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노조가 디자이너 이상봉씨의 노동착취를 고발하며 만든 온라인 게시물에 ‘저작권법 위반’ 판결이 확정돼 논란이다. 패러디 특수성인 ‘조롱’과 ‘비하’를 인정하지 않고, 원 저작자의 동의여부를 요건으로 내세우는 등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6년 전 한 온라인 포스터다. 패션노조는 “2014패션노조 연말시상식”이라며 노동착취로 물의를 빚은 유명 디자이너들 사진을 이용한 포스터 형태의 온라인 게시물을 만들었다. 패션노조는 특히 ‘견습 10만원, 인턴 30만원, 정직원 110만원’ 급여로 논란이 된 이상봉씨를 “올해의 청년착취대상 수상자”로 꼽았다.

이 게시물에 이씨의 누드사진 2장이 사용됐는데, 사진 원저작자인 사진작가 이아무개씨가 패션노조 측(베트맨D)을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2016년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강태훈)는 저작권법 위반을 인정해 벌금 200만원형을 선고했고, 3년여 만인 지난 6월 대법원 1부(재판장 박정화)가 원심을 확정했다.

법원의 판단 요지는 크게 세가지다. 우선 기존 사진을 특별히 변형하지 않고 사용한 것은 패러디가 아니라 ‘복제’이고, 원저작자 의도와 달리 사진에 등장하는 이상봉씨를 조롱하는 목적으로 사용했으며, 저작권자의 지속적인 삭제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 패션노조가 이상봉 디자이너실 열정페이를 고발하기 위해 만든 온라인 게시물. 사진=패션노조 제공
▲ 패션노조가 이상봉 디자이너실 열정페이를 고발하기 위해 만든 온라인 게시물. 사진=패션노조 제공

원심 재판부는 판결문에 “저작권자의 예술적 의도와 달리 이상봉을 조롱할 목적으로 왜곡돼 사용됨으로써 저작권자의 사회적 명예가 훼손됐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저작인격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적시했다.

패션노조 측에서 공익변론에 참여했던 오픈넷은 5일 “법원은 원 저작물에 대한 ‘조롱’과 ‘비하’가 패러디의 주된 창작 동기가 될 수 있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며 “법원이 패러디의 범위를 엄격하게 해석하는 이상 해학적 표현의 자유는 계속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원저작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아 문제라는 법원 판단에 대해서는 “패러디는장르적 특성상 원 저작물을 표시하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패러디된 저작물의 경우 대부분 사회적으로 유명하고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출처 명시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학계의 유력한 견해가 있다”고 밝혔다.

저작자 입장에서는 패러디 방식의 이용에 동의하기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반대할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저작자의 동의 여부’를 주요 판단 기준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저작자가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패러디적 표현에 형사처벌을 감내하는 결단을 요구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누드사진 자체를 특별한 변형 없이 사용한 것이 복제라는 시각도 반박했다. 오픈넷은 “원 저작물에 포함된 다소곳하게 인사하는 포즈의 누드사진은 전시회 포스터가 아닌 해당 피사체 인물의 행위를 비판하는 포스터에 자리하는 것만으로 새로운 미적 효용이 발생한다”며 “물리적 변형 유무라는 기계적 잣대만 적용하면 패러디 표현의 다양한 기획을 저해할 것”이라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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