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은 지난 5월3일 가수 고(故) 구하라의 오빠 구호인씨 인터뷰를 시작으로 ‘가족, 법원 앞에 서다’라는 기획을 시작했다. 이후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항해사 가족, 1998년 ‘JSA 의문사’ 김훈 중위 부모, 2016년 서울 강남구 병원에서 수술을 받다가 숨진 고 권대희씨 어머니, 2018년 김천문화회관 무대에서 떨어져 숨진 고 박송희씨 부모 등을 인터뷰했다. 

지난 7월12일 5번째 기사는 ‘반려 가족’이었던 고양이 자두가 잔혹하게 살해당한 후 정신적 고통을 받는 보호자의 사연도 소개됐다. 자두는 지난해 7월13일 가해자 정모씨에 의해 죽었다. 정씨는 법정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한 후 지난 5월 출소했다. 정씨의 혐의는 동물보호법 위반과 재물손괴 혐의였고 이 사건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동물보호법 강화’ 요청에 20만명 이상 서명하기도 했다. 

서울신문이 법원 앞에 선 가족들 이야기를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6번째 기획기사 ‘무대서 딸 추락사했는데 김천시 2년간 사과 한마디 없었다’ 기사를 작성한 박성국 기자는 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한국의 법조 기사가 검찰 등 수사기관 발표 위주라는 지적을 알고 있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정치인이나 재계 인사가 아니더라도 평범한 가족이 법원에서 소송을 하게 된 사건들을 주목해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서울신문
▲서울신문 법조팀 ‘가족, 법원 앞에 서다’ 기획 기사들. 

실제 박 기자가 쓴 기사 앞머리는 이렇다. “취재진과 재판 방청객, 그리고 피고인의 지지자들까지 몰려 유난히 혼잡했던 지난달(7월) 16일 서울 서초동 법원 청사 한편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박원한씨(고 박송희씨의 아버지)와 그의 가족들도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날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 관련 재판과 사법농단 재판 등이 몰린 날이었다. 기자들이 몰리는 사안에 어쩌면 뒷전이 된 한 가족의 사연을 부각한 것이다. 

기사 따르면 박원한씨의 맏딸 송희씨는 2018년 8월 오페라 공연 조연출직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김천문화회관의 무대 세트에서 7m 아래로 떨어져 숨을 거뒀다. 1심 법원은 사실상 피해자 측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들은 김천시가 사과하지 않고 시 측 변호사가 “자기(고 박송희씨) 혼자 실수해서 발생한 사고”라고 이야기하는 등 김천시 태도에 분노했다.

4번째 기획기사(“CCTV 속 ‘유령수술’ 또렷한데 검사님, 대희 죽음이 실수입니까”)엔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모은 사건에 묻힌 한 개인의 비극이 드러난다. 2016년 9월 권대희씨는 서울 강남구 병원에서 안면윤곽수술을 받다가 사망했고 권씨 어머니 이나금씨는 아들이 죽어간 수술 CCTV 영상을 500번 넘게 보고 직접 자료를 만들어 소송을 진행했다. CCTV 영상은 7시간30분 분량이었다.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이씨는 “검찰에 기소가 늦어지는 이유를 묻자 처음엔 가습기 살균제 사태 때문이라고 하고 인보사 사태만 끝나면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하고, 조국 사태가 터지자 또 차일피일 기소가 늦어졌다”고 말했다. 

이 같은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법조 기획 시리즈는 계속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신문에는 3주에 한 번꼴로 가족들이 법정에 선 기획 보도가 연재되고 있다. 

박 기자는 “개인적으로도 법조 기사를 어떤 식으로 작성할지 고민은 오래됐다”며 “수사기관 발표를 중계하듯 보도하기보다 공판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논의 역시 공감해왔다”고 전했다. 이어 “공판 중심으로 보도하자고 생각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다 보면 보통 유명인사나 정치인 등 누구나 관심을 가질 사람 위주로 살펴보게 되는데 대중적 관심이 적지만 오랫동안 법정 싸움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가족’이었다”고 말했다. 가족 중심의 법원 이야기가 나오게 된 계기다. 

박 기자는 “평범한 사람들이 법정에 서게 되는 사연에 주목하고 있다. 어떤 이야기를 담을지 기자들이 함께 모여 정한다”며 “‘검찰과 수사기관 발 단독 경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시각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로 (검찰 발 단독 경쟁 보도에서) 공판 중심 기획으로 변화하는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박 기자는 “언론사 내부에도 수사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법조 기사를 스스로 변화시키고 싶은 기자들이 있음을 전하고 싶다”며 “검찰 발표 등에 치우친 법조 기사 무게중심을 법원으로 이동해가자는 취지로 봐달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