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이 최근 언론중재위원회가 발간한 ‘2019년도 언론 관련 판결 분석보고서’에 언급된 주요 판결 사례 가운데 7건의 사건을 추렸다. 언론중재위원회는 매년 언론사 또는 언론인을 상대로 제기된 소송들을 수집·분석한 보고서를 내고 있다. 언론 관련 판결은 언론분쟁의 양상과 추이를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로서 언론계에 유용하다. - 편집자 주

▲디지털조선일보의 홍가혜씨 관련 1심 판결문.
▲디지털조선일보의 홍가혜씨 관련 1심 판결문.

1. 김용호 말 받아썼던 조선닷컴의 결말 

디지털조선일보는 2014년 4월18일부터 28일까지 조선닷컴 등에 홍가혜씨가 유명 가수의 사촌언니, 야구선수의 여자친구, 일본 교민 등을 사칭했다는 취지의 기사를 27건 올렸다. 모두 허위였다. 1심·2심 법원은 6000만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당시 디지털조선일보는 스포츠월드 기자였던 김용호씨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했을 뿐, 그 외에 사실 확인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김용호씨의 트위터 및 칼럼은 가십적 보도의 성격이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기사는 ‘해경의 구조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라는 공익적 사안보다는 공인이 아니라 일반인 잠수 지원 자원활동가였던 원고의 사생활 관련 소문들을 무차별 보도했으며 원고를 ‘거짓말쟁이’, ‘허언증 환자’로 보도했다”고 판시했다. 김용호씨는 현재 유튜브채널 ‘가로세로연구소’ 등에서 여전히 각종 논란을 제조하고 있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비타 500. ⓒ광동
▲비타 500. ⓒ광동

2. 설령 비타 500 박스는 아닐지라도…

경향신문은 2015년 4월15일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성완종 전 새누리당 의원에게 2013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당시 비타 500 박스에 담긴 금품 3000만 원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전 총리는 정치자금법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나 2심과 3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이 전 총리 측은 경향신문을 상대로 3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금품 전달매체가 비타 500 박스임을 단정할 증거 없이 허위 보도한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되지만, 공직자 보도에 있어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 상당성을 잃은 수준이라 볼 수 없다”며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해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이후 2심과 3심도 기각해 판결이 확정됐다. 앞서 성 전 의원의 측근들은 문제의 쇼핑백 안에 ‘조그만 노란색 귤 박스 같은 그런 거’, ‘그리 무겁지 않은 네모난 물건’이 들어있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비타 500 박스라고 단정한 것을 경솔한 공격으로 볼 수 없었던 대목이다. 

▲영화 '김광석'을 연출한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
▲영화 '김광석'을 연출한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

3. 확신이 과하면 위험하다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는 2017년 故 김광석씨가 자살이 아니라는 취지로 사망 원인에 관한 의혹을 제기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고, 고발뉴스는 그해 9월19일과 21일 김씨의 부인 서해순씨가 ‘김광석을 살해하고 김광석의 음악저작권을 강탈하였으며 그의 딸도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취지의 기사를 게시했다. 이상호 기자는 이 같은 취지의 글을 자신의 SNS에도 올렸다. 1심 재판부는 서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이 기자에게 2000만원, 주식회사 발뉴스에게 3000만원의 손해배상금 지급과 비방금지 판결을 내렸다. 타살 의혹 가능성을 열어둔 영화에 대해서는 서씨 청구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이 기자에게 4000만원, 발뉴스에겐 60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내리며 오히려 배상액을 높였다. 재판부는 “단순히 허위사실을 보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와 연계된 입법 청원 유도, 수사기관에의 공개적 고발, 기자회견 등 다양한 방법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그만큼 원고(서해순)의 정신적 고통이 가중됐다”고 판시했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4. “제가 바로 탁현민의 그 여중생입니다”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이 2007년 공동 출간한 대담집에서 밝힌 고교 시절 여중생과의 성 경험 대목이 2017년 논란이 됐다. 여성신문은 그해 7월25일 “제가 바로 탁현민의 그 여중생입니다”라는 기고 글을 올렸다. 당시 논란으로 과거 성폭행을 당한 상처가 떠올랐다며 탁 행정관의 사과를 요구하는 글이었다. 탁현민 행정관은 대담집에서 문제가 된 대목은 전부 꾸며낸 내용이며 여성신문 기고가 자신을 성폭행범인 것처럼 오해하게 했다며 3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에 나섰다. 1심 법원은 여성신문에 1000만원 배상판결을 내렸다. 반면 2심 법원은 1심과 달리 문제가 된 제목이 본문으로부터 현저히 일탈했다고 보지 않았으나, 트위터의 경우 독자들이 본문을 읽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기사에 링크된 기고자가 그 여중생이라는 허위사실을 암시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500만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현재 기고 제목은 “그 ‘여중생’은 잘못이 없다-‘탁현민 논란’에 부쳐”로 바뀌었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5. 성희롱 피해자가 보도 원하지 않았지만…

