는 물러나지 않았고, 대신 정의당 비례대표 2번으로 선출된 장혜영 의원이 혁신위원장을 맡았다. 장 의원은 공천과정과 총선 결과에 대한 문제를 냉정하게 진단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내부인사다. 지도부가 책임지고 비대위를 꾸린 통합당과 지도부가 숨어있은 채 초선 비례의원에게 권한도 주지 않은 채 위원장을 맡아 혁신위를 꾸린 정의당은 출발부터 달랐다. 

▲ 심상정 정의당 대표. 사진=노컷뉴스
▲ 심상정 정의당 대표. 사진=노컷뉴스

혁신안 초안 발표 당시 가장 주목을 받은 건 당비를 1000원으로 낮출 것인가의 문제였다. 현실적으로 민주당을 뽑았지만 가슴 한켠에 남는 부채감, 진보정당이나 노회찬에 대한 미안함에 정의당에 가입하거나 당 의원에게 후원금을 보내는 움직임이 있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인위적 아이디어였다. 당시 통합당은 김 위원장이 던진 기본소득 논의, ‘보수’를 쓰지 말자는 제안, 5·18을 강령에 넣는 방안 등 수많은 아이디어가 당 안팎에 유통될 때였다. 

예상대로 총선 패배나 탈당한 당원들에 대한 분석은 혁신안 최종안에도 없었다. 당 위기에 대한 진단이 없으니 당 내부의 이슈인 ‘집단지도체제로 바꾸자’, ‘부대표를 늘려야 한다’는 논의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다. 

이정미 전 대표가 혁신안 공개토론회에서 지적했듯 집단지도체제로 바꾸면 당 결정, 선거결과 등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혁신위에서 단순 이견이 아닌 불협화음이 흘러나오고, 결국 혁신안 1번이 강령개정 방향을 권고하는 수준 정도인 것에 대해 당 안팎에서는 ‘18명의 혁신위원이 대화와 토론으로 합의를 이룬다’는 비현실적 조건부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성현 위원이 혁신위 게시판에 올린 글을 보면 ‘정의당 게시판 전체공개’를 요구했다. 현재 정의당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이다. 집단지도체제를 말하며 민주적인 모습을 강조하지만 당 게시판조차 비공개로 운영했던 것처럼 여전히 혁신위의 많은 부분이 일반 당원이나 국민에게 공유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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