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의 지난 6일자 곽병찬 비상임 논설고문 칼럼을 두고 서울신문 내부에서 기자들의 비판 성명이 잇따라 게재되고 논설실장과 편집국장이 이견을 내놓는 등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해당 칼럼 내용이 편집국 방향과 다르더라도 ‘표현의 자유’로 봐야 한다는 의견과 ‘다른 목소리가 아닌 틀린 목소리’라는 의견이 부딪히고 있다. 

앞서 곽병찬 서울신문 논설고문은 “광기, 미투를 ‘조롱’에 가두고 있다”라는 칼럼을 통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 피해자 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의 발언을 박정희 독재정권의 긴급조치에 빗대어 비판하고, 진상규명을 원한다면 피해자 휴대전화를 수사기관에서 포렌식을 통해 증거를 찾으면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곽 고문의 칼럼은 지면에는 보도됐지만 온라인에는 게재되지 않았다. 편집국의 문제 제기에 따른 조치로 편집국 기자들은 고광헌 서울신문 사장과 문소영 논설실장, 안미현 편집국장 등 책임자들에게 △해당 칼럼이 지면에 실리게 된 과정 △내부 문제제기에도 칼럼을 내리지 않은 경위 △최종적으로 이 칼럼을 내릴 수 없다고 판단한 주체 △최종 판단의 배경과 이유 △이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을 수 있는 대책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8월6일 서울신문 곽병찬 칼럼.
▲8월6일 서울신문 곽병찬 칼럼.

문소영 논설실장은 지난 7일 사내게시판 글을 통해 곽 고문 칼럼 논조에 동의하진 않지만 칼럼 몰고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실장은 “‘곽병찬 칼럼’이 주장하는 바를 논설실장은 동조하지 않음을 알려드린다”라면서도 “해당 원고가 편집국의 취재 방향과 논설실의 사설 방향과는 맞지 않지만 지면에 싣기로 한 이유를 지난 5일 제작회의에서도 밝혔다”고 전했다. 

이어 문 실장은 ‘당신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의 말할 권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볼테르의 말을 인용하며 “논설실장이라고 해도 수용할 만한 칼럼만을 골라 게재하거나 대폭 수정, 몰고할 수는 없다”며 “논설실장의 성향은 다양할 것이고 사람에 따라 남용될 수 있기에 이는 방지돼야 한다”고 전했다. 

문 실장은 곽병찬 칼럼을 지면에 실은 것이 ‘표현의 자유’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안미현 편집국장은 해당 칼럼이 ‘표현의 자유’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안 국장은 8일 사내 게시글에 “곽 고문 칼럼을 표현의 자유 영역으로 봐야 한다는 논설실장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이 칼럼이 우리 지면에 실리는 것을 반대한 까닭은 ‘견해가 달라서’가 아니라 미투 사건 보도에 있어 서울신문 편집국과 논설실이 지향해온 피해자 중심주의에 위배되고 2차 가해를 안고 있어서”라고 밝혔다. 

안 국장은 칼럼 수정 전의 문제적 표현들과 수정 후 “신속한 진실 규명을 원한다면 피해자의 핸드폰을 포렌식해라”, “고소인의 진정성을 지키려면 기획의 가능성이나 정치적 의도에 대한 의문을 해명해야 한다” 등의 곽 고문 주장이 문제라며 “성폭력 피해 주장이 거짓이거나 조작된 것일 수 있다는 논리를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깔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 국장은 “표현의 자유는 우리 사회의 ‘합의’를 지키는 범위 안에서 보장돼야 한다”며 “미투, 형사재판, 차별혐오, 재난 질병 등 피해자가 분명히 존재하는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다칠 수 있기에 공감대를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왜 언론이 각각의 취재·보도 윤리를 따로 만들어가며 지키려 노력하겠느냐”고 전했다. 

서울신문 편집국 사회부 차장 역시 8일 사내게시판에 “피해자가 술자리에 간 것을 피해자답지 않다고 다그치고, 얼굴을 드러낸 채 피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공작’으로 몰고 가고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해놓고선 피해자에게 의혹을 규명하라고 겁박하는 칼럼은 글이 아니라 피해자의 목을 내리치는 칼날”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해당 칼럼은 사실관계의 왜곡과 인권의식 결여, 과도한 정권 편향성 등의 문제가 있어 ‘다른’ 목소리가 아닌 ‘틀린’ 목소리”라며 “포용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52기 기자들도 10일 ‘우리는 부끄럽습니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서 52기 기자들은 “곽 고문의 칼럼에는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전형적 2차 가해성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다”며 “편집국에서 박원순 사건을 취재하고 보도했던 현장 기자들이 일관되게 견지한 ‘성추행 의혹 사건 진상 규명’,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 금지’ 등 보도 스탠스와도 크게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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