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미디어 생태계를 바꿔놓았습니다. 특히 지역 방송은 생존이 위태로울 정도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비단 코로나19 영향 때문이 아니라 지역 방송은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위기가 계속돼 왔습니다. 미디어오늘은 학계와 시민단체, 지역방송 구성원들의 기고글을 통해 지역 방송의 정체성부터 다매체 환경에 놓인 지역 방송의 자구 노력, 나아가 정부의 지역방송 정책에 대한 방향을 묻고자 합니다. 지역방송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잘못하고 있는 부분도 따끔하게 질타하는 목소리를 담겠습니다. 지역 방송 존재가치를 묻는 독자들에게 조그마한 실마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해당 릴레이 기고는 미디어오늘과 MBC계열사 전략지원단이 공동기획했습니다. - 편집자주

1992년에 출간되어 50여개 국 언어로 번역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책 <오래된 미래>. 서부 히말라야 고원의 작고 평화로운 지역 ‘라다크’가 서구의 개발에 의해 환경 파괴되는 과정을 보여준 이 책은 비단 환경문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지켜야 하는 것들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코로나로 인해 외국 여행을 가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국내 구석구석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지역이 눈에 들어온다. 지역에 며칠씩 머무르다보면 비록 여행자의 시선일지라도 지역의 역사, 유물, 산하, 지역 지킴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글로벌화와 중앙집중화라는 트렌드 속에서 지역은 우리가 지켜가야 하는 기본 가치로 남아 있음을 본다.

그러면서 지역방송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본다. 지역방송도 그러할까. 개인의 미디어 소비가 유튜브와 넷플릭스로 쏠리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방송의 존재가치는 무엇일까. 우리가 보호하고 지켜나아야 할 대상의 범주에 지역방송을 포함시켜야 하는 것인가. 코로나 이전까지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소 회의적이었다. 지역방송의 콘텐츠 생산량 자체가 적고 지역민들조차 잘 보지 않는 방송의 존재가치를 애써 인정하기 힘들었다. 지역협찬과 보도의 연결고리에서 나타나는 부조리, 경영의 비효율성,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 등 지역방송을 둘러싸고 간간히 전해지는 뉴스들은 지역방송 스스로 존재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보았다.

▲ 대중교통 이용 시 마스크 착용 의무화 시행 첫날인 5월26일 서울역 지하철역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 대중교통 이용 시 마스크 착용 의무화 시행 첫날인 5월26일 서울역 지하철역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우리가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존재의 형태가 모두 달라지고 있고 새로운 노멀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지역방송에 대해 그동안 가졌던 생각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세계적인 석학들도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에서 지역의 가치를 새롭게 조망한다. ‘세계화의 출구를 지역에서 찾아라’(원테쥔), ‘중앙집중식 인프라 구조를 전환하라’(제러미 리프킨),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회를 재구조화하라’(케이트 피킷), ‘지금은 과거 이뤄야 했던 개혁을 감행할 시간이며, 불의한 구조를 바로 잡을 시간이다’(유발 하라리)(안희경, <오늘부터의 세계>, 2020). 코로나를 경험하면서 글로벌로 뻗쳤던 원심력의 흐름이 지역으로 모아지는 구심력이 작동하고 있음을 본다. 지역방송 역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고 제대로된 위상을 정립해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상업방송을 근간으로 하는 미국에서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방송을 살리기 위해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미국 의회가 코로나 상황에서 공공방송재단 CPB(Corporation for Public Broadcasting)에 긴급자금 750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CPB는 1967년 공영방송법(Public Broadcasting Act)에 의해 의회가 만든 비영리조직이다. CPB는 의회로부터 연방자금을 받아 미전역 1500여개 공공라디오와 TV방송국에 배분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 의회가 CPB에 코로나 지원금을 지급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좋아하는 지역방송국과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시민단체 Protect My Public Media라는 단체에서 전국의 시청자들로 하여금 의회에 2만5천통의 이메일을 보내게 해서 만들어낸 결과라고 한다.

미국의 공공방송과 우리의 공영방송이 구조적으로 다르기는 하지만 왜 우리는 우리의 지역방송에 대해 지역시청자가 나서서 지켜주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인가. 코로나 상황에서 긴급생활 보조금을 얼마 받는가에는 관심을 가지면서 코로나로 인해 광고수입이 반토막나고 있는 지역방송의 어려움 따위는 안중에 없다. 이것이 지역방송의 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냥 이대로 두고 볼 일인가, 다시 생각해본다.

코로나가 발발하면서 독일정부는 코로나 사태를 다루는 모든 언론인에게 보조인력까지 포함하여 핵심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핵심 노동자’(key worker) 지위를 부여하였다. 영국도 의료진들뿐 아니라 국민생활에 꼭 필요한 직업군들을 핵심 노동자라 부르며, 이들의 원활한 임무수행을 위한 여러 지원들을 하고 있다. 오락프로그램이 아니라 뉴스를 다루는 방송인과 신문사 기자들을 모두 공적 서비스를 행하는 중요한 노동자로 부각시켰다.

우리는 2014년 각고의 노력 끝에 방송법에 있는 지역방송 관련 조항을 독립시켜 지역방송발전지원특별법(이하 특별법)까지 제정하였지만 지역방송의 현실은 왜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가. 특별법 제정 취지가 무색하다. 특별법 제7조제2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지역방송 발전지원을 위한 재원 확보 및 배분’ ‘지역방송의 경영개선을 위한 기반조성 지원’ 등은 법의 목적에 맞게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전국의 43개 중소·지역방송사가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받는 방송통신발전기금은 방송사당 한 해 1억 원 남짓. 각 지역 방송사들이 방송통신발전기금을 내고 받는 규모와 비슷하다. 안내고 안받으면 그만인 것을 특별법까지 만들어 지역성 지수관리를 해가며 오히려 규제비용만 들어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볼 일이다.

4기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역미디어 활성화를 주요 정책 중 하나로 내세웠는데 왜 실질적인 활성화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내다보며 특별법 제5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지역방송의 책무에 대해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며 정책을 재검토해봐야 한다. “지역방송은 정확하고 공정하게 보도하고 지역사회의 공론의 장으로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함으로써 지방자치의 실현, 지역경제의 활성화, 지역사회의 통합 및 지역문화의 전승과 창달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뉴노멀시대에 글로벌과 집중화는 더 이상 미래가치는 아닌 듯하다. 모든 것이 새로운 가치, 새로운 정상으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때, 지역의 가치가 새롭게 조망되고 있는 때, 지역방송이 지역가치를 보존하고 생산할 수 있도록, 지역방송이 뉴노멀 시대의 가치변화를 인지하고 제대로 된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김재영교수가 기고문(미디어오늘, 2020.7.31.)에서 “현실세계를 구성하는 미디어의 지역 감수성 부재가 뼈아프다. … 지역방송을 원점에서 다시 설계하라. 손쉬움 말고 옳은 방향에서” 라고 지적한 부분이 깊은 공감을 준다.

[ 관련 기고 : 미디어오늘) 방탄소년단과 아미, 그들로부터 배워라 ]

<오래된 미래>의 2007년판 서문에서 저자는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라고 적었다. 지역방송에 대한 정책방향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는 이제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 정인숙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 정인숙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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