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의 피해자를 대리하고 있는 김재련 변호사를 비판한 서울신문 칼럼이 지면과 달리 온라인에는 실리지 않았다.

한겨레 논설위원과 편집인을 지낸 곽병찬 서울신문 비상임 논설고문의 지난 6일자 칼럼(“광기, 미투를 ‘조롱’에 가두고 있다”)이 온라인에 게재되지 않은 것이다. 칼럼의 사실관계가 틀렸을 뿐더러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서울신문 편집국 내부 문제 제기에 따른 조치다. 

곽 고문은 이 칼럼에서 “피해자를 의심하는 건 책임 전가이자 2차 가해”라고 주장한 김재련 변호사를 겨냥해 “의심해서도 안 되고, 문제 제기해서도 안 되며, 그저 믿고 따르라니, 어처구니없었다. 1970년대 긴급조치가 부활했나”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곽 고문은 김 변호사가 지난달 16일 “2차 가해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침묵하는 것도 2차 가해”라고 발언한 것을 두고 “긴급조치와 함께 ‘남한판 수령체제’를 옹위하던 국가보안법에도 그런 조항이 있었다. 부모나 자식, 배우자나 형제에 대해서까지 고발하도록 한 불고지죄”라며 “광기다. 불고지나 침묵의 죄처럼 양심의 자유를 유린하는 것은 없다. 정파적 광기, 증오의 광기는 지금 수십 년 동안 거대한 희생을 통해 쌓아올린 민주적 제도와 헌법적 가치, 이성적 판단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의 피해자를 대리하고 있는 김재련 변호사를 비판한 서울신문 칼럼이 지면과 달리 온라인에는 실리지 않았다. 한겨레 논설위원과 편집인을 지낸 곽병찬 서울신문 비상임 논설고문의 지난 6일자 칼럼이다.
▲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의 피해자를 대리하고 있는 김재련 변호사를 비판한 서울신문 칼럼이 지면과 달리 온라인에는 실리지 않았다. 한겨레 논설위원과 편집인을 지낸 곽병찬 서울신문 비상임 논설고문의 지난 6일자 칼럼이다.

그는 김 변호사를 겨냥해 “이른바 ‘박원순 전 시장 위력 성범죄’ 사건에는 대리인만 있다. 그는 성폭력 범죄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피해자 중심주의의 원칙을 저버렸던 인물”이라며 “대리인은 박 전 시장 핸드폰의 포렌식을 중단하도록 한 법원의 결정에 격렬히 항의했다. 상대의 핸드폰에 있는 성추행 증거라면 고소인의 핸드폰에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속한 진상규명을 원한다면 고소인의 핸드폰을 수사기관에서 포렌식해 증거를 찾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칼럼은 피해자 입장을 주요하게 전달하며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의 진상규명을 지속적 요구했던 사설 등 기존 서울신문 보도 논조와 큰 차이가 있다. 지면 보도 전날인 지난 5일 이 내용을 초판에서 확인한 서울신문 편집국 기자들은 이 칼럼을 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문소영 논설실장과 고광헌 편집인(서울신문 사장)이 이를 거절했고, 칼럼은 소폭 수정돼 지면에 보도됐다. 하지만 온라인 기사 출고 권한이 있는 서울신문 편집국은 홈페이지와 포털 등 온라인에 칼럼을 싣지 않았다.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을 취재하고 있는 서울신문 사회부에서도 반발이 터져 나왔다. 한 기자는 6일 사내 글을 통해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를 정면으로 겨냥한 곽 고문의 이번 칼럼은 매우 실망스럽고 걱정스럽다”며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를 드러내놓고 공격하는 글이며 논리적인 결함이 다수 있고 사실 관계가 틀린 부분도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 기자는 곽 고문 칼럼이 김 변호사 발언 등을 박정희 독재정권의 긴급조치에 빗대는 등 논리적 비약으로 채워졌고, 미투 사건에 대한 자의적 해석으로 점철됐으며, 김 변호사가 박근혜 정부 당시 화해치유재단 이사였다는 사실과 성폭력 피해자 대리인이라는 사실 사이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곽 고문이 칼럼을 통해 피해자에게 기획 가능성이나 정치적 의도에 대한 의문을 직접 해명하라고 요구한 것은 피해자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 기자는 곽 고문이 신속한 진상규명을 원한다면 수사기관이 피해자 휴대전화를 포렌식해 증거를 찾으라고 주문한 대목에 대해 “피해자는 이미 휴대전화를 경찰에 제출했었다. 앞서 지난달 8일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하기 전 민간업체에 휴대전화 포렌식을 의뢰해 박 전 시장이 보낸 텔레그램 초대메시지 등 증거물을 복원했고, 이 자료도 경찰에 낸 상태”라고 반박했다. 곽 고문 칼럼은 기초적 사실관계도 틀렸다는 것. 

