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겨울.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 한 골목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이사 트럭이 오갔다. 20년 가깝게 말로만 들리던 이문 3-1구역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상가 임차인과 세입자들에게 퇴거 통보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보상금 액수와 지급시기 등 재개발 조합과의 마찰도 잠시였고 지금은 거대한 가림막 뒤로 철거가 진행 중이다. 골목에서 장사하던 상인들과 세입자들 대부분은 옮길 가게와 월세 보증금에도 못 미치는 보상금만을 들고 뿔뿔이 흩어졌다.

정부의 주택공급 대책이 오락가락하는 동안 그 골목은 20여 년 넘게 장사를 하고 동네 안에서 이사를 다니는 세입자들이 스스로 만든 생태계가 되었다. 집주인이나 건물주 대부분은 골목을 떠났고 세입자와 상가 임차인들만 남았다. 기약할 수 없는 재개발에 건물은 낡아갔고 집주인은 어차피 소유권만 증명하면 되었기에 싼 월세와 보증금이 가능했다. 대학가 근처인 탓에 물가도 높지 않았고 서울 시내로 가는 교통도 편리했다. 덕분에 그 골목은 누구도 계획하지 않았지만 오래된 노포와 상점이 생겨났고, 비싼 전월세에 밀려온 세입자들이 몇 년이라도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퇴거 이후 몇몇 상인들은 몇 년 남지 않은 인근 재개발 구역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다른 세입자들도 멀리 가지 못했다. 서울에서 그만한 보증금에 월세를 받아줄 동네는 더 이상 없었다. 물론 그 조차도 감당하지 못한 이들은 의정부나 남양주로 떠났다.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자리에 어떤 아파트가 들어설지는 이미 휘경 2구역 아파트 단지가 보여주고 있다. 골목이 사라지고 들어선 아파트에는 담보대출을 받아 이사 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분양받은 집주인은 대출금을 갚는다며 세를 놓았고 세입자들도 대출로 받은 보증금으로 아파트를 한 가구씩 채웠다. 신축 아파트로 들어온 한 주민은 언제까지 이 동네에 살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아파트 입주가 시작됐을 때, 정문에는 “입주를 환영합니다”라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현수막이 걸렸다. 그제서야 남아 있던 주민들은 알았다. 재개발이든 그 무엇이든 단지 아파트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바뀌고 상권이 바뀌고 동대문구의 세입이 늘며 선거 표밭이 달라진다는 것을.

모두가 언제 갚을지 모를 빚을 지고 떠나며 들어왔다. 재개발이 계속 미뤄져서 크게 오르지 않은 월세에 안도하며 살던 때가 차라리 좋았다. 그만그만한 삶을 챙기며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이 떠밀려 갔고, 언제 떠날지 모르는 이들이 그 자리에 들어왔다. 그래도 이문동·휘경동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식당과 가게를 하시던 분들은 단골을 놓칠 수 없었고 세입자들도 이웃과 친구들을 떠나기 힘들었다. 하지만 말만 하지 않았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제는 서울 어디로도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이문동이 이문동인 것은 익숙한 가게와 식당, 이웃과 친구들 때문이지 동네 이름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이들이 떠나는 동네에 머물 이유는 없다. 이문동과 휘경동에 남은 재개발 구역 정비가 시작되면 더는 살 수 없을 것이다.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이 8월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주택공급확대TF회의결과 브리핑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이 8월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주택공급확대TF회의결과 브리핑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의 8·4 부동산 대책. 서울에 10만 호가 넘는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그나마 동네에 남아있는 주민들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공공 재건축”, “실거주자 우선”, “장기 공공임대”이라는 말들이 쏟아져도 그 아파트는 자신들이 살 수 없는 곳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아파트 층수를 올리며 공공택지를 활용한다고 해도 10만 호라는 물량만이 중요하지 그곳에 어떤 이들이 떠나고 어떤 이들이 들어올지 정부가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엄청난 물량의 주택 공급이 이뤄진다면 서울 곳곳에서는 대규모 인구 이동이 벌어질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재개발과 뉴타운 등으로 이미 부유하는 이들의 도시가 된 서울에서 그나마 한 뼘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이들조차 떠밀려 갈 것이다. 주택공급 물량 확대가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오래 살 수 있는 동네를 만들 수 있을까. 부동산 대책 뉴스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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