SBS는 2018년 4월1일 성희롱 피해를 당한 직원이 이로 인해 퇴사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피해 직원이 SBS에 제보한 적도 없고 보도를 원한 적도 없다며 명예훼손과 사생활 침해 등을 주장하며 소를 제기했다. 1심과 2심 법원은 성희롱 피해 사실 적시를 명예훼손으로 보기 어렵고 사생활 침해 역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해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보도 취지가 직원들을 술자리 접대에 동원한 가해자 임원과 이런 성희롱 사실을 인지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회사를 비판하는데 있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판단한 결과다. 재판부는 또한 뉴스에서 밝힌 정보는 사건을 설명하기 위한 최소한의 것이었고, 원고나 다른 피해 당사자를 비난하는 논조를 보이고 있지 않으며, 선정적인 보도도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보도에 따른 피해자의 ‘2차 피해’는 숙제로 남았다. 앞서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신청에서는 SBS에 기사열람 차단과 300만원의 손해배상을 명하는 조정결정이 내려졌으나 SBS가 이의를 제기하며 법정으로 갔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6. 의약전문지의 돌이킬 수 없었던 오보 

메디컬투데이는 2017년 4월13일 한 의약품회사의 보톡스 제품에서 척추골절·힘줄파열·패혈증·자궁섬유종 등 중대한 이상 사례가 보고되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해당 기사는 이 같은 중대 이상 사례 발현율이 0.9%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해당 제품에 대해 “인과관계를 배제할 수 없는 중대한 약물 이상 반응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이 대목은 기사에 누락됐다. 1심 법원은 전문용어인 ‘이상반응’과 ‘약물이상반응’의 차이를 메디컬투데이가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의도적으로 누락한 것이 허위사실 적시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3억원의 손해배상을 명했으며, 2심에서 배상액이 2억524만원으로 감액됐다. 이후 판결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기사의 본문 중 ‘이 사건 제품에서 척추골절 등 중대한 이상 사례가 보고되었다’는 부분이 일반 독자들에게 이 사건 제품을 사용하는 경우 척추골절·패혈증 등 중대한 결과가 생길 수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강하게 줘 허위사실 적시로 판단했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7. 뒤바뀐 판결…반론 취재의 중요성 

한겨레는 2018년 1월23일 “땅콩집 건축가 이현욱씨 또 소송 휘말려”란 단독 기사를 내보내며 이씨가 설계와 시공을 계획보다 미뤄 의뢰인이 손해를 입고 과거에도 소송에 휘말린 적이 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이씨가 명예훼손을 이유로 손해배상과 기사삭제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 법원은 이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2심 법원에선 기사가 의뢰인의 일방적 주장만을 근거로 한 허위사실 적시에 해당한다며 3000만 원의 손해배상과 함께 기사삭제를 주문했고 이후 판결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해당 기사를 두고 “원고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건축사무소 운영에 큰 지장을 줄 수 있는 내용임에도 일방적 제보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작성됐다”며 “비록 기자가 원고를 비롯한 관계자에게 전화나 문자로 몇 차례 연락을 취하고 건축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건축 관련 답변을 듣기는 했으나 그것만으로 적절하고도 충분한 취재 노력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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