이 기자는 “독자들이 곽 고문의 글을 서울신문이 박원순 사건을 보는 스탠스로 오해할까 두렵다”며 “아직 사실관계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증거를 근거로 피해자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 곽 고문 칼럼은 사실에 기초한 정론 형성이라는 서울신문의 존재 의미를 훼손하고 가해자 편에 선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 기자는 “기명칼럼이라고 해서 게재를 무조건 보장해서는 안 된다”며 “논리적 결함이 있는지, 신문의 편집 방향과 배치되는 글인지 꼼꼼히 따져 실어야 한다. 가판에 나갔는데 구성원들의 문제 제기가 있다면 해당 글을 검증하고 최종판에 실을지 논의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자는 고 사장과 문소영 논설실장에게 글을 싣게 된 경위와 편집국의 삭제 및 수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실장은 7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편집국에서 5일 초판 나온 뒤 칼럼을 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5일 오전 (휴가 중인) 편집국장을 대신해 들어온 편집국 수석부국장 등이 참석한 제작회의에서 우리 사설 및 기사 논조가 맞지 않는 (곽병찬 고문의) 글이 들어왔다고 알렸고, 싣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문 실장은 “원고가 실린 뒤 편집국 사회부 차장이 내게 전화가 와서 칼럼을 내려야 한다는 후배 기자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나 내 입장은 문제가 있다면 수정 등을 요청할 수 있지만 원고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이라며 “기자들이 생각하는 방향과 (외부) 원고가 다르다고 해서 그 원고를 편의에 따라 내릴 수 없다. 이는 표현의 자유 영역에 있는 것이고, 잘못하면 검열 문제가 생긴다”고 밝혔다. 

문 실장은 “(편집국 구성원들 요구는) 내 판단에 따라 원고를 몰고할 수 있는 권한을 내게 쥐여주고 흔들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이는 내가 생각하는 저널리즘 원칙과 부합하지 않는다. 이 같은 권한을 집행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내가 칼럼에 동의하지 않는 것과 칼럼을 싣지 않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고 말했다. 

문 실장은 “나도 곽병찬 고문 글에 흔쾌히 동의하지 않는다”며 “그렇다고 해서 그 글을 몰고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해당 칼럼을 포털사이트에 싣지 않는 것까지는 동의하더라도 서울신문 홈페이지 온라인 면에는 이 칼럼이 게재돼야 한다고 했지만 (온라인팀이 소속된) 편집국은 내 의견을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문 실장은 “경영진이나 편집인이 앞으로 자기 생각에 따라 칼럼 기고 여부를 결정한다면, 그때는 무엇이라 말한 건가. 원칙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면 안 된다”라며 “선전이나 선동으로 폭력을 유발하거나, 어마무지한 가해가 진행되는 수준이 아니라면, 미국과 우리 판례에 비춰봐도 칼럼 기고는 넓게 허용하는 게 맞다. 문제가 되면 김 변호사 반론을 받거나 언론중재위원회 판단을 받았으면 될 사안”이라고 말했다. 문 실장은 조만간 자신의 공식 입장을 사내 게시판 등에도 밝히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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