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이 1대 주주인 기획재정부의 지분(30.49%) 인수 협상에 나서기로 했다. 서울신문 측은 3일 노동조합과 사주조합이 협상 공동 주체로 나서는 ‘정부지분 인수협상 및 독립언론을 위한 서울신문 준비위원회’를 꾸렸다. 언론사가 정부 소유로부터 첫 독립한다는 의미에 힘이 실리는 한편, 지분 인수가격 협상과 자금조달 가능성에 다양한 관측이 제기된다.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은 구성원 투표 결과에 따라 지난달 31일 기재부 측에 공문을 보내 지분 매입 의사를 밝히고, 정부가 향후 구체적 절차를 제안하도록 요구했다. 서울신문 구성원 415명이 참여하고 있는 우리사주조합은 지분 29.01%를 소유한 서울신문 2대 주주다. 서울신문은 편집국과 각 부서 구성원이 참여하는 실무단을 꾸려 기재부와 본격 인수 협상 준비에 돌입했다.

서울신문이 인수에 나서면서 일단 구성원들이 가장 우려하던 ‘호반건설 1대 주주 시나리오’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모양새다. 앞서 기재부 측이 6월 말 보유지분을 공개매각에 부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사주조합이 그에 앞서 한 달 내 인수 여부를 밝히라고 통보했다. 구성원 사이에선 3대 주주 호반건설의 적대적 인수합병 수순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건설자본 소유로 넘어가면 편집권 침해와 논조 보수화, 구조조정 등 ‘경영 효율화’ 정책을 겪으리라는 부정적인 전망이다.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은 지난달 22일 저녁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장형우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신문지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 제공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은 지난달 22일 저녁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장형우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신문지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 제공

‘우리사주형’ 방향 공감, 성공 시 보도 독립‧공정성 높아져

서울신문 구성원들은 우리사주형 모델에 공감대를 이룬 상태다. 장형우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신문지부장은 “조합원들은 여러 조건을 생각해보면 우리사주가 과반주주가 되는 것이 언론사로서 가장 무난한 방안 아니냐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록삼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장은 “서울신문이 2001년도 소유구조를 개편하면서 사주조합이 출범했다는 건 애당초 사주조합이 명실상부한 사주로 올라서겠다는 의지였다”고 했다.

기재부의 일방 통보에 떠밀린 면이 있지만, 서울신문 구성원들이 기재부 지분을 인수하면 정부 입김에서 벗어나 ‘독립언론’ 정체성을 갖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간 고질적인 낙하산 사장 선임구조 등 정부 개입 논란이 이어졌다. 현재 서울신문은 3% 이상 지분을 가진 4대 주주들이 모여 사장추천위를 꾸려왔다. 정부가 1대 주주인 데다 4대 주주인 한국방송공사(KBS)와 지난해까지 3대주주였던 포스코(현 호반건설이 인수)가 정부 입장에 동조해 3:1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사실상 정부가 사장을 선임하는 구조가 공고했다.

박록삼 조합장은 “정부는 10원 한 장도 지원하지 않으면서도 1대 주주 이름으로 지배권을 행사해왔다. 매번은 아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땐 논조가 확연히 보수화하는 등 정권과 사장의 성향에 따라 논조가 좌우되는 불안한 구조가 지속됐다”고 했다. 정부 지분 인수 방안이 실현되면 편집국 자체의 자율성이 커지면서 언론 독립성과 공정성이 높아질 수 있다.

고광헌 서울신문 사장이 지난달 말 전사원 만민공동회에서 언급한 경향신문이 대표적이다. 경향신문은 1998년 재벌그룹 한화로부터 벗어나 우리사주제도로 편집권 독립을 이뤄낸 뒤 논조가 확연히 바뀌었다. 현재 경향신문 임직원이 보유한 주식은 49.05%다. 한겨레신문의 경우 ‘국민주 신문’으로 창간해 지분의 99%를 소액주주가 갖고 있다. 언론 소유구조가 분산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서울신문의 경우 한겨레와 같이 국민주 모집을 시도할지를 놓고 공론화되지 않았을뿐 아니라 현실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이 지난달 14일 서울 프레스센터 서울신문 사옥 1층에 붙인 정부 지분 공개매각 반대 성명. 사진=우리사주조합 제공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이 지난달 14일 서울 프레스센터 서울신문 사옥 1층에 붙인 정부 지분 공개매각 반대 성명. 사진=우리사주조합 제공

인수가격이 관건, 저가매도 법률검토해야

어떻게든 정부와 지분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게 관건인데 인수가격 등 여러 난관이 남아있다. 협상가가 책정된 뒤엔 자금조달 문제도 있다. 기재부 보유 지분의 액면가는 253만여주에 5000원을 곱한 126억여원이다. 우리사주조합이 감정평가를 거쳐 추정하는 시장가는 270억원 정도다.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과 노동조합은 정부의 매각 명분이 수익 추구가 아닌 언론독립이라면 협상 시 가격을 최우선 잣대로 삼아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박 조합장은 “정부가 지분을 팔아 얼마나 주머니에 집어넣을까를 기준 삼는 순간 협상은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서울신문이 불완전했던 언론독립 절차를 완결한다는 목표를 공유한다면 협상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정부가 저가 매도할 경우 배임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우리사주조합은 법률 검토를 마쳤다고 밝혔다. 법률‧재무 전문가들은 배임 혐의 소지가 있다는 점엔 입을 모았지만 정상 참작 가능성에 의견이 갈렸다.

김성순 법무법인 한일 변호사는 “정부가 가치평가로 나온 적정가에 비춰 규정보다 싸게 주식을 팔면 배임 소지가 있다”며 “정상참작은 언론 독립성 등 사회 명분이 아닌 시장 논리와 경영 판단에 따르기에 적용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했다. 다른 변호사는 “다른 이유로 참작 사유가 있다고 한다면, 정부가 하는 모든 거래에 같은 사유를 댈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이강혁 민변 미디어언론위 소속 변호사는 “언론 독립성 보장이란 중요한 정책적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인 저가 매도가 이뤄진다면,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한 회계사는 “보통 특수관계자 거래에서 문제되는 건 고가 매입과 저가 양도”라며 “서울신문 측이 부르는 가격을 검토해 종합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사옥(서울 프레스센터). 사진=미디어오늘
▲서울신문 사옥(서울 프레스센터). 사진=미디어오늘

구성원 ‘고통분담’ 참여에 자금조달 좌우될듯

자금 조달안은 사실상 나와 있다. 우리사주조합이 한국증권금융(거래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나머지 액수는 회사로부터 주식을 담보로 대출한 뒤 서울신문 구성원이 십시일반 이자를 내는 방식이다.

서울신문이 구성원에게 희생을 얼마나 설득하느냐도 중요하다. 지난달 30일 우리사주조합이 실시한 기재부 지분 인수 동의안 투표 결과, 찬성자는 투표자 가운데 82.2%였다. 전체 사주조합원 중엔 72.3% 정도다. 구성원이 적극 참여할수록 1인당 고통 분담은 줄어든다. 서울신문 측은 사주조합원 415명이 모두 대출에 참여한다면 1인당 3000만원에 해당하는 이자를 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투표 결과인 295명 기준으로 보면 1인당 4000만원가량에 해당하는 이자를 감당해야 한다.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실장은 지난달 말 만민공동회에서 “최악의 경우 직원들이 재정 손실을 감수해야 할지 모르지만, 개개인에 최소한의 부담만